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코로나 사태 속 그저 불행한 일?'...닥터헬기 회항 사건

[와이파일]'코로나 사태 속 그저 불행한 일?'...닥터헬기 회항 사건

2021.02.13.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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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코로나 사태 속 그저 불행한 일?'...닥터헬기 회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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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6일 오후 3시 11분.
강원도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운영 중인 닥터헬기가 이륙했습니다.
홍천지역 한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홍천까지 날아오던 헬기는 갑자기 회항을 결정하고 돌아갑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던 홍천군청 공무원 50살 김 모 씨는 결국 구급차로 이송됩니다.
홍천에서 원주까지 47분을 달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원주 '닥터헬기' 회항 사건입니다.

[와이파일]'코로나 사태 속 그저 불행한 일?'...닥터헬기 회항 사건



▶병원 측, 유감 표명 입장문 전달…원론적 답변 일관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원주 세브란스병원 측은 사건이 발생한 지 52일 만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문을 유족 측에 전달했습니다.

유족은 그간 계속해서 병원에 문의했습니다. 이륙해 날아오던 헬기가 홍천까지 거의 다 도착해 갑자기 왜 회항을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원 측은 매뉴얼에 따랐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52일 만에 내놓은 답변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019년 소방청에서 만든 67장짜리 '범부처 응급의료 헬기 공동 운영에 관한 매뉴얼'에는 헬기 이송 금지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이송금지:통제가 안 되는 공격적인 환자, 감염(의심) 또는 유해물질 오염(의심) 환자]
딱 한 줄입니다.



▶병원 "코로나 의심 환자"…유족 "코로나 연관은 지나친 판단"

병원 측은 숨진 김 씨를 닥터헬기에 태우지 않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들었습니다.

[① 급성 호흡곤란 증상 및 어지럼증 호소 후 심정지 가 발생하였던 환자로, 이후 자발 순환이 회복되었고, ② 환자의 급성 호흡곤란의 원인은 불분명하였으며, 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있었으나 감별진단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코로나 19에 의한 폐렴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씨가 처음 찾은 홍천 아산병원은 김 씨가 코로나19 환자나 의심 증상자가 아님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김 씨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을 뿐 호흡곤란 증상은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홍천 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심전도 검사도 받았습니다. 급성 심근 경색 환자임을 확인했고, 이 같은 사실은 이미 원주 세브란스병원 측에도 전달했습니다.

특히 호흡기 질환 환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원주 세브란스병원 측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원주 세브란스 병원 측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코로나19에 의한 폐렴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겁니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심근경색 환자를 상대로 폐 CT를 촬영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원주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홍천 아산병원에 찾아온 김 씨를 코로나 19 감염 의심 환자로 최종 판단했습니다. 홍천 아산병원에서 확인한 내용과 의료 기록은 아무 의미 없는 일로 남았습니다.

결국, 15시 11분에 출발해 홍천까지 날아오던 닥터헬기는 하늘에서 다시 회항했습니다.
15시 20분, 닥터헬기 탑승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15시 21분, 김 씨는 구급차에 실려 홍천에서 원주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그리고 15시 45분, 구급차 안에서 김 씨는 심장박동을 멈춥니다. 이후에도 심폐소생술을 계속 받으며 병원에 도착했지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병원 측은 헬기를 회항했던 또 다른 이유를 닥터헬기의 음압시설 부재로 들었습니다.
환자 탑승 공간과 기장실과의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아 감염 전파에 취약하다는 것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닥터헬기가 코로나 19 감염을 배제할 수 없는 환자를 이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도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탑승 의료진과 인력의 감염은 병원 내 감염이나 전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도 들었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의 감염병 전파는 지역 내 중증 응급의료체계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코로나19 의심환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입니다.

숨진 김씨가 닥터헬기에 무사히 탑승했다고 반드시 회복했을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닥터헬기를 타고 조금이라도 빨리 상급 병원에 도착할 기회를 놓친 사실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병원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코로나 19 유행에 따른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답변서를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속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의료진의 안전입니다. 의료진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행위가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다른 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닥터헬기 운행 '감소'

이미 전국의 닥터헬기의 운행 건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해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2019년 339건의 환자를 이송한 충남지역의 닥터헬기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161건으로 운행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기지역의 닥터헬기를 제외하고 인천과 전남, 강원, 전북, 경북 모두 운행 횟수는 지난 2019년에 비해 대부분 100건 이상 줄었습니다.

줄어든 운행 횟수가 모두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닥터헬기 운영을 총괄하는 국립중앙의료원과 현장 의료진이 이런 상황을 과연 알지 못했을까요?

안타까운 사고는 이미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 상태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확실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같은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조속한 대책 마련, 유가족이 바란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성욱[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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