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해"

"번역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해"

2015.12.04. 오후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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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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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인터뷰]"번역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해"-얀 디륵스 가천대 유럽어문학부 교수(독일인 한국 문학 번역가,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 수상)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5/12/04 (금)
■ 진 행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문학 작품에는 작가의 정서뿐만 아니라 그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까지 깃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능통해야 하며, 작가의 정서가 담긴 문체 또한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데요. 최근 한국문학 번역 영역에서 새로운 외국인 번역가 세대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한국문학의 독일어 번역가이자 가천대 유럽어문학부 교수인 얀 디륵스 씨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얀 디륵스 가천대 유럽어문학부 교수(독일인 한국 문학 번역가,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 수상)(이하 얀 디륵스): 네. 안녕하십니까.

◇최영일: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얀 디륵스: 10년이나 됐어요. 10년 좀 넘었어요.

◇최영일: 강산이 변했겠군요. 그러면 처음에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셨나요? 계기 같은 게 있으셨습니까?

◆얀 디륵스: 저는 독일에서 한국학 전공했거든요. 그동안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을, 특히 무당굿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는데. 한국에 와서 서울대 공연예술 학사 과정 밟았어요. 그리고 강릉 단오제 공연 예술 문화에 대해서 좀 연구했고, 박사 학위 딴 후에 가천대학교 유럽어문학과에서 독어회화 강의를 시작했고, 한국문학번역원에서도 출강하게 됐어요.

◇최영일: 한국 문화에 원래 관심이 많으셨네요.

◆얀 디륵스: 예. 원래 있었는데, 직접 와서 지금 체험할 수 있어서 훨씬 좋았죠.

◇최영일: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독일어를 가르치고 계신데요. 올해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을 수상하셨습니다. 먼저 축하드리고요.

◆얀 디륵스: 감사합니다.

◇최영일: 그러면 이 한국문학 번역.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얀 디륵스: 저는 5년 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 실습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 때 문학 번역을 배우는 한국 학생과 독일 학생에게 문학 번역을 가르쳤는데. 주로 학생들의 번역물을 고치고 학생들이랑 수업 시간에 그것에 대해 토론도 했거든요. 번역의 정확성과 가독성을 좀 향상시키려고 했죠. 그래서 번역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었지만, 번역을 실제로 직접 해본 적은 그동안 아직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 저도 한 번 스스로 번역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을 정영문의 ‘바셀린 붓다’, 이 장편소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이 작품이 엄청 마음에 들어서 바로 번역을 하기 시작했어요.

◇최영일: 그렇군요. 예전에는 한국 문학 번역을 외국어를 아는 한국인, 또 그 나라의 외국인이 2인 1조를 이뤄서 한국인이 초벌 번역을 하면 외국인은 그를 좀 매만지는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선생님 이번에 말씀하신 대로 소설가 정영문 씨의 장편 ‘바셀린 붓다’를 단독으로 번역하신 것인데. 그만큼 번역이 마음에 쏙 드셨나 봐요.

◆얀 디륵스: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 고집이 좀 세서 공동 번역을 못 할 것 같아요. 번역을 할 때 안 그래도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잖아요. 이런 내면적인 싸움은 저에게 충분했던 것 같은데요. 추가적으로 공동번역가와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사실 이런 공동 번역을 할 때 문제가 여러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번역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잖아요. 번역가 여러 명이 있으면 작가의 목소리를 일관성 있게 살리기 어렵고, 원문의 흐름도 잃어버리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혼자서 번역해요.

◇최영일: 이게 고집 있다고 처음에 말씀 주시고, 공동 번역자와 싸우기 싫었다 말씀하셨지만.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는 데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철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번 대산문학상에서 심사위원들이 한글 원작의 문학성에 뒤지지 않는 번역을 했다.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기분 어떠세요?

◆얀 디륵스: 이런 평가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제 생각은 독일어가 정영문 작가님의 작품에 아주 적합한 언어인 것 같아요. 사실 정영문 문체의 특징은 아주 길고 복잡하게 얽혀진 문장들인데. 이런 문체를 문법이 정확하고 논리적인 독일어에서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덕분에 원작의 문학성을 번역문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최영일: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인 독일어로 번역하기에 조금 어려운 단어, 적합하지 않은 단어도 많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얀 디륵스: 그것은 물론 매번마다 좀 다를 수 있죠. 경우에 따라 좀 나름대로 생각해야 해요. 예를 들면 태권도나 김치와 같은 표현들 지금 잘 알려져 있어서 그대로 둘 수 있는데. 된장찌개, 막걸리, 이런 표현이 나올 때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야 해요. 조금 설명하거나 비슷한 말을 만들 수도 있죠. 가끔 추가적으로 각주를 달 수도 있는데. 좀 설명하기 위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 글의 흐름을 깰 수 있고, 좀 문학작품 그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최영일: 그렇군요. 참 많은 애로사항이 느껴지는데요. 교수님 혹시 그 외에도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시다면 어떤 점들이 있을까요?

◆얀 디륵스: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이 생각은 못 할 것 같은데요. 소설 번역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끈기, 그리고 참을성일지도 모르겠어요. 수백 페이지가 되는 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엄청 힘들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150쪽까지 힘들게 번역해 왔는데, 아직 200페이지가 남아있다는 느낌은 고무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중해야 하죠. 그리고 다른 중요한 점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번역에 대해서 비판적인 거리를 둬야 해요. 필요하면 마음에 들었던 표현들을 그냥 포기해야 해요. 그것도 가끔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최영일: 교수님. 교수님이 지금 개척하고 계신 길인데요. 외국인들의 번역이 많이 늘어나게 되면 한국문학의 한류. 이렇게 좀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보이시나요?

◆얀 디륵스: 그렇죠. 아직은 한국문학은 독일에서 잘 알려져있지 않아요. 사실. 그런데 아마 한 번만 관심 끌 수 있는 작품이 나오면 좋은 영향이 있을 수도 있는 것 같은데요. 아직은 기다리고 있어요.

◇최영일: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얀 디륵스: 네. 감사합니다.

◇최영일: 지금까지 얀 디륵스 가천대 유럽어문학부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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