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4] 공공기관들 네탓 타령에 시민만 불편

[현장24] 공공기관들 네탓 타령에 시민만 불편

2012.07.26. 오전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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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관계기관의 무책임한 책임 떠넘기기 탓에 애꿎은 시민들만 불편을 겪고 있는 현장을 고발합니다.

국철과 지하철이 교차하는 서울 노량진역의 지하철 환승 통로 공사가 서울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 간의 네탓공방으로 3년 가까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고 궂은 날씨에는 비를 맞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김웅래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금 보신 화면은 출근 시간대 서울 노량진역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지하철 9호선과 1호선을 이용하는 환승객들인데요.

9호선이 개통된 지 3년이 다 됐지만, 아직 환승 통로가 없어 출퇴근 시간대에 역사 밖은 그야말로 북새통입니다.

승객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인터뷰:김원석, 서울 등촌동]
"비 오면 비 그대로 다 맞아야 하고, 더울 때에는 땡볕을 지나가야 하니까 불편하죠."

[인터뷰:청경, 중국인]
"오늘 날씨 덥잖아요. 요즘 (너무 더운데) 아이들 때문에 1호선·9호선 (갈아타기가) 너무 힘들어요."

[인터뷰:권미경, 서울 노량진동]
"굉장히 멀리 가야 해요. 그런 불편함이 있고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바로 연결이 안 되니까 처음 이용하시는 분들은 못 찾는 경우도 많거든요."

불편함은 그렇다 치고 아예 환승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회권과 정기권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환승을 하려면 요금을 두 배로 내야 합니다.

[인터뷰:김일남, 충북 청주시 복대동]
"우리 같이 다리 아프고 나이 많은 분들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리저리 어디로 가서 타는지도 모르겠고, 가본 것도 아니고, 전 오늘 이쪽에 처음 왔는데 정말 어리벙벙하네요. 다른 곳은 다 잘 돼 있어요."

당초 계획대로라면 서울 노량진역 환승 통로는 올해 3월에 이미 완공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산부족과 부실 설계로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공사가 중단됐는데요.

먼저 지난 2010년 2월, 민자역사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1년 2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착공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공사가 다시 시작되는 듯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습니다.

설계 도면의 문제점이 발견된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섯 달여 만에 다시 시작된 공사는 기초 작업장만을 만든 채 올해 3월부터 또 중단됐고, 아직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해 11월부터 넉 달에 걸쳐 만든 작업장입니다.

한마디로 이제 땅만 파면되는 겁니다.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작업장에는 빗물만 고여있고, 일을 해야 할 현장 관계자들은 가슴만 치고 있습니다.

[인터뷰:공사 관계자]
"아무래도 현장 작업이 안 되니까 지금 회사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간접비 등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요."

공사가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현장 여건이 반영되지 않은 설계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래픽은 서울시가 공사 관계자들에게 넘겨준 설계 도면입니다.

이대로 공사를 한다면 환승 통로 계단을 설치하기 위해 승강장 대부분을 파내야 합니다.

10m 이상 깊이의 땅을 파야 하는 탓에 당연히 승객들의 보행로는 좁아지고, 보행로 바로 옆을 지나는 열차의 안전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사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과 감리단, 시공사는 공법 변경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처럼 계단이 설치되는 곳에 큰 관을 넣어 작업 공간을 확보하면 승강장 주변의 땅파기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관이 비싸기는 하지만 서울시 설계대로라면 작업 시간의 제약 때문에 인건비가 올라가고, 공사 기간이 길어져 큰 차이가 없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인터뷰:이진국, 노량진역 환승통로 감리단장]
"현재의 공법대로 하면 선로 침하로 인한 열차 안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고, 승객 동선을 확보하기 어려워 승객들의 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시공사와 감리단은 공사 착공 이후 줄곧 서울시가 제시한 설계에 대해 문제점과 예산의 한계를 지적해 왔습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공사를 발주한 한국철도시설공단 역시 공단 사업비로 공사를 했다면 이렇게 질질 끌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서울시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설계에 맞춰 예산이 나와야 하는데, 예산에 맞춰 설계를 하다 보니 현장 여건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공단은 공사 진행을 위해 자체적으로 설계 변경을 추진하고 있고, 부족한 예산은 공사 물량 조정 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물량 조정이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등 시민 편의 시설의 수를 부족한 예산에 맞춰 줄이겠다는 겁니다.

편의를 위한 환승 통로가 부족한 예산 탓에 오히려 불편한 시설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팔짱만 끼고 있습니다.

선로 밑에 고압케이블과 광통신케이블 등 중요 매장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수는 없다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 방법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발주처에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서울시가 할 수 있는 게 없고, 예산 증액도 곤란하다며 발주처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인터뷰:서울시 관계자]
"서울시 입장에서는 승강장 밑에 지장물이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하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밑에서 굴을 파고 들어가면...서울시에서 하는 것은 위에서 파 내려가는 공법이고 시설공단은 밑에서 위로 파 올라오는 공법 그 차이거든요...공법 결정하고 변경 계약하는 것은 철도시설공단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의견을 그렇게 준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사 지연으로 인해 발생된 추가 비용은 전체 공사비의 5분의 1인 20억여 원에 달합니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3년여 동안 끌어온 공사가 오히려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공공기관들이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면서 애꿎은 시민들만 이렇게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YTN 김웅래[woongrae@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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