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식통 "김경희, 사실상 식물인간" [김영순, 북한민주화위원회·김정아, 남북문화교류협회]

미 소식통 "김경희, 사실상 식물인간" [김영순, 북한민주화위원회·김정아, 남북문화교류협회]

2014.01.09. 오후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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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김경희의 사망설이 제기됐었는데 이번에는 식물인간 상태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미국 정보당국 소식통 말을 인용해서 이런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먼저 김정일의 부인인 성혜림의 동창이자 먼저 김영순 부위원장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혜림의 동창이고 장성택의 누나인 장계순 씨 그리고 김경희와 친분이 있었던 분입니다.

지금은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계시고요.

평양종합예술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북한 장교 출신입니다.

김정아 남북문화교류협회 교육위원입니다.

북한군 815 훈련소 부중대장을 지내셨고 북한 인민해방전선 보안팀장, 북한리제순군사대학 졸업하셨군요.

그 곳은 어디에 있는 어떤 곳입니까?

[인터뷰]

북한에서 국경경비총국 군사대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경경비, 해안경비, 국경철도, 이 경비를 총 관할하고 거기에 대한 전술을 교육했던 그런 대학이었는데 그게 해방되면서 인민무력부로 됐죠.

[앵커]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

평양시 주변 구역에 있습니다.

[앵커]

어디까지 계급이 부중대장이면 계급이 어디 정도 입니까?

[인터뷰]

중대장 바로 밑이죠.

원래 소대장 직무를 맡기로 되어 있는데 부중대장이 없다 보니까 중대장 바로 밑에서 소대장 역할도 하면서 중대관리를 전부 다 했죠.

[앵커]

알겠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년에 탈북하신 거고요.

우선 김경희하고도 북한에 계실 때 인연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인터뷰]

직접적인 인연인 것보다 외국여행자 상점이라는 면세점 비슷하게 있는데 이것은 한국에는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대통령도 가고 국민도 가고 다 갈 수 있지만 북한은 정치위원 상점이 특수도매소 안에 6명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 따로 있고 그다음 인민군 장성급, 소장급 이상 또 대상하는 상점이 식포상점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그다음에 부상급 이상 대상하는 사회에10호 상점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여행자상점은 김일성 가문이라든가 그다음에 항일투사라든가 또 외국 가는 정부사람들 일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구두로부터 양복, 맞춤으로 해 주는 상점입니다.

[앵커]

최상류층만 가는 면세점 같은 곳이군요.

거기에 아까 5호라는 게?

[인터뷰]

김일성의 직계가족을 5호라고 합니다.

[앵커]

거기에서 근무를 하셨다는 것이죠?

거기서 김경희를 직접 만나보시고.

[인터뷰]

김경희는 우리 상점에 거의 오다시피 했어요.

자주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김정일은 엄마 닮아서김정숙을 닮아서 키고 작고 7cm 신거든요.

김정일은.

그런데 경희는 아빠 닮아서 키가 크고 아주 체격이 웅장했어요, 좀 큰 편이었고 잘생겼어요, 김경희는.

그래서 지금 모습을 보니까 저보다 더 늙었네요.

그래 당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 할 때 경공업을 담당했을 때 평양시민에게 캔디 3kg를 공급했습니다.

김경희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하고 정말 평양시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한 사람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앵커]

어떤 노력을 했나요?

[인터뷰]

모든 생활적인 인프라를 높이기 위해서 한국에서 중국을 통해서 평양에다가 9억 5000불인지, 1억인지 하여간 중국을 통해서 내의류, 팬티, 러닝, 양말 이런 걸 보냈습니다.

그래도 평양시만 공급했거든요.

조선인민군 협주단은 김정일이가 제일 좋아하는 협주단이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에게 러닝 10개, 양말도 20켤레씩 지급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앵커]

김경희가 1946년생인 것으로 알고 있고 그렇다면 나이가 70세가 아직 안 된 거고요.

그러니까 지금 부위원장님의 설명을 들어보면 영민하고 나름대로 능력있는 사람이다.

[인터뷰]

능력있고 점잖고. 그런데 장성택 누이 장계순은 협주단에 저하고 같이 있었어요.

노래를 했거든요, 군부 서클에서. 장성택의 그의 형제들이 형도 작전부에 있었고 두 분 다, 그렇게 하고 장정한 소장이라고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을 하다가 미국으로 가서 아마 나이 먹어서 은퇴해서 돌아가셨을 겁니다.

[앵커]

장정환씨가요?

그분이 누구인가요?

[인터뷰]

장성택의 작은 아버지.

[앵커]

그리고 장성택의 두 형은 인민군 장성급으로 있었고.

[인터뷰]

그렇게 있다가 지금 다 돌아가셨을 겁니다, 나이 먹었으니까.

그렇게 하고 경희하고 장성택이, 아빠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는 것을 만류했거든요, 부부되는 걸.

만류해서 원산경제대학으로 내려 보냈는데 경희가 일요일이면 줄행랑을 쳐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장성택이와 경희가 휴양지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그 준비도 다 제가 했어요.

여행적인 모든 것. 의류, 내의 좋은 거 고급 것으로 다.

우리는 대성수출입 상사에서 들어오는 수입품과 그다음에 북한에서 생산되는 최고 특급만 취급했거든요.

[앵커]

그 당시 김경희가 최상류층만 가는 면세점 갔을 때 주로 어떤 상품들을 좋아하던가요, 취향이?

[인터뷰]

좋아하는 거 별로 그런 건 없고 옷이라든가 천이나 양복지랑 이런 걸 사가지고 가면 제가 다 포장해서 차에 같이 갖다주고.

또 김경희 뿐만 아니라 그다음 부인이 김정숙입니다.

본부에 있었고. 그 손주도 무용가였었고 그런데 삼일포에서 자살했어요.

그렇게 하고 김정숙이도 어디 부위원장 했었고 그래서 그분들이 상점에 오면 다 간부들이니까 저야 상업부 지도원이니까 일체 다 보장해 주고 그랬죠.

[앵커]

비밀을 다 보장해 준 다는 말씀이죠.

그 상점에서 일하는 것도 상류층에서 일하는 거죠.

[인터뷰]

토대가 좋아야 하죠.

당에 신뢰가 없으면 그 상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협주단에 있다가 남편이 무용을 못하게 해서 제대했거든요.

제대해서 김환이라고 있어요.

김일성의 부관 비슷하게 따라다니던 분이 있습니다, 김환이라고, 그분이 지금은 안 보이더라고요.

그분이 있을 때 그 부인이 저하고 하나 상급생이에요, 학교다닐 때.

그래서 내가 사회에 나왔는데 어떤 부분에 갔으면 모르겠는데 알선해달라고 김환 동지한테 부탁했거든요.

그래서 외국여행자상점이 그 당시 방직일용소에 속해있을 때 갔습니다.

[앵커]

김정아 위원님께서는 북한 인민들이, 국민들이 김경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느 정도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영향있는 인물입니까?

[인터뷰]

김경희는 김정일이의 가장 큰 총애를 받는 그런 동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다른 이복동생들을 그렇게 완전히 차별하지만 김경희만은 자기 친 여동생이고그리고 남동생도 아니고 여동생이기 때문에 김경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두 오누이가 우애가 되게 두터운 걸로 알고 있고 김경희의 존재를 일반 주민들은 잘 모릅니다.

[앵커]

잘 모릅니까?

[인터뷰]

잘 모릅니다.

그 우애가 두텁지만 그가 중앙당에서 어떤 직급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잘 몰라요.

김경희의 활동 내력을 저는 대한민국와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김일성이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사상교육을 할 때는 김경희가 등장을 합니까?
합니다.

그러면서 또 김정일이 김경희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분명히 교육도 들었거든요.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김경희가 어떤 활동하고 중앙당에서 어떤 역할까지 한다 이건 일반 주민들이 몰라요.

한국와서 솔직히 압니다.

[앵커]

2006년에 오셔서 그때 김경희가 이 정도 비중있는 인물이구나, 그때 아셨군요.

[인터뷰]

네, 장성택의 존재도 장성택도 누구인지 몰랐는데 장성택이 누구냐 물어보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북한사람인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김일성의 일가에 대해서 아는 것 자체가 반역입니다.

그걸 궁금해하고 물어보려고 해도 반역이거든요.

우리 위원장님도 솔직히 성혜림이 그 존재 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정치여독수용소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그걸 꿈도 못 꾸죠.

[앵커]

저희가 일반적으로 최근에 전해 듣기에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장성택에 대한 개혁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그리고 김경희가 만약에 없으면 김정은의 정권 기반도 좀 흔들리는 게 아니냐, 그런 관측들이 있었는데 지금 그 말씀에 의하면 좀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 김경희가 없더라도 사실 일반 주민들은 그게 별로 영향을 안 미친다는 겁니까?

[인터뷰]

일반 주민들은 솔직히 정권을 누가 잡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사야 버팁니다.

얼마 전에 국경쪽하고 전화통화를 했는데, 얼마전에 전화통화를 했는데 뭐라는 줄 아세요?

그게 누가 되든 장성택이 죽든 우리랑 뭔 상관이냐. 우리 밥만 먹여달라.

[앵커]

그런데 밥을 못 먹여주니까 문제잖아요.

[인터뷰]

최근에는 그래서 김정은이 주민들 영양을 많이 의식해서 군양미를 풀었답니다.

그래서 군양미를 주고 경제적인 역할을 할 만한 노동자들에게는 쌀로 시장급을 시장 쌀가격을 계산해서 쌀로 현물로 줬다고 합니다.

그 덕에 지금 시장의 쌀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고 시장에는 또 쌀장사꾼들이 하나둘 은퇴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저희가 듣기로는 북한 군부대도 식량이 부족해서 군인들이 나와서 민가에 약탈하기도 하고.

[인터뷰]

그건 그것도 시기마다 있죠.

그런데 북한 군들도 지금은 솔직히 밥을 조금 먹는 시기입니다.

왜냐 하면 새학년도 전투훈련기간이에요.

[앵커]

그건 뭡니까?

[인터뷰]

그건 북한의 전군이 육해공군에 속한 전군하고 붉은청년군위대, 노동조기대까지 100% 만반의 전투훈련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최고로 긴박한 기간이죠.

그런데 이 기간에 장성택 처형까지 있었고 다양한 일들이 많이 제기됐잖아요.

그건 북한이 이 기간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추측을 했거든요.

[앵커]

김경희가 그 당시에는 젊었을 때 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터뷰]

젊었을 때는 장성택이랑 결혼한 이후에 어쨌든 장성택이 한 나라의 주석의 가문 안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로 한 어깨쭉지를 낮춰야 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나 사나이잖아요, 인간적으로 칠 때.

북한도 사람 사는 데입니다.

그러면 경희한테 항상 저자세로 살기는 남자로서 힘든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차원에서 다른 데 나가면 다 모든 사람들이 따르고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장성택을 보면.

그러니까 아마 김경희가 여자로서 부인으로서 부부라는 게 조금 거부했겠죠.

그러니까 술도 마시고 간도 나쁘고 당도 높고 그런 차원에서 위도 나쁘고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경희의 사망설이라든가 아픈 건 여러 가지 있지만 그래도 최대로 살리느라고 애썼겠고 아빠도 죽고 어쨌건 아빠도 죽고 김정은 가문이 거의 죽지만 이복형제들만 있잖아요.

평일이하고 경진이는 외국대사관...

[인터뷰]

김평일의 김정일의 동생.

[인터뷰]

경진이도 동생이에요, 여동생인데 그 여자가 대사관 부인이거든요.

그런데 경진이가 해외에 나가서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아도 그 대사관의 성원 중 누구도 경진이가 낳은 아이들하고 말을 섞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너무 몰라요.

[앵커]

신분이 다르니까 말도 안 하는.

[인터뷰]

곁가지죠, 곁가지.

김정일이가 곁가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섞이지 않습니다.

평일이는 또 해외로 돌리지 않았어요.

폴란드 대사관에 있었고 쿠바에도 군사부분으로 가있었고 그 평일이 잘생겼어요, 엄마 닮아서 김성애 여사 닮았거든요.

잘생기고 아빠도 닮고 그랬지만 정일이는 볼품없고 그러지만 키도 작고 항상 7cm 신고 헤어스타일을 너무 바꿔서 머리가 다 빠진 거예요.

말하자면 그런 정도에서 정말 김일성 가문에 대한 것을 대한민국 식으로 분석한다면 하나도 정답이 없습니다.

아까 중대장정아 씨가 정말 옳은 분석을 했고 북한에는 1호 가계 5호댁에 대한 걸 김일성 김정일이 부인이 어떻고 이랬다가는 정치범수용소를 면치 못합니다.

가장 중대한 과오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인민이 누구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거론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김일성 시대에는 김일성에 대해서 위대한 수령님, 정말 위대한 태양이죠.

또 김정일 위대한 장군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이렇게 호칭을 달았고 김정은도 위대한 장군이라고 최근에 그랬잖아요.

그렇게 하고 지금 로드먼이 왔다 간 것에 대해서 상당히 대한민국이 왈가왈부하는데 김일성 시대에는 4월 15일 전에 전 세계 예술단을 다 불렀습니다.

가수들을, 4월에 봄축전, 이렇게 해서 그래서 전세계 사회주의나라를 비롯해서 유럽이라든가 필리핀 가수도 오고 다 왔거든요.

그래서 숙식비와 돈을 다 대주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2월 16일에는 세계 피겨선수들이 왔습니다.

그래서 빙상관에서 그걸 했거든요.

그렇게 하고 지금 김정은은 로드먼을 초청합니다.

그래서 자기 생일을 경축하는 겁니다.

[앵커]

부위원장님 시간이 2분 저희가 할 수 있는데.

1분 동안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아까 김 위원장님께서는 일반 주민들한테는 김경희가 없든 말든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최상류층 사이에서는 예컨대 김경희가 없어졌다, 유고다 김정은 정권기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저는 그렇게 생각안 합니다.

북한의 김기남, 최태복, 김양건, 우동측, 오씨일가 500명 조카들이. 다.

[앵커]

부위원장 잠깐만요 그사이에 속보가 들어왔는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재개하자는, 그제 사흘 전 박근혜 대통령 제안하고 그날 바로 또 공식적으로 적십자사가 제안을 했는데 결국 거부했습니다.

오늘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서 우리 측에 통보를 해 왔다고 합니다.

지난 6일에 우리가 제의를 하면서 10일, 그러니까 내일 실무접촉을 하자라고 제안을 했었는데 내일 하루 남긴 오늘 결국 거부했다, 어떤 이유, 어떤 명분을 들었는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고요.

어쨌든 설맞이 이산가족 행사는 이렇게 되면 쉽지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북한이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서 우리 측의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다, 김경희가 있건 없건.

[인터뷰]

그렇게 하고 어쨌든 북한체제는 김일성 시대로부터 충성의 열도로 김정일 시대를 거쳐서 오늘의 김정은 시대에 와서 김일성민족, 김일성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없는 지구는 이 세상에 없다라고 하는 막강한 200만의 군부와 이렇게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라고 저는 이렇게 봅니다.

역사의 시대흐름에 따라서 어느 순간에 가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김영순 부위원장님 말씀 들었고 김정아 위원님 저희가 말씀드리면서 아까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속보가 들어오고 그래서 충분히 듣지 못했고요.

다음에 저희가 한 번 더 꼭 모셔서 오늘 못하신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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