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올해의 인물] ② 소녀상의 아버지 김운성 조각가 [YTN FM]

[2012 올해의 인물] ② 소녀상의 아버지 김운성 조각가 [YTN FM]

2012.12.31.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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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올해의 인물] ② 소녀상의 아버지 김운성 조각가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김갑수 앵커(이하 앵커):
<출발새아침> 연말기획, 2012 올해의 인물. 두 번째로 만나볼 분은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작갑니다. 지난 6월 일본 극우주의자 스즈키 노부유키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쓴 말뚝을 소녀상 앞에 꽂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7월에는 비를 맞고 있는 소녀상에 우산을 씌워준 한 경찰관의 소식이 전해졌고, 출발새아침에서는 이 경찰관과 단독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이 오자 소녀상은 털모자와 목도리, 귀마개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마음이었습니다. 정식명칭은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1000회째를 맞은 지난해 12월에 설치됐는데요,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공동 제작했습니다. 소녀상의 아버지, 김운성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운성 작가(이하 김운성):
안녕하세요?

앵커:
상 타시나요?

김운성:
네. 환경재단에서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중앙일보에서, 또 ytn에서 오늘 이렇게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앵커:
연말에 이것저것 한 해를 돌아보면서 생각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거대한 국가적인 것과 다른 건데도 마음속에 크게 남은 일이거든요. 소녀상의 아버지세요. 조각품으로 인해서 바쁘시겠어요.

김운성:
네 하는 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여기저기 다니세요?

김운성:
다니는 건 아니고 계속 일본에서 아직도 사과와 반성, 명예회복을 안 했잖아요. 여기에 대한 후속 작업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 동안 과정을 듣고 싶은데 작년 12월이니까 만 1년 됐는데 소녀상 제작을 했는데 최초의 계기는요?

김운성:
계기는 90년대 초죠. 92년에 할머님들께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단 충격적 발언을 하고 20년 동안 수요집회를 하셨는데 천회째되는, 사실 잘 몰랐어요. 충격적 발언으로 인해서 제가 한국사람이기도 하고 미술하는 사람인데 해드린 게 없어요. 걸리는 게 있었고 미안함 같은 게 있었는데 미술가로서 할머님들에게 뭔가 해드려야 한다는 계기가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입니다.

앵커
마음을 먹는 경우는 많은데 행동으로 하기 어렵거든요. 김운성 선생은 직접 작품을 만드신 거죠.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김운성:
기간은 작품 구상하고 제작, 설치까지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앵커:
비석 만들기로 했었죠?

김운성:
수요집회를 주최하는 곳이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란 단체인데 대단한 단체인데 제가 미술관에서 뭘 도와줄 수 있나 하고 찾아가서 말씀드리니까 평화비란 비석을 세우고 싶다고 디자인을 구성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디자인을 하다보니까 하나의 뭐랄까 선언적 의미 같은 거는 있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에는 약한 것 같았어요. 비석 디자인보다는 형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내용들, 이런 내용들을 여러 디자인을 보여드리고 그에 대해서 소녀상이 한 부분이었는데 소녀상으로 하자고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훨씬 잘 된거죠. 정서적 교감이 훨씬 높겠죠.

김운성:
아무래도 그렇죠.

앵커:
이름이 순이인데 누가 지었나요?

김운성:
작년 초에 인터뷰를 하다가 라디오에서 청취자 분이 이야기를 듣고 이름을 순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으면 해서 그랬는데 저희는 평화의 소녀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앵커
소녀상 제작 과정에서 딸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어요. 어리다고 들었는데요.

김운성:
12살입니다. 조각작품을 제작하려면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딸 아이에게 한복을 입히고 모델을 서줬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흔쾌히 응하더라고요. 딸 아이가 모델을 하는데 작품에 대해서 상징을 주기 위해서 논의를 하는데 논의하는데 우리 딸이 그 이야기를 듣다가 이 소녀상에 그림자는 형상은 소녀지만 그림자는 할머니로 하면 좋겠단 이야기를 해서 너무 이게 잘 매칭이 되잖아요. 소녀를 끌고 갔던 부분인데 할머니들이 여태까지 수요집회를 하니까 너무 잘 어울려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형상을 제작했습니다.

앵커:
참 묘안인데 어려서 그런가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을까요.

김운성:
우리 딸이 기발한 착상을 잘 합니다. 그런 그림도 그리고 재미있는 발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되물림해서 작가해야 하겠네요. 따님도 수요집회 참여한다고요?

김운성:
학기중에는 학교다녀야 해서 못 하고 방학 중에 참석합니다.

앵커:
어른이 되면 자신이 어릴 때 어떤 일을 한 건지 알 겁니다. 소녀상 작업하시면서 일반 작품 만들때와는 다를 것 같은데 무엇에 가장 신경을 쓰셨나요?

김운성:
지금 보여주는 전체적 부분에 대한 균형이 신경이 쓰였어요. 부분 부분이 잘 되어도 전체적 분위기가 안 되면 어색해지거든요. 그 중에 모든 분위기가 한 부분으로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얼굴 표정이죠. 얼굴 표정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앵커:
작품을 만드는 게 객관적으로 물건 만드는 것과 다르니까. 자기가 작품에 투영되는 바가 있을텐데 역사가 반영된 거라 심경이 어떠셨어요?

김운성:
거대한 역사가 아니라 아픈 역사잖아요. 할머님들의 아픈 과거가 작업하는데 그대로 밀려들어왔어요. 작업하는 동안 반복되었는데 쉽게 헤어진 가족들이 생각나고 고향 생각 친구도 생각나고.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아이가 생각나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요. 억지로 일본 군인을 상대하는 괴로움 두려움, 저항할 수 없는 무섭고 이런 것들을 아이가 그대로 받아야 하잖아요. 그리고 작업하는 과정 내내 일본 정부의 뻔뻔한 변명과 소녀상 설치 반대하는 것, 한국 정부 압박해서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도 밀려오고 내내 이런 감정들이 그냥 밀려오다보니까 작업하는데 편치만은 않았죠.

앵커:
한 분이 7741님, 말로만 들었는데 소녀상 찾아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찾아보지 않았는데 부끄러움 무릅쓰고 여쭙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세요, 하셨어요.

김운성: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중악동으로 되어 있고요. 일본대사관을 찾으시면 정문 앞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앵커:
많이들 지나다니시는 곳이니까 아실 거예요. 소녀상이 털모자 귀마개도 했는데 시민들이 애정을 갖고 있죠. 경찰관이 비 맞는다고 우산 씌워준 일화도 있고요.

김운성:
작업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일정 정도 반향을 일으킨다는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까지 국민들께서 소녀상을 아껴주실 줄 예상은 못했어요. 국민여러분께서 소녀상 아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앵커:
아끼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애잖하겠어요. 소녀상 발표될 때 당사자인 할머니들 반응은요?

김운성:
할머님들의 20년 간의 수요집회 천회를 맞이했잖아요. 소녀상이 당신들 어릴 적 모습이고 소녀상이 할머님들이 말씀하는 말을 24시간 대변하잖아요.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앵커:
앞으로 작품을 할 때 대단히 많은 참고와 고려가 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활동하실지 마무리 말씀 삼에 전해 주시죠.

김운성:
외국에 소녀상이 설치될 계획입니다. 싱가포르와 미국. 다른 나라에서도 교포사회 중심으로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일본에서 그들이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할머니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겠죠. 그러기 위해서 2013년 8월에 저희가 서울시립미술과 분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관련 주제로 전시를 크게 합니다. 이후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지면 있는 힘껏 할 생각입니다.

앵커:
큰일하셨고요 앞으로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조각가 김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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