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김지은에게 돌을 던지는 당신에게…"평범한 일상이 소망" [포스트잇+]

아직도 김지은에게 돌을 던지는 당신에게…"평범한 일상이 소망" [포스트잇+]

2021.04.16. 오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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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씨는 2018년 3월 5일,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했습니다. 1년 반 뒤 대법원은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 형을 확정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김지은입니다>는 압도적 지지로 2020년 올해의 책에 선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향한 원색적 힐난과 인신공격이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벼랑까지 몰렸던 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질문과 답변은 모두 서면으로 이뤄졌습니다.

● 대법원 판결 후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무너졌던 일상은 얼마나 회복하셨나요?
▶ 김지은 : 피해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받으면 모든 게 다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생각했어요. 일상도 회복되고, 가해자와 가해자 주변에서 거짓을 말하던 사람들도 사과하고 반성할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사회는 오히려 저를 밀어냈어요. "너 하나만 조용히 있었으면 우리 조직은 대통령도 만들었을 텐데…" 하는 시선들이 느껴졌어요. 성 범죄자를 엄단하고, 여성의 인권을 지켜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공개적으로 가해자를 위로하고, 곁에 서 있어요. 개인적인 친분이야 그분들 마음이지만, 공적인 지위를 가진 분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적인 관계를 내세워요. 이건 '안희정 사건' 뿐만 아니라 이후 다른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어요. 안희정계 국회의원들은 2차 가해에 앞장선 사람들을 공직자로 채용하고 승진시켰어요. 충남도청은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발표를 하던 날 저를 면직시켰고, 도청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해가 지나도록 답하지 않고 있어요.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를 받고, 선거가 끝나면 권력형 성범죄는 잊혀지고, 다시 그들만의 친분이 중시되는 세상으로 돌아가겠죠. 그 과정에 또 다른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날 거고요. 적어도 제가 고발하기 이전으로 세상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막고 싶어요. 그 싸움이 끝나야 저도 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 2020년 올해의 책 설문에서 저자에게 '빚을 졌다'고 밝힌 출판인들도 많았는데?
▶ 저도 많은 분들에게 빚을 졌어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이 1심 판결에 분노해 거리로 나와 주셨고, 반찬을 손수 만들어서 보내주시기도 하셨어요. 수많은 분들에게 진 빚을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어요. 제가 세상에 바랐던 건 여성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바라봐달라는 소망이었어요. 유리천장을 깨는 일은 꼭 위로의 투쟁 이전에 여성을 동일선상의 동료로 바라봐주는 노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인간이자 같은 노동자으로서의 존엄을 존중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 가해자는 유력 대권주자였고, 충남도청의 수장이었어요. 제 신분을 보호받으며 조용히 고발하고 싶었지만, 사건이 온전히 수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높았어요. 경찰, 검찰, 법원의 고위공직자들과 수시로 교류하는 가해자의 범죄를 고발하는 일이었기에 세상에 알려야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이름이나 얼굴 정도는 금방 알려질 거라고 예상했고, 신고하려는 사실을 실제로 가해자 측에서 알아채고, 가해자부터 직장 동료, 가해자 가족에게까지 연락이 왔어요. 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인터뷰 이후 각 언론사에서 제가 가해자를 수행하는 모습들을 찾아내 무차별적으로 내보냈고, 개인정보와 거짓 자료가 뒤섞인 자료들이 온라인에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제 동의 없이 저와 관련된 거짓 뉴스들이 온라인을 장식할 때 저는 캄캄한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만 했어요. 하루하루 고통스러웠지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 지금이라도 사회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고발만으로도 피해자는 일상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고발 직후 직장과 집을 잃었어요. 노동자로서의 삶이 제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살고 싶다고 외쳤지만 세상은 죽음으로 저를 내몰았어요.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순간순간 견뎌가는 중에도,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과 거짓 주장은 제 남은 삶조차 흔들어댔어요. 2차 가해에는 가해자의 측근부터 정치인, 유명변호사, 영화배우, 교수 등 사회에서는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고, 허위 주장들이 탄핵되었음에도 그 분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2차 가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정치권과 정부, 사회 곳곳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노동을 이어가요. 제가 그토록 이어가고 싶었던 '노동자의 지위'가 거짓을 말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쉽다는 게 가슴 아팠어요. 진실을 증언해준 증인들은 내부의 적이 되어 직장을 잃고, 일을 할 수 없게 됐어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지금의 대통령 후보 분들도 이 일을 묵인하거나 방조했고, 의로운 증인들을 오히려 그만두게 했다는 보도를 접하기도 했고요. 모든 게 너무 괴이했어요. 피해를 당해 고발했고, 그 사실을 인정받았음에도 여전히 사회에서 내몰리고,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요. 그만큼 피해자의 고발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가십거리로 소비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받았어요. 누군가에게는 일생이 달린 간절한 외침이 일부 언론에는 더 많은 클릭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인터뷰하며 말씀드리기 죄송스럽지만, YTN에서도 제가 공무 중 수행하던 영상을 '범죄 당시 CCTV'라는 제목과 함께 제 얼굴에 빨간 동그라미까지 그려놓았어요. 일부 언론사에서는 기사 제목을 잘못 써서 다른 사람과 나눈 문자가 안희정과 나눈 문자로 왜곡되어 떠돌고 있어요. 가해자와 사진을 붙여놓은 것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사진을 내려달라고 한 언론사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어요. 한 문장의 거짓을 바로 잡는데 수백 번의 눈물과 절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론에서도 한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김지은입니다> 출간 후 1년이 흘렀는데, 책을 기록할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건네주셨어요. 그런 말씀들은 제게도 위로가 되었지만, 곁에서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했던 가족들에게 더 큰 위안이 되었어요. 기록할 때는 또다시 외면 받고 거센 세상에 휩쓸릴까봐 걱정했다면 지금은 책을 통해 제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시는 연대와 지지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힘내고 있어요. 그런 굳건한 마음으로 최근 기술 교육들을 받으며 일상을 되찾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점심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친구들과 커피 마시며 수다를 나누고 싶어요. 평범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이 제 소망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받은 연대와 희망의 힘들을 어딘가에서 힘겨워 하고 계실 또 다른 피해자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소외받는 분이 없도록, 그분들의 목소리가 외면 받지 않도록 함께하고 싶어요.

● 이 세상 모든 '김지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당신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존중받아야 해요. 당신의 선택이 옳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힘내세요. 침묵하지 말아요. 당신과 함께 할게요.


제작: YTN PLUS 정원호PD(gardenho@ytnplus.co.kr)
YTN PLUS 함초롱PD(jinchor@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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