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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했다 다시 北 넘어간 여성, 박인숙씨로 확인 [YTN FM]
Posted : 2012-07-02 13:26
탈북했다 다시 北 넘어간 여성, 박인숙씨로 확인- 이애란 박사 (탈북 여성박사 1호,북한전통음식 문화연구원 원장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김갑수 앵커 (이하 앵커) : 박인숙 씨 뉴스 기억들 하실 겁니다. 2006년에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가 최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죠.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자들의 삶에 대해서 남한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는 모습이었는데요. 그런데 뒷얘기가 있군요. 박 씨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북한의 협박을 받고 다시 북으로 들어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는데요. 박 씨의 친척들과 친분이 있는 탈북 여성박사 1호 이애란 박사께서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박사님?

☎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이하 이애란) : 네, 안녕하세요.

앵커 : 제가 본격적인 질문 드리기 이전에 다른 얘기하나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북에서 오신 분들을 향해서 명칭이 탈북자, 탈북인, 새터민 여러 용어를 쓰는데 당사자들은 어떤 용어를 쓰는 게 제일 마음이 편안합니까?

이애란 : 글쎄요. 일반적으로 탈북자라고 부르는 게 더 편안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남쪽 분들이 너무 싫어하니까 자유이주민, 탈북 동포, 탈북민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냥 탈북민이나, 북쪽 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 이렇게 부르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앵커 : 호칭도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서 질문을 드려봤고요. 박인숙씨가 다시 북으로 돌아갔습니다. 심경이 어떠십니까?

이애란 : 안타깝지요. 어머니로서 그렇게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고통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분이 그쪽으로 들어가시면서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무래도 가야 되겠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앵커 : 아들 얘기가 일부 보도가 됐습니다만, 정확히 얘기를 해주셔야 되니까 지금
제가 전화인터뷰를 드린 이유도 박인숙 씨가 북으로 되돌아간 이유가 아들 때문이라는 거죠. 그 전후 얘기를 좀 전해주시죠.

이애란 : 그러니까 그분께서 2006년도에 남한에 오셨거든요. 오시기 전에 생활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았어요. 탈북을 하셔서 아버지께서 남한에 6.25 때 월남하셔서 살고 계셨나 봅니다.

앵커 : 박인숙 씨의 아버지가요.

이애란 : 네. 그래서 저희들도 북한에 있을 때 평양에 살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월남하셨기 때문에 수감을 당하고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그분들에 대한 막연한 원망, 기대감 같은 것도 솔직히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들도 친척을 찾았을 때 그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런 것들이 북한에 살고 있는 많은, 북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 유가족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박인숙 씨께서도 아마 아버지께서 월남을 하셔서 남한에 살고 계신다고 하니까 도움을 받고 싶어서 탈북을 했을 것 같아요. 이건 제 생각인데요. 그래서 나오셨다가 일설에 의하면 그분께서 북한에 강제북송도 되신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가서 고문도 당하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겪고도 또 탈북을 하셨겠죠.

앵커 : 여기서는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었...

이애란 : 아닙니다.

앵커 : 그렇지 않습니까?

이애란 : 풍족하진 않지만, 그분이 혼자 사셨는데 월 70만 원정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그랬기 때문에 북한에 있을 때에 비하면 그 분의 생활이 어려워서 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요. 물론 탈북자들이 남쪽에 와서 생활함에 있어서 남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앵커 : 박인숙 씨가 기자회견에서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하는 일은 오물 청소, 그릇 닦기, 시중들기 비천하고 어려운 일뿐이라고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당국에서 종용했겠습니다만 일정부분 아주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애란 : 그렇죠. 현실이기는 한데요 제가 북한을 향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그래 여기서는 탈북자들이 와서 오물 청소, 그릇 닦기, 시중들기를 하지만 그래도 밥은 먹고 살고 있고 그것도 하얀 밥에 굶어죽은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살고 있다, 거기는 국가기관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정말 생계가 곤란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어르신이 오셔서 은퇴해야 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탈북 여성들이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저희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에게 민폐를 안 끼치기 위해서 동사무소에 하는 일 있잖아요. 나가서 길도 쓸고 그런 일을 하시고 폐품도 줍고 그런 일을 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저희 어머니가 북한으로 가시고 싶다는 이런 얘기는 안 하시죠.

앵커 : 평양음대 교원인 박인숙 씨 외아들이 박인숙 씨가 탈북한 이후 탄광으로 끌려가서 고생하고, 그 다음에 그 사실을 북한에서 협박해서 박인숙 씨가 할 수 없이 간 것이라는 게 알고 계신 사실이신 거죠?

이애란 : 그렇죠.

앵커 : 북한 보위부가 어떤 경로로 얘기를 했다는 건가요?

이애란 : 그러니까 아들이 교원에서 떨어져서 탄광으로 추방을 당한 다음에 아마 나중에 또 보위부에 체포가 됐고 그분의 아드님의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아드님의 가족을 통해서 박인숙 씨에게 연락이 온 거죠.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이 죽는다, 보위부에서 죽이겠다고 한다, 아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돌아오는 방법밖에 없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분께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앵커 : 박인숙 씨가 되돌아간 이유는 순전히 아들 문제 때문입니까, 다른 여러 요인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애란 : 저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들 때문에 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자회견에 나오게 된 것도 아들과 앉아있지 않았습니까, 그 앞에서 읽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읽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앵커 : 그런데 되돌아가서, 텔레비전 앞에 기자회견까지 했으니 어떨지 모릅니다만 혹시 박인숙 씨는 북한에서라도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애란 : 어렵겠죠. 그동안 여러 개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유태준 씨라고 세상을 들었다 놓는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그 사람이 가서 남한 체제를 비방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선전요원으로 활동하다가 말을 잘못해서 32년 형인가, 그 구형을 받고 있다가 결국은 또 탈북을 했잖아요. 그런데 이 노인께서도 사람이 본 것은 어떤 순간이라도 솔직하게 말하게 돼있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24시간 감시를 받게 될 것이고 상당히 팍팍한 삶을 살게 될 거예요, 저희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러다가 선전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탈북을 하지 않으면 그쪽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이 조금 생각을 잘못한 게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북한의 가족들을 협박할 때 여기서 이것을 공개하고, 남한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서 목소리를 높여주고, 국제 사회가 이런 것을 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남한 사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도 없고 탈북자들은 이런 부분이 공개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이 잘못될까봐 겁이 나서 말을 못 하거든요.

앵커 : 그렇게 얘기 듣다보면 박인숙 씨와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남한사회 내에 탈북인 가운데 많이 있을 수 있겠군요?

이애란 : 너무 많죠. 그래서 저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제 3의 박인숙 씨 같은 분이 안 나오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저도 어머니 된 입장에서 아들이 죽는다고 하면 내가 죽고 아들을 살리고 싶은 게 어머니들 마음이거든요.

앵커 :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너무 모른다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바라는 바가, 당국이든 시민사회든 있으시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이애란 : 그러니까 제가 남쪽에서 살면서 보니까 남쪽은 시민영향이 상당히 강화된, 시민영향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습니까, 소고기 촛불 때도 그렇고, 미선이 효순이 촛불 때도 그렇고요. 시민사회가 상당히 잘 돼있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다 눈 감고, 귀 막고 침묵하고 있으니까 북한의 독재정권이 많은 피해를 끼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요. 좀 더 시민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 좀 높이고 귀도 좀 열고 다시는 박인숙 씨처럼 돌아가서 북한 정권에서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남한 사회가 탈북자를 좀 더 따뜻하게 껴안고, 파트너로서 인정도 해주고, 같이 갈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정부도 그런 쪽으로 많은 정책들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앵커 : 북으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 체제를 비방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외아들 살리겠다고 그러니까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다. 가슴이 아픈, 분단 현실이 빚은 일입니다. 이애란 박사님 말씀 고맙습니다. 앞으로 많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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