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하루 딱 한 시간만"...수비탁구 마술사의 장수 비결

[와이파일] "하루 딱 한 시간만"...수비탁구 마술사의 장수 비결

2021.04.01. 오후 4:2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와이파일] "하루 딱 한 시간만"...수비탁구 마술사의 장수 비결
AD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우리나라 남자 탁구 사상 세계선수권 단식 최고의 성적을 낸 선수는 누구일까요. 유남규 감독? 유승민 현 탁구협회장? 모두 아닙니다. 지금도 현역인데요 바로 41살 깎신 주세혁(한국마사회)입니다. 외국 탁구계에서는 주세혁을 종종 마술사에 비교했는데, 남자 선수들의 엄청난 파워 톱스핀을 몇 십 개씩 받아낸 뒤 강력한 드라이브 한방으로 마무리하는 게 마법처럼 신기했기 때문이죠. 90년대 탁구팬이라면 대표적인 커트 수비수로 중국의 딩송, 북한의 리근상 정도를 떠올리실 텐데요, 주세혁의 포핸드(일명 '왕드라이브')는 이들을 단연 능가했었죠.


한국남자 최고 2003년 세계선수권 준우승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 당대 최강인 중국 왕리친, 마린이 모두 떨어진 상황. 역대 최약체 챔피언으로 평가되는 오스트리아 쉴라거를 결승에서 꺾었다면 한국 탁구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을 텐데요. 어쩌면 그 아쉬움이 주세혁을 계속 테이블에 머무르게 만든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은퇴했다 돌아왔지만 소속팀 마사회에서 어엿한 선수(플레잉코치 아닙니다!)로 활약
중인 주세혁. 빠른 80년생이라 대광고 3총사 시절 동기였던 최현진(한때 유승민 킬러!)이 이미 인삼공사 감독. 사실상 우리 나이 43살인데도 소년 같은 모습은 여전합니다. 최근엔 강원도까지 동호인 원포인트레슨을 다녀왓는데, 무려 2시간을 쳤답니다.


기나긴 34년, 여전히 재미있는 탁구

8살부터 탁구를 쳤다고 하니 이미 3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탁구가 재미있다는 주세혁.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유승민 등 쟁쟁한 후배들이 뒤를 받치면서 30살부터 소속팀 삼성생명에서 훈련량 등을 배려해 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 치는 시간을 줄여왔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외국 원정 경기 등에서 다른 선수들이 숙소 등에서 쉴 때 될 수 있으면 여행과 새로운 경험을 해봤답니다. 이미 '노는 탁구'의 맛을 깨달은 걸까요. 실제 주세혁 선수 SNS 대문 문구도 '하루 한 시간만'입니다. 바로 옆에서 훈련 중인 '얼짱 수비수' 서효원 선수를 가리키며, 마사회 여자팀은 저변이 엷은 편이라 효원이가 10년 이상 '소녀가장' 노릇을 한다며 격려인지 칭찬인지 모를 드립도 던졌습니다.



'베이글의 달인' 제빵사

[와이파일] "하루 딱 한 시간만"...수비탁구 마술사의 장수 비결

팀 연습뿐 아니라 일반 동호인하고 쳐도 지루한 줄 모른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언론 상대는 물론, 풀뿌리 생활체육과의 가교 역할인 탁구협회 미디어위원장을 맡았습니다.일선 감독들과 탁구계에서 일찌감치 이구동성 '가장 똑똑한 선수'라고 평가했기 때문이겠죠. 어릴 때부터 접대 탁구(?)를 곧잘 해서 지금도 인기가 많다네요. 그렇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합니다. 재작년 아마추어 동호인 최강자 y 모 선수와 친선 경기를 벌였는데, 놀랍게도 11-0 베이글을 만들었을 만큼 클래스는 여전합니다. 그때 붙은 별명이 제빵사. 여유가 되신다면 너튜브 찾아보시길. 주변 동호인들의 웅성거림이 생생합니다.


미디어위원장에 "가장 똑똑한 선수"

좀 구닥다리 같긴 해도 문득 공자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논어, 옹야 편) 원래는 학문에 대한 얘기였다는데, 탁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겠죠. 여자 실업 최고참 문현정보다 무려 4살이 많은 '장수 선수'. "탁구가 가장 쉽다"는 주세혁도 현재를 즐기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선수로 보내는 게 아닐까요.


놀고 즐길 줄 안다면 이미 '챔피언'

싸이의 노래 가사에도 있지 않습니까? '진정 즐길 줄 아는 당신이 챔피언'이라고. 정상까지 딱 한 뼘, 세계 2위를 찍었던 주세혁처럼 공교롭게 싸이 역시 빌보드 차트 2위에 그쳤군요. 최초이자, 어쩌면 남자 탁구 사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세계선수권 준우승. 아쉬웠던 자신의 기록을 뒤로 한 채 탁구 대중화와 저변 확대 등 새로운 분야에서 1위가 되려는 주세혁이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인지도 모르겠습니다.(사진출처 / 주세혁 연합뉴스)

서봉국[bksuh@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