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4] '결함투성이 장비가 새 차?'...허술한 규정에 안전은 뒷전

[현장24] '결함투성이 장비가 새 차?'...허술한 규정에 안전은 뒷전

2018.07.09. 오전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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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수십 년 된 낡은 크레인을 마치 새것인 것처럼 속여 판 수입업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현재 법규상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건데, 안전은 뒷전인 허술한 규정 탓에 엉터리 장비가 지금도 버젓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태민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다리를 보수하거나 점검하는 데 쓰이는 '교량점검차'입니다.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샌 녹과 기름이 묻어나옵니다.

2017년식이라는 자동차 등록증만 믿고 6억 원이란 거금에 들여왔지만, 알고 보니 새 차 위에 30년도 넘은 고물 장비가 달려있었습니다.

잦은 고장에 멈춰버리기 일쑤라 마음을 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박경원 / 사기피해 신고자 : 현장에 이 장비를 가지고 가면 항상 고장이 나다 보니까 오늘은 또 고장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나고요….]

차를 판 수입업체 측은 장비 상태를 알려준 적은 없다면서도, 구매자 스스로 알아보지 않은 책임이라며 발뺌했습니다.

[수입업체 측 : 이런저런 구체적 설명을 안 드린 건 맞아요. 처음에 본인이 잘못 보고 산 거잖아요. 그거 가지고 저희가 어떻게 이야기할 순 없잖아요….]

황당한 건, 이런 식으로 장비의 출처를 숨긴 채 등록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규정상 특수장치 차량은 자동차로 분류돼, 도로 운행에만 문제가 없으면 위에 올린 장비와 상관없이 등록이 가능한 겁니다.

[국토부 관계자 :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 되는지, 여부는 저희 쪽에서 별도로 보는 건 아닌 거죠. 별도 규정은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지난 2015년 제주도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크레인을 고정하는 볼트가 갈라지면서, 근로자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국내 3만여 대에 이르는 이동식 크레인들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으로 허가를 받는 실정입니다.

중고 크레인 장비들이 쌓여있습니다. 만일 이 장비에 결함이 있더라도 새 차에 옮겨 달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이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동식 크레인 생산업체 관계자 : 장비에 대한 연식을 확인하는 절차는 없습니다. 크레인의 성능 같은 건 상관없이, 구조변경이나 형식승인을 해 주는 게 현실입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크레인 장비의 안전 인증을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오래된 중고장비와 출처 모를 수입장비 사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이동식 크레인 사고는 무려 760여 건, 사망자 수는 70명이 넘습니다.

사고가 잇따르자, 당국은 부랴부랴 안전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고 전수조사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최근 2년의 유예기간을 뒀습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사고소식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홍성옥 / 크레인 사고현장 인근 주민 : 많이 불안하죠. 얼마 전에도 크레인 사고 있어서…이 동네는 공사장이 많아서 바람 조금만 불어도 흔들거리는데 많이 불안하죠.]

보여주기 식 안전대책의 틈새 사이로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크레인들은 지금 이 순간도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YTN 김태민[tmki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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