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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 사건,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서 바로 그날 알려진 사건이어서 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북한 출신이고요.
NK지식인 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건하 국장님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저 학생이 한 모씨라고 전해졌던데요.
원래 김일성종합대에 다니고 있었고 아주 저 정도 되면 아주 고위층 자제인 거죠?
[인터뷰]
그렇죠, 외국에 유학을 다닌다는 건 일반 주민의 자제가 되면 유학을 가기가 힘들거든요.
[앵커]
있기는 있습니까, 간혹?
[인터뷰]
있기는 있죠.
대부분 고위층 자녀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지 일반 가정집 자녀가 가기는 힘듭니다.
북한에서...
[앵커]
어떤 경우에 갑니까?
[인터뷰]
그런 경우는 머리가 수재라든가 필요하다면 그런 사람들도 보냅니다.
[앵커]
예컨대 과학자인데 정말 최고다, 이 사람 성적이.
그러면 가기도 하는군요.
[인터뷰]
과학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대학교수, 교원들도 필요에 의해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씩...
그런데 지금 간 것을 보면 유럽보다 중국쪽으로 많이 나가고 있거든요.
[앵커]
지금 고위층이라는 게고위층 자제라는 게 어느 정도를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인터뷰]
아마 도당 비서급.
[앵커]
도당 비서면 우리나라로 치면 직위가 어느 정도일까요?
[인터뷰]
글쎄요, 장차관급, 그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적어도 장차관급은 되어야 유학을 보낼 수 있는 거군요.
[인터뷰]
네, 장차관급 자제들이유학을 갈 수 있고 또 아까도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필요에 의해서 머리가 좋고 국가가 필요한 사람들은 유학을 보냅니다.
[앵커]
그러면 과거에도 저렇게 유학을 가 있다가 본인의 부친이나 문제가 되면, 숙청되거나 하면 다 불러들이는 그런 사례들이 많았습니까?
[인터뷰]
제가 알기로는 92년도인가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동구권에 나가 있던 유학생들이 소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렇게 중간에 유학생활 하던 과정에 이렇게 소환됐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저 경우는 지금 장성택 숙청 그 이후에 그 연장선에 있는 겁니까?
아니면 또 다른 세력들도 숙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인터뷰]
아마 제가 생각하건대는 개인적으로 장성택 측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10월달에 이미 뉴스에도 나왔지만 처형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형사건이 장성택 계열이 아니라 김정은 호위사업에서 차질이 생겨서 그 관련 부서 사람들을 총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일환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김정은의 동선에 대해서는 북한의 장성택이 살아있을 때도 그 누구도 모릅니다.
이제 김정은의 동선에서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서기실 사람들. 그다음에 호위총국 행사과 사업들 외에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이 건설현장을 현지시찰 나갔는데 거기에 기관총이 있었다는 뉴스도 나왔는데 그런 일 때문에 아마 그쪽 계열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그집 자식이 유학나갔었는데 그 자식을 이제 아마 소환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러니까 어쨌건 지금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북한에서 그런 숙청 또는 처형은 꼭 장성택 계열만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늘 이루어 지는 그런 일이군요.
[인터뷰]
그렇죠, 장성택 계열은 이미 1년이 지났으니까 거의 숙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앵커]
그러면 그 고위급 누군가가 숙청이 되면, 장차관급 이상이 그러면 그 자제 유학생을 불러들이는 것은 그건 이례적인 일인 거예요?
[인터뷰]
아니죠, 무조건 부모가 잘못되면 그 가족은 모두 다 같이 한 그물망에다 처리하는 거니까.
[앵커]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만약 저 사람이 송환됐다면 북한으로 끌려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아마 정치범 수용소에 갔을 겁니다.
이미 전에도 그러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고위급은 아니었지만 그집 사위가 96년도인가 남한으로 탈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해도 탈북자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이슈화된 거죠.
그런데 사위가 도망침으로 해서 장인은 지배인을 했어요.
지배인을 했고 그집 자식들은 호위총국에서 군복무를 했거든요.
매부 얼굴도 못본 매부 때문에 군복무 하던 아들이 제외돼서 배치를 받았어요.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특히 하물며 고위급인 경우에 더 하죠.
[앵커]
아들이고 직계고... 그러면 정치범수용소 가면 그러면 거기서 평생 사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특히 요덕수용소 같은 경우... 아마 저 정도라면 정신구역에 가서 나오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앵커]
평생 거기서 살아야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렇죠, 아버지가 처형이 됐는데 어떻게 자식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앵커]
지금은 한 씨의 다른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는 거거든요.
[인터뷰]
그러면 십중팔구 무조건 정신구역에 가서 나오지 못하는 걸로 봐야 될 겁니다.
[앵커]
저 학생 저 젊은이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버지는 처형됐는지 아니면 그냥 숙청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이고, 가족들은 다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가 있고 들어가면 평생을 정치범수용소에서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라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거기서 살아봤기 때문에 북한체체를 너무 잘 알거든요.
혜택을 받고 외국에 유학을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실 행운이라기보다 어쨌든 감시를 그만큼 많이 받고 항상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가 처형이 됐고 자기를 잡으러 왔다.
이건 자기가 죽어야 된다는 그상황을 알았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생사를 걸고 탈출했을 겁니다.
[앵커]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탈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도 참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 요원들이 한두 명 옵니까?
보통 어떻게 되나요?
[인터뷰]
그렇죠, 단적인 예로 러시아에 가서 벌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북한에 송환될 때 보면 그 사람들은 깁스를 합니다.
깁스를 해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가지고 환자인 것처럼 해서 송환 하거든요.
그런데 이 유학생의 사례를 보면 아마 갑작스럽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깁스할 수 있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안 됐던 것 같습니다.
아마 깁스를 안 한 상황이니까 도망을 쳤지 깁스한 상황이라면 어림도 없죠.
[앵커]
가자마자 그 요원들이 집에 들이닥치자마자 휴대폰하고 여권은 일단 압수를 했다는 거거든요.
그러고서 끌고 가다가 거기서 탈출을 한 건데 그러면 지금 이 학생이 어딘가에서 정말 피가마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파리 어딘가에서 멀리는 못 갔을 것 같고요.
[인터뷰]
그렇죠, 그런데 아마 이게 이렇게 뉴스가 나오고 하면 프랑스 당국이 가만있을까요?
아마 보호를 해 주겠죠.
[앵커]
어디에 있는지 프랑스 당국이.
[인터뷰]
아직은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유학생 자체는 아마 피가 마를 겁니다.
[앵커]
지금 제일 안전한 방법은 어떤 겁니까?
저 유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요?
[인터뷰]
제 생각에는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왕 뉴스에 나왔으면 인권문제를 가지고 지금 UN에서도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 진짜 인권침해가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프랑스 경찰이든가 이런 쪽에서 해가지고 더 이슈화시킨다면 감히 북한이 공개적으로 그 학생을 잡으려고 하지는 못할 거라 이거죠.
아마 이슈화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지않을까 라는 이런 생각입니다.
[앵커]
국립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또 다른 학교하고 해서 10명 저 학교하고 북한학생들이 유학을 하고 있었고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니까 그때부터 북한 학생들이 다 안 보인다고 합니다.
저 학생은 지금 행방을 모르는 거고요.
저 학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파리로 많이 가나요, 저렇게?
[인터뷰]
아마 고위층 중에서도 선발된 사람들이 갈 겁니다.
많이 가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금에 와서는 영국에도 가고 프랑스도 가고 그런데 고위층 자제들이 가는 쪽이 스위스쪽에 많이 가는 걸로 알고 있지 프랑스나 이런 쪽에는 그렇게 많이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앵커]
김정은, 김정철도 스위스에서 유학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러니까 최고위층들이 주로 스위스를 가나 보죠.
그러면 파리는 김정남도 저기에 많이 나타나고요.
파리에 김한솔도 있고 고영희도 파리에 자주 갔었던 거죠?
파리에 북한 권력층들이 파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뭔가요?
[인터뷰]
그러니까 북한에서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북한 요리책이 나와있었습니다.
이 요리책이 뭐냐면, 김정은 동지께서 높이 평가해 주신 요리라고 해가지고 프랑스 요리에서 많이 선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프랑스가 문화적이거나 그런 쪽에서 되게 앞선 것으로 보고 그러니까 북한이 또 유럽은 상대하기가 편하지 않습니까?
[앵커]
미국과 다른 느낌이 있는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아마 그래서 선택을 하지 않았나.
그다음 프랑스 와인이라든가 명품이라든가 이런 게 김정은한테는 그게 많이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선호하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북한 인권이 지금 국제적인 이슈가 되어 있는데 연좌제라는 것이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연좌제라고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슨 취업이나 해외 나갈 때나 불이익을 받는 그런 얘기였단 말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도...
그런데 지금 이렇게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니까 그게 무슨 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들도 정치범수용소에 가서 평생 산다.
이게 무슨 법조항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북한에?
[인터뷰]
법조항에는 없죠.
그런 법조항이 없지만 어쨌든 북한의 헌법이 사실 국가에서 최고보위법인데 그 법보다도 김정은의 말씀이면 다 되는 거죠.
사실 보다도 10대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북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에 의해서 그 사람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 당이 반대했다든가 김정은이 나쁘다.
이런 말 때문에 잡아간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법조항에는 말을 잘못해서 잡아간다, 이런 조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10대 원칙에 빗대어 볼 때는 반동이라 이거죠.
그래서 잡아갑니다.
[앵커]
정치범 수용소 말씀하신 거기에 가면 평생 살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 겁니까?
그냥 강제노역을 하는 겁니까?
[인터뷰]
탈북자 중에도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했던 분들도 여럿이 와 있고 특히 신동혁 씨 같은 경우 거기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지은 죄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거기서 태어났다는 죄로 20년이 넘도록 그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말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자기가 죄도 안 짓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거죠.
[앵커]
알겠습니다.
우리 정부가 좀 도와줘야 된다고 보십니까?
어떻습니까?
[인터뷰]
도와줘야죠.
우리 헌법에도 대한민국국민으로 되어 있잖아요.
외국에 나와 있지만 저 학생은 분명히 도와줘야 됩니다.
[앵커]
우리 국민으로 헌법에 되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박건하 NK지식연대 사무국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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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 사건,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서 바로 그날 알려진 사건이어서 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북한 출신이고요.
NK지식인 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건하 국장님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저 학생이 한 모씨라고 전해졌던데요.
원래 김일성종합대에 다니고 있었고 아주 저 정도 되면 아주 고위층 자제인 거죠?
[인터뷰]
그렇죠, 외국에 유학을 다닌다는 건 일반 주민의 자제가 되면 유학을 가기가 힘들거든요.
[앵커]
있기는 있습니까, 간혹?
[인터뷰]
있기는 있죠.
대부분 고위층 자녀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지 일반 가정집 자녀가 가기는 힘듭니다.
북한에서...
[앵커]
어떤 경우에 갑니까?
[인터뷰]
그런 경우는 머리가 수재라든가 필요하다면 그런 사람들도 보냅니다.
[앵커]
예컨대 과학자인데 정말 최고다, 이 사람 성적이.
그러면 가기도 하는군요.
[인터뷰]
과학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대학교수, 교원들도 필요에 의해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씩...
그런데 지금 간 것을 보면 유럽보다 중국쪽으로 많이 나가고 있거든요.
[앵커]
지금 고위층이라는 게고위층 자제라는 게 어느 정도를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인터뷰]
아마 도당 비서급.
[앵커]
도당 비서면 우리나라로 치면 직위가 어느 정도일까요?
[인터뷰]
글쎄요, 장차관급, 그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적어도 장차관급은 되어야 유학을 보낼 수 있는 거군요.
[인터뷰]
네, 장차관급 자제들이유학을 갈 수 있고 또 아까도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필요에 의해서 머리가 좋고 국가가 필요한 사람들은 유학을 보냅니다.
[앵커]
그러면 과거에도 저렇게 유학을 가 있다가 본인의 부친이나 문제가 되면, 숙청되거나 하면 다 불러들이는 그런 사례들이 많았습니까?
[인터뷰]
제가 알기로는 92년도인가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동구권에 나가 있던 유학생들이 소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렇게 중간에 유학생활 하던 과정에 이렇게 소환됐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저 경우는 지금 장성택 숙청 그 이후에 그 연장선에 있는 겁니까?
아니면 또 다른 세력들도 숙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인터뷰]
아마 제가 생각하건대는 개인적으로 장성택 측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10월달에 이미 뉴스에도 나왔지만 처형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형사건이 장성택 계열이 아니라 김정은 호위사업에서 차질이 생겨서 그 관련 부서 사람들을 총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일환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김정은의 동선에 대해서는 북한의 장성택이 살아있을 때도 그 누구도 모릅니다.
이제 김정은의 동선에서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서기실 사람들. 그다음에 호위총국 행사과 사업들 외에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이 건설현장을 현지시찰 나갔는데 거기에 기관총이 있었다는 뉴스도 나왔는데 그런 일 때문에 아마 그쪽 계열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그집 자식이 유학나갔었는데 그 자식을 이제 아마 소환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러니까 어쨌건 지금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북한에서 그런 숙청 또는 처형은 꼭 장성택 계열만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늘 이루어 지는 그런 일이군요.
[인터뷰]
그렇죠, 장성택 계열은 이미 1년이 지났으니까 거의 숙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앵커]
그러면 그 고위급 누군가가 숙청이 되면, 장차관급 이상이 그러면 그 자제 유학생을 불러들이는 것은 그건 이례적인 일인 거예요?
[인터뷰]
아니죠, 무조건 부모가 잘못되면 그 가족은 모두 다 같이 한 그물망에다 처리하는 거니까.
[앵커]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만약 저 사람이 송환됐다면 북한으로 끌려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아마 정치범 수용소에 갔을 겁니다.
이미 전에도 그러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고위급은 아니었지만 그집 사위가 96년도인가 남한으로 탈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해도 탈북자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이슈화된 거죠.
그런데 사위가 도망침으로 해서 장인은 지배인을 했어요.
지배인을 했고 그집 자식들은 호위총국에서 군복무를 했거든요.
매부 얼굴도 못본 매부 때문에 군복무 하던 아들이 제외돼서 배치를 받았어요.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특히 하물며 고위급인 경우에 더 하죠.
[앵커]
아들이고 직계고... 그러면 정치범수용소 가면 그러면 거기서 평생 사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특히 요덕수용소 같은 경우... 아마 저 정도라면 정신구역에 가서 나오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앵커]
평생 거기서 살아야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렇죠, 아버지가 처형이 됐는데 어떻게 자식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앵커]
지금은 한 씨의 다른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는 거거든요.
[인터뷰]
그러면 십중팔구 무조건 정신구역에 가서 나오지 못하는 걸로 봐야 될 겁니다.
[앵커]
저 학생 저 젊은이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버지는 처형됐는지 아니면 그냥 숙청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이고, 가족들은 다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가 있고 들어가면 평생을 정치범수용소에서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라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거기서 살아봤기 때문에 북한체체를 너무 잘 알거든요.
혜택을 받고 외국에 유학을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실 행운이라기보다 어쨌든 감시를 그만큼 많이 받고 항상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가 처형이 됐고 자기를 잡으러 왔다.
이건 자기가 죽어야 된다는 그상황을 알았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생사를 걸고 탈출했을 겁니다.
[앵커]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탈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도 참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 요원들이 한두 명 옵니까?
보통 어떻게 되나요?
[인터뷰]
그렇죠, 단적인 예로 러시아에 가서 벌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북한에 송환될 때 보면 그 사람들은 깁스를 합니다.
깁스를 해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가지고 환자인 것처럼 해서 송환 하거든요.
그런데 이 유학생의 사례를 보면 아마 갑작스럽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깁스할 수 있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안 됐던 것 같습니다.
아마 깁스를 안 한 상황이니까 도망을 쳤지 깁스한 상황이라면 어림도 없죠.
[앵커]
가자마자 그 요원들이 집에 들이닥치자마자 휴대폰하고 여권은 일단 압수를 했다는 거거든요.
그러고서 끌고 가다가 거기서 탈출을 한 건데 그러면 지금 이 학생이 어딘가에서 정말 피가마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파리 어딘가에서 멀리는 못 갔을 것 같고요.
[인터뷰]
그렇죠, 그런데 아마 이게 이렇게 뉴스가 나오고 하면 프랑스 당국이 가만있을까요?
아마 보호를 해 주겠죠.
[앵커]
어디에 있는지 프랑스 당국이.
[인터뷰]
아직은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유학생 자체는 아마 피가 마를 겁니다.
[앵커]
지금 제일 안전한 방법은 어떤 겁니까?
저 유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요?
[인터뷰]
제 생각에는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왕 뉴스에 나왔으면 인권문제를 가지고 지금 UN에서도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 진짜 인권침해가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프랑스 경찰이든가 이런 쪽에서 해가지고 더 이슈화시킨다면 감히 북한이 공개적으로 그 학생을 잡으려고 하지는 못할 거라 이거죠.
아마 이슈화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지않을까 라는 이런 생각입니다.
[앵커]
국립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또 다른 학교하고 해서 10명 저 학교하고 북한학생들이 유학을 하고 있었고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니까 그때부터 북한 학생들이 다 안 보인다고 합니다.
저 학생은 지금 행방을 모르는 거고요.
저 학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파리로 많이 가나요, 저렇게?
[인터뷰]
아마 고위층 중에서도 선발된 사람들이 갈 겁니다.
많이 가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금에 와서는 영국에도 가고 프랑스도 가고 그런데 고위층 자제들이 가는 쪽이 스위스쪽에 많이 가는 걸로 알고 있지 프랑스나 이런 쪽에는 그렇게 많이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앵커]
김정은, 김정철도 스위스에서 유학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러니까 최고위층들이 주로 스위스를 가나 보죠.
그러면 파리는 김정남도 저기에 많이 나타나고요.
파리에 김한솔도 있고 고영희도 파리에 자주 갔었던 거죠?
파리에 북한 권력층들이 파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뭔가요?
[인터뷰]
그러니까 북한에서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북한 요리책이 나와있었습니다.
이 요리책이 뭐냐면, 김정은 동지께서 높이 평가해 주신 요리라고 해가지고 프랑스 요리에서 많이 선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프랑스가 문화적이거나 그런 쪽에서 되게 앞선 것으로 보고 그러니까 북한이 또 유럽은 상대하기가 편하지 않습니까?
[앵커]
미국과 다른 느낌이 있는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아마 그래서 선택을 하지 않았나.
그다음 프랑스 와인이라든가 명품이라든가 이런 게 김정은한테는 그게 많이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선호하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북한 인권이 지금 국제적인 이슈가 되어 있는데 연좌제라는 것이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연좌제라고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슨 취업이나 해외 나갈 때나 불이익을 받는 그런 얘기였단 말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도...
그런데 지금 이렇게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니까 그게 무슨 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들도 정치범수용소에 가서 평생 산다.
이게 무슨 법조항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북한에?
[인터뷰]
법조항에는 없죠.
그런 법조항이 없지만 어쨌든 북한의 헌법이 사실 국가에서 최고보위법인데 그 법보다도 김정은의 말씀이면 다 되는 거죠.
사실 보다도 10대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북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에 의해서 그 사람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 당이 반대했다든가 김정은이 나쁘다.
이런 말 때문에 잡아간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법조항에는 말을 잘못해서 잡아간다, 이런 조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10대 원칙에 빗대어 볼 때는 반동이라 이거죠.
그래서 잡아갑니다.
[앵커]
정치범 수용소 말씀하신 거기에 가면 평생 살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 겁니까?
그냥 강제노역을 하는 겁니까?
[인터뷰]
탈북자 중에도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했던 분들도 여럿이 와 있고 특히 신동혁 씨 같은 경우 거기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지은 죄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거기서 태어났다는 죄로 20년이 넘도록 그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말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자기가 죄도 안 짓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거죠.
[앵커]
알겠습니다.
우리 정부가 좀 도와줘야 된다고 보십니까?
어떻습니까?
[인터뷰]
도와줘야죠.
우리 헌법에도 대한민국국민으로 되어 있잖아요.
외국에 나와 있지만 저 학생은 분명히 도와줘야 됩니다.
[앵커]
우리 국민으로 헌법에 되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박건하 NK지식연대 사무국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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