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김정남 없애려 한 속내는?

김정은, 김정남 없애려 한 속내는?

2017.02.15. 오전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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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광규 / 매봉통일연구소 소장, 왕선택 /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앵커]
지금부터는 전문가 두 분 모시고 김정남 피살사건 자세히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장, 그리고 YTN의 왕선택 통일외교 전문기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왕선택 기자한테 질문드리겠습니다. 요즘 가짜 뉴스가 많아서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김정남이라고 사실이 확정적으로 나왔습니까?

[기자]
지금 그렇게 봐도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천천히 시간대로 말씀드리면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날짜가 넘었으니까 15일이죠. 13일 오전 9시쯤에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한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13일 내내 큰 관심을 끌었고 이러다가 어제 한국의 한 방송사가 저녁 8시쯤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보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이 부분이 말레이시아 당국이나 한국당국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 공식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아직도 확인이 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시각으로 밤 10시쯤 해서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일부 외신들이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을 인용해서 김정남이 맞다라는 보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 정도 되면 우리 언론의 관행으로 봐서는 공식적으로 말레이시아 경찰이 나와서 확인한 건 없지만 사실로 간주해도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앵커]
지금 그러면 사망을 팩트로 본다고 그러면.

[기자]
사실로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로이터통신의 보도를 보면 공항의 쇼핑구역 안에서 쓰러졌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기자]
로이터통신의 보도와 또 교도통신의 보도 또 BBC 등이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을 인용하면서 보도하고 있는데 말씀드린 것처럼 13일 오전 9시쯤에 공항의 쇼핑구역에서 한 남성이 쓰러졌다. 이 남성은 여성 2명이 지나간 뒤에 쓰러졌다. 쓰러진 뒤에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숨졌다, 이렇게 되는 건데 출입국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은 쇼핑구역이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럼 이른바 국경을 넘지 않은 거네요?

[기자]
그렇죠. 출입국 검색대를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말레이시아 안쪽이라고 봐야죠.

[앵커]
그러면 피살 당시의 상황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어보도록 할까요. 일단 말씀하셨듯이 13일 오전 9시경으로 지금 전해지고 있죠. 당시 2명의 여성 간첩에 의해서 독침으로 피살이 됐다라고 지금 전해지고 있는데요.

[기자]
그건 전해지고 있는 것이고 추정인데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봅니다. 처음에 보도한 언론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보도를 했고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독침을 이용해서 살해를 한 것이다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고 하고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이 용의자, 여성 용의자 2명을 현재 추적 중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당국이 현재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용의자를 추적 중이기 때문에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앵커]
남 소장님, 만약에 독침 피살, 언론에서 지금 얘기 나오는 대로 독침 피살이 맞다면 북한의 소행으로 봐야 되는 거겠죠?

[인터뷰]
아직 우리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게 전제한다고 그러면 북한의 소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김정은의 직접 지시에 의한 피살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왜 피살했을까. 만약에 피살로 확인되어진다면 몇 가지 원인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역시 김정은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행태의 공포정치의 모습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역설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이 상당히 불안한 것이 아닌가. 저는 오히려 그쪽에 무게를 두고 싶은데요. 김정남을 지금 이 시점에서 만약에 피살이다, 살해라고 그러면 살해할 만큼의 직접적인 요인이 있을까. 물론 최근에 미국 내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소수 의견이지만 향후 북한의 김정은이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하나의 레짐 체인지, 정권교체가 많이 공론화되고 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만약에 레짐 체인지를 한다고 그러면 후계 대안으로서는 김정남을 예상할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까지도 생각해서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굳이 김정남까지 외국에서 제3국에서 살해하면서까지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할 구체적인 어떤 원인을 가지고, 저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김정은이 상당히 조급한 상황 속에서 뭔가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상황 속에서 나온 하나의 공포정치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 차원에서 저는 오히려 김정은이 권력 유지하기가 불안한 상황에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앵커]
지금 조급, 불안 단어를 쓰셔서 그런데요. 이게 궁금합니다. 만약에 북한 내에서 평양이나 어디 북한 내에서 만약에 죽였다, 살해했다고 그러면 보통 저희가 말하듯이 숙청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지금은 말레이시아에서 했기 때문에 피살이라는 단어가 붙고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했다면, 감행을 했단 말입니다. 그만큼 다급할까요, 지금?

[인터뷰]
저는 그렇게 보는 게 이게 해석의 여지니까.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또 생각해 본 부분들이 사실 얼마 전에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보위성으로 바뀌었죠. 숙청당해서 강등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하고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유추해석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주로 숙청 과정에서는 국가 보위부, 국가 보위성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공포정치의 주요 실무행위자는 김원홍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김원홍이 불과 얼마 전에 아무런 이유 없이 일종의 정치적 숙청을 당해서 강등돼 있는 상태란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유추했을 때는 김원홍 입장에서 굳이 김정남 또 어쨌든 이복형이지만 역시 백두혈통입니다. 백두혈통을 가지고 제3국에서 피살한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저는 글쎄요, 그 부분에 있어서 만약에 그것이 김원홍하고 얘기가 됐다고 하면 김원홍이 거부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유추 해석입니다.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볼 수가 있겠고요.

또 하나 지금 엊그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상황 속에서 사실 북한이 미사일을 구체적으로 발사할 상황은 아니거든요. 지금 상황이 북한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물론 강하게 나오고 있지만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미국에 대한 도발이라고 하더라도 저강도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또 남북관계에서도 앞으로 우리 국내 정세에 따라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질 수 있거든요. 그런 상황 속에서 미사일 도발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텐데 했다면 저는 지금 김정은이 여러 가지 국내 정치적인 상황이나 아니면 우리 정치 상황도 그렇고 또 트럼프의 외교적인 부분,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역시 자기 방식대로 뭔가 그런 불안한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그 연장선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북한 핵심 지도부 내에서도 상당히 이견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라고 유출했을 때 오히려 이번 사건이 내부적으로는 북한 최고권력지도부의 약간의 균열적인 현상의 징후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도 해석을 해 봅니다.

[앵커]
지금 소장님께서는 김정은이 체제에 대한 불안감에 조급해서 피살 지시를 내렸을 수 있다 이렇게 유추를 방금 해 주셨는데요. 그러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부 전문가에서는 권력 투쟁에서가 아니라 권력 안정을 과시하기 위해서 김정은이 이런 피살 지시를 내렸을 수 있다 이런 분석도 나오고 있고요. 우리가 지금 계속 유추하고 있는 상황이지 김정은의 피살 지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자]
심지어 아닐 수 있는데...

[앵커]
다른 부분에서는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기자]
사실 김정남이 북한 김정은과 관련한 권력 체계에서 몇 단계의 축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래서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이 되고 그 와중에 김정남은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 쫓겨나고, 평양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있었고 그다음에 2011년에는 김정남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김정일도 사망을 했고 이제는 김정은과 둘이 맞서는데 그때 2011년에 김정일 사망 때 김정남이 참석을 안 했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인데도 장남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김정은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이미 대립각이 서 있었다라는 것을 충분히 유출할 수 있습니다.

[앵커]
안 했는지 못 했는지에 대한...

[기자]
그 당시 여러 가지 유추가 있습니다마는 우리나라 정서가 많이 남아있죠, 북한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데 아무리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장례식인데 참석하지 않는다. 이것은 김정은과의 관계 속에서 굉장한 대립각이 이미 그전부터 있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2009년도에 우암각 사건이라고 하는 김정은과의 물리적인 충돌 사건. 이런 것들이 하나의 단계가 되고요.

2013년에는 장성택, 고모부 장성택까지 처형이 됩니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은 김정남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보호막까지 사라진 그런 상태가 되겠습니다. 생활비를 사실은 고모부 장성택이 도와줬다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됐다면 이미 김정남은 2009년부터순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미 북한의 권력에서 완벽하게 제외가 된 상태였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런 선상에서 암살의 필요성은 좀더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가. 어쩌면 돌발적인 그 이후 다른 사건이 발생했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2년과 2013년 어간에 김정남이 망명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저도 들은 바가 있기는 합니다마는 근거가 워낙 명확하지 않아서 어떻게 보도하지 못했습니다마는 그 당시에 미국이나 또 한국을 상대로 해서 망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유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사실 그때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그런 것들이 간간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최근 그런 것들이 불거지면서 북한에서 암살해야만 하는 어떤 사건이 생기지 않았을까 이런 추정도 가능하겠습니다.

[앵커]
암살해야만 하는 어떤 사건이 만약 있다면?

[기자]
망명을 해서 혹시라도 김씨 가문에 대한 잘못된 부분들을 CIA나 한국의 정보팀에 가서 발설하게 된다면 북한에서는 암살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보는 거죠.

[앵커]
과거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망명설 또 아버지 장례식 불참 말고 그 전에 후계자로 지목이 됐다가 그게 후계자에서 탈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알려진 게 일본에서인가 사건이 있지 않았었습니까?

[기자]
2001년 5월의 일입니다. 김정남과 그의 가족이 불법적으로 위조된 여권, 도미니카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일본 텔레비전 화면에 촬영이 됐습니다. 그 이후에 문제가 됐다고 하는데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미움을 샀다.

[앵커]
국제적인 망신이다 그래서 아마.

[기자]
망신도 있고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한다, 이런 미움을 받았는데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그 당시 확인이 안 됐던 부분은 김정일이 그때 김정남 후계자로 지목을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가, 아니면 후계자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는가 이견이 많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후계자에 대한 구상이 없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다만 2008년 8월에 김정일이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약 한 달 정도 병상에 있다가 깨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후계자를 적극적으로 지목했다고 보는 게 정설입니다. 그래서 2008년 이전에 발생한 어떤 문제들을 후계 구도와 연결짓는 것은 과하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지금 김정은 가계도가 나가고 있는데요. 일단 김정일의 후계자로 후보군에 올랐던 게 김정은과 김정남이죠.

[기자]
지금 말씀드린 연도가 중요한데 후계 구도에 대해서 토론을 하려면 2008년 8월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계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김정남은 2008년도 이전에 이미 2001년도에 미움을 받은 상태여서 후계자로서는 다소 제외된 상태라고 봐야 되겠습니다. 그랬다가 2008년도 8월에 김정일이 갑자기 쓰러진 겁니다. 그래서 2주 이상, 3주일 정도 의식불명이었습니다. 의식불명이었다 깨어나서 다시 보니까 자기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후계자 지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해 10월부터 후계자 작업을 해서 2009년도 1월달에 김정은을 지목했다, 이런 설이 가장 유력한 설이 되겠는데 이 대목에서 김정남은 빠져 있었습니다, 이미. 이미 빠져 있었고 그러다 2009년도에 그런 사정을 모르던 김정남이 김정은의 미움을 받아서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쫓겨났다, 이런 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는 그런 설들입니다.

[앵커]
지금 과거 이력을 설명했지만 과거 김정남의 행적을 보면 일본, 마카오, 중국.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처음 아닙니까, 이번이?

[인터뷰]
글쎄요. 그건 개인 행적이기 때문에. 제 개인 생각에는 말레이시아도 수시로 왔다갔다 하지 않았을까. 김정남의 생활 근거지가 기본적으로 중국권이었죠. 거기다가 마카오를 중심으로 했고. 제가 알기로는 마카오에서 사실 우리 교민, 한인들하고도 교제를 했었다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싱가포르, 마카오 같은 중화권 내에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앵커]
제가 질문하고자 했던 건 왜 말레이시아에서 이랬을까 하는 장소적인 부분이거든요.

[인터뷰]
글쎄요. 그 부분은 알 수 없는 부분인데 제가 봐서는 김정남의 성격인 것 같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자주 왔다갔다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피살이라고 하면 역시 북한 내에서 계속 김정남을 추적했다라고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러면 말레이시아를 택했다는 것은 일단 중국의 범위 내에서 벗어났다, 피살이라고 그러면. 그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겠죠. 거기에다가 지금 보도 나오고 있는 것처럼 말레이시아가 상대적으로 중요 인물에 대한 보호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도 있고요. 이런 부분들이 고려돼서 피살이라고 그러면 말레이시아 동선을 예밀하게 추적해서 이번에 이행한 것이다 이렇게 유추할 수가 있겠죠.

[앵커]
왕선택 기자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김정남은 기본적으로 마카오가 근거지였는데 2013년도에 장성택 처형 이후에 사실 동남아를 돌아다니면서 낭인 생활을 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도 돌아다녔다라고 하는 곳 중 한 곳입니다. 마카오에서 사실 김정남이 금융과 관련된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말레이시아에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년에 서너 차례 정도 정기적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었다. 이런 것들이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고요. 프랑스에도 갔었고 인도네시아에도 갔었습니다. 프랑스는 당연히 아들과 관련된 여행일 것이고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마카오. 이런 곳들을 전전하면서 암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다, 우리가 이렇게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들 말씀하셔서요. 아들 김한솔 군이죠. 김정남이 피살되면서 아들 김한솔 군의 신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유학을 끝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기자]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대학교를 프랑스에 있는 대학에서 보냈고 졸업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앵커]
언론에 나와서 예전에 인터뷰를 하지 않았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2012년 김정일 사망 이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매우 자유분방한 태도로 말을 했고 그래서 관심을 끌었고 또 훈남이라고 해서 인기도 얻고 했습니다마는 그러나 굉장히 비운 속에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앵커]
소장님, 조금 전에 공포정치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숙청, 피살. 북한 내에서 숙청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김정은이 집권하고 우리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역시 장성택부터인데. 아마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워낙에 장성택이 구축한 북한 내 또 중국 관련 근거지와 세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사실상 중요한 인물들, 대부분 예를 들어서 김정은을 지도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줬던 인물들 대부분이 숙청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 속에서 장성택뿐만 아니라 리영호를 비롯해서 얼마 전에 있었던 현영철도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정치적 숙청은 끝났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번에 이복형이지만 김정남을 가지고 이렇게 했다라고 하는 부분들은 어떤 공포 정치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흐름하고는 맞지 않아요, 사실은. 지금 상황에서 김정남을 가지고 굳이 살해까지, 피살까지 하면서 자기 권력을 공고화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역시 의문점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아무래도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요인보다 지금 김정은이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약간 멘탈적인,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생각되어집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공포정치해 왔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김정은에게 충성해 왔던 사람들이거든요.

또 하나 공포정치하면서 숙청한 명목이 대부분 맞지가 않습니다. 대부분 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들. 어찌 보면 자신의 권위에 대해서 약간 불손하다 그런 이해도 되지 않는 이유를 가지고 숙청하거나 강등하거나 이렇기 때문에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 강하지 않을까. 또 하나 지금 김정은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상당히 열악한 상황 아닙니까? 거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하자마자 북한에 대해서 아주 강한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 상당히 심리적으로 두려운 상황을 만들 수 있겠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공포정치 권력유지에 대한 집착이 높아질 수 있게 되고요.

그렇다 보면 이번 같은 경우는 오버해서 김정남도 하나의 자기 권력에 장애물로 생각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되어지고 있고 아까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북한이 이 시점에서 미사일 발사 도발한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상당히 제한된 거지만 지금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 북한 상황에서 할 뚜렷한 이유는 없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여러 가지로 안은 모르겠는데 외부적 환경 속에서 상당히 압박감을 받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유추해석을 해 봅니다.

[앵커]
그런데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고모부 장성택에 이어서 만약에 이복형에 대한 피살이 알려진다면, 확인이 된다면 북한 내부에서는 어떤 분위기가 일어날까요? 반감이나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기자]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남의 존재는 모른다고 보는 게 기본입니다. 김정남의 출생 자체가 사실 공식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앵커]
그럴 수가 있나요?

[기자]
그렇죠. 말씀을 드리면 김정일은 1960년대 말에 김영숙, 그런 이름을 가진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게 정식 결혼이고 첫 번째 결혼입니다. 그랬다가 1970년쯤, 69년, 70년 그쯤에서 성혜림이라고 하는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여배우와 동거를 하게 되는데.

[앵커]
저희가 보통 본부인이라고 알고 있는?

[기자]
두 번째 부인입니다. 이 성혜림은 그 당시에 유명한 여배우였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 유부녀였습니다. 유부녀였는데 여배우를 김정일이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런 것이고 그래서 강제 이혼을 시킨 다음에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결혼 과정이 이렇게 불륜이 있었고 그래서 1971년에 김정남이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손자가 태어났는데도 손자가 태어난 사실 자체를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비밀 동거가 어느 정도 시간을 끈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남의 존재를 공개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설명은 아닙니다.

그래서 김정남뿐만 아니라 그 후에 고영희의 자손인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부인이 무용수 출신이고 유명한 분이었지만 재일동포라고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 때문에 부인을 공개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끝까지 지속됐었죠. 그랬다가 2009년에 갑자기 김정은이라고 하는 굉장히 김일성과 닮은 어떤 젊은 사람이 나타나서 후계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김정일의 아들이 김정은이 있다, 이렇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김정남을 기본적으로 모른다. 이렇게 봐야 되겠습니다.

[앵커]
저희가 그래픽 준비도 성혜림이 먼저 돼 있어서 첫 번째 부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김영숙이 먼저 결혼한 부인이고. 김영숙이 첫 번째 부인이고 성혜림이 두 번째 부인. 저희가 보통 성혜림이 본부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기자]
첫 번째 부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앵커]
딸만 둘을 낳았었죠?

[기자]
하나라는 말도 있고 둘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첫 번째 부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김정일이 그야말로 반해서 결혼한 사람은 성혜림입니다.

[앵커]
일단 현지에서 독살을 하고 도망을 간 것으로 알려진, 추정이지만 2명의 여성 간첩을 잡고 나면 보다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왕선택 기자 그리고 남광규 소장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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