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위안소 설치 지시했다'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 지시했다'

2007.04.11. 오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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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일본군이 직접 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발견됐습니다.

한 일본인 전범의 재판 기록인데, 도쿄에서 윤경민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녹취:아베 신조, 일본 총리(지난 3월 5일)]
"중간에 낀 업자가 사실상 강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며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를 직접 지시했다는 새로운 증거 자료가 나왔습니다.

'점령지의 군정당국인 군정감부의 지시를 받고 민간 위안소를 설치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소에서 한 일본인 전범이 한 말입니다.

교도통신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이 일본인이 전후 체포된 뒤 이러한 진술을 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고 전했습니다.

이 인물은 지난달 일본 국회도서관의 야스쿠니 신사 자료 공개에서 1967년 전사자들과 합사됐던 것으로 밝혀진 '아오치 와시오'로 확인됐다고 통신은 전했습니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언론인 가지무라 씨가 입수한 전범재판소 판결문은 '아오치는 1943년 6월 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후 이를 수용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오치는 결국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 중이던 1943년 '사쿠라 클럽'이라는 위안소를 설치했습니다.

또 판결문에는 아오치의 애인인 네덜란드 여성이 헌병을 부르겠다며 협박해 소녀를 포함해 네덜란드인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여성들은 일본군에 체포돼 옥살이를 당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아오치는 1946년 10월 네덜란드군이 개설한 임시군법회의에서 금고 10년의 판결을 받은 뒤 복역 중 사망했습니다.

교도통신은 이 자료가 아베 총리가 부인하는 강제연행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군이 위안소설치에 직접 관여한 것을 나타내는 새로운 자료여서 주목된다고 전했습니다.

도쿄에서 YTN 윤경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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