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지적장애 1급 여성의 절규...성폭력 피고인은 어떻게 '집유'를 받았나

[와이파일] 지적장애 1급 여성의 절규...성폭력 피고인은 어떻게 '집유'를 받았나

2021.02.02. 오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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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원장 아들, 장애인 폭행·추행 혐의 기소
'징역 4개월·집유 1년' 판결문 살펴보니
"말을 듣지 않는다" 지적 장애인 수차례 폭행
재판부 "강제추행 진술은 신빙성 인정 어려워"
시민단체 "지적 장애인 특성 이해 못한 판결"
[와이파일] 지적장애 1급 여성의 절규...성폭력 피고인은 어떻게 '집유'를 받았나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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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불이 꺼져서 깜깜했지만, 전에도 들어온 적이 있어서 누군지 알았다. (2017년 7월 전주시청·시민단체 피해자 면담 中)"

"혼자 집에서 목욕하고 있는데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2018년 3월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피해자 면담 中)"


전북 전주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A 씨는 '엄마 아들'로 불렸습니다. 시설 원장인 '엄마'가 낳은, 비장애인인 20대 아들. 그랬기에 '선생님'으로 불리는 일반 직원과는 달랐습니다. 체격도 건장해서,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A 씨의 폭행이 시작된 건 2016년 11월이었습니다. 장애인이 갖고 있던 문화상품권이 화근이 됐습니다. A 씨는 치킨을 사 먹기로 해놓고 그걸 게임에 썼다는 이유로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의 팔을 수차례 때렸습니다.

이 피해자는 교회 대신 피시방에 갔다가 들킨 뒤 베개로 얼굴을 여러 차례 맞기도 했습니다. "너 같은 장애인 XX는 죽여버려야 한다"는 폭언도 있었습니다. 지적 장애 2급인 다른 피해자는 고기를 너무 많이 구워 음식을 남겼다가 머리채를 잡혔습니다.

이런 A 씨에게 전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김유랑 부장판사)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장애인들을 수차례 때려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초범이고, 폭행의 정도가 가벼운 점,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방청석 한쪽이 술렁였습니다. 정작 재판의 '큰 줄기'가 무죄로 나와서였습니다. 앞서 검찰은 A 씨를 지적장애 1급인 여성을 추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제추행)로도 기소했습니다. 장애인 강제추행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선고되는 중범죄입니다.

수사 기관에서, 또 법정에 이르기까지 강제추행과 관련한 진술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손을 옷 안에 넣어 만졌다", "입에 뽀뽀도 했다" 등의 취지였습니다. 조사는 피해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해 질문자가 구체적으로 물으면 단답형으로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다소 여지를 두긴 했지만, 장애인 성폭력 사건 전문가·검찰 진술분석관 등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혐의는 결국 무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사회 연령 5살 미만인 피해자의 진술에서 모순이 발견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재판부는 객관적인 증거와 충돌하는 진술도 있었다고 봤습니다. 진술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성폭행"은 "유사 성폭행"을 거쳐 "추행 및 폭행"이 됐다가, 다시 "추행 부위가 기억나지 않는다"로 번복됐습니다. A 씨 역시 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폭력 범행만큼은 일관되게 부인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에 등장한 범행 시각과 범행 내용 등을 살핀 뒤 "피해자의 지적 장애 상태를 고려하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선뜻 인정하기 어렵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사건번호 2018로 시작되는 이 사건은 첫 재판이 열린 지 2년이 지나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권지현 전주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소장은 "지적 장애인은 진술 능력이 부족해 이 자체로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지적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입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성 [kimms070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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