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강원 경찰서 성희롱 사건...현직 여경은 왜 서장을 고소했나?

[와이파일]강원 경찰서 성희롱 사건...현직 여경은 왜 서장을 고소했나?

2021.06.05.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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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강원 경찰서 성희롱 사건...현직 여경은 왜 서장을 고소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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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군 사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뒤늦게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돼야 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입니다.
하지만 이번 안타까운 여군 사건에 앞서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은 경찰 조직 내에서도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현직 여성 경찰관은 경찰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와이파일]강원 경찰서 성희롱 사건...현직 여경은 왜 서장을 고소했나?



▶장밋빛 직장 생활 대신 마주한 건 심각한 성희롱

사건은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9년 4월 꿈에 그리던 경찰 제복을 입게 된 A 씨. 강원지역 일선 경찰서에서 순경으로 근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A 씨가 마주한 건 장밋빛 직장생활 대신 끔찍한 직장 내 성희롱이었습니다.

경찰관이 된 A 씨는 동료 경찰관 B 씨와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B 씨가 다른 동료에게 잠자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서슴없이 얘기했습니다. 또 다른 동료 경찰관 C 씨는 그런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숙박업소 영수증을 B 씨에게 보이며
자신과 A 씨가 성관계했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A 씨 남자친구였던 경찰관 B 씨는 동료 경찰관과 함께 해당 숙박업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경찰 공무원증을 내보이며 CCTV까지 확인했습니다. 영장 없이 이뤄진 불법 수사였습니다.

현직 경찰관들의 소행이라고는 믿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일은 이후에도 벌어졌습니다.
B 씨는 동료 경찰관의 차량을 수배 차량으로 둔갑시켜 불법으로 차적 조회까지 했습니다.
차량 주인인 동료 경찰관을 A 씨와 교제하는 사이로 오해한 겁니다.
이외에도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순찰차에 함께 타 A 씨에게 자신의 안전띠를 대신 매달라고 하는 선배 경찰관도 있었습니다.


▶성적 모욕 폭로 호소문 올리자…"남녀가 사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

견디다 못한 A 씨는 지난 3월 경찰 내부 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도와주세요" 라는 제목의 글.
A4용지 23장에 달하는 긴 글에는 A 씨가 그간 겪었던 일들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해당 경찰서의 반응이었습니다. 경찰서마다 직장협의회가 있습니다. 일선 경찰관들이 회원으로, 경찰관들의 고충을 상부에 전달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입니다. 그런데 이 직장협의회에서 A 씨의 호소문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피해 여경이 쓴 글은 과장되게 작성한 부분이 있어 바로잡고자 한다"

해당 경찰서 직장협의회는 A4용지 3장 분량의 글을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립니다.
먼저 A 씨가 경찰서에 보관된 유실물 분실 사건과 관련돼 내부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A 씨가 폭로한 경찰서 내 성 비위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징계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A 씨와 관련된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A 씨가 이를 무마하려고 경찰서 내 성 비위 사건을 폭로했다는 겁니다. A 씨에게는 2차 가해나 마찬가지인 직장협의회의 주장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A 씨와 교제했던 B 씨가 동료 경찰관 말을 믿고 숙박업소를 찾아가 영장 없이 CCTV를 확인한 것은 '남녀 사이에 사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사건은 검찰에 송치돼 처리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A 씨는 심각한 성적 모욕을 당했지만, 정작 해당 경찰서 직장협의회는 남녀 사이에 벌어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 겁니다. 경찰 신분을 이용해 숙박업소 CCTV를 불법으로 확인한 것 역시, 반성보다는 검찰에 송치했다며 선을 긋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장협의회가 올린 글은 경찰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삭제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A 씨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난 뒤였습니다.



▶가해 경찰관 3명 중 2명 1심에서 벌금형 선고…나머지 1명은 불기소

가해 경찰관 3명 가운데 숙박업소 CCTV를 불법 조회한 B 씨 등 2명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경찰은 이들 2명을 직위를 해제했고,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징계를 내릴 예정입니다. 모텔 영수증을 가지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또 다른 경찰관은 불기소 처분을 받아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성희롱 피해 신고 반년 뒤에야 분리 조치…피해자 발령

피해 여경 A 씨는 올해 초인 지난 2월 다른 지역 경찰서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더 큰 문제는 오랜 기간 피해자 보호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2019년 5월, 그리고 A씨가 자신이 겪은 성희롱 피해를 해당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신고한 건 2020년 9월입니다.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를 하고 사실관계가 입증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조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분리 조치는 피해자를 다른 경찰서로 발령 내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신고 후 반년 가까이 지나서 말입니다.
A 씨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던 경찰서의 서장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이유입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가해자들과 분리조치가 왜 안 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가해자)세 명을 대기 발령시키게 되면 경무과로 출근을 시켜야 하는데, 네(A 씨)가 00계에 근무하고 있으니, 마주치면 더 힘들 것 같아 서장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피해자를 배려하는 척했지만, 아무리 봐도 오히려 가해자를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엔 아무런 조치도 없었으니까요.
A 씨는 오히려 자신을 배려해 가해자들을 대기발령 시키지 못한다는 답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참고 참은 A 씨, 견디다 못해 한 달 뒤 강원경찰청 청문감사실에 분리조치를 다시 요구했습니다. 돌아온 건 더 황당한 답변.
내부인사소통 망에 인사 고충을 작성해 원하는 경찰서로 발령 신청을 하라는 글을 써서 직접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A 씨는 직접 타 경찰서로 발령을 신청하는 글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A 씨가 마침내 다른 지역 경찰서로 발령을 받은 건 지난 2월.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2020년 9월부터 정기 인사 발령을 받은 2021년 2월까지 해당 경찰서와 강원경찰청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동안 A 씨는 온갖 험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가해자들과 직장에서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지속적인 2차 피해에 고통받았습니다.


▶경찰청 성희롱·성폭력 예방 지침에 명시한 피해자 보호

경찰청 성희롱·성폭력 예방 지침 제11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1조(피해자 등 보호 및 비밀유지)
① 경찰기관의 장은 조사 기간 피해자 등의 의사를 고려하여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와의 업무·공간 분리, 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③ 경찰기관의 장은 조사 결과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휴가,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인사 조치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⑤ 경찰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피해자 등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행위자와 동일관서에서 근무하지 않도록 하거나 직무상 연관된 보직에 배치되지 않도록 10년간 인사상 관리 한다.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엄중한 징계 등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제16조(징계)
④ 경찰기관의 장, 부서의 장이 성희롱·성폭력 관련 사안을 인지하고도 사건을 방조·은폐·비호하거나 2차 피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상급 경찰기관의 장, 소속 경찰기관의 장은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여 징계 요구, 직무 관련 범죄 고발 등 조치를 할 수 있다.


해당 경찰서, 그리고 강원경찰청은 피해자인 A 씨를 보호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지켜야 할 지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A 씨는 지난 5월 직접 자신이 근무했던 경찰서의 서장과 청문감사관실 관계자, 피해자보호 담당자, 강원경찰청 청문감사실 직원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해당 경찰서 서장은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당한 것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이라며 그 결과에 따른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A 씨 주장대로 본인이 분리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에 맞게 처벌 또한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성폭력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 하지만 정작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는 없었습니다.

홍성욱[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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