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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애써 외면했던 그 이름, '아동 간 성폭력'의 실체
Posted : 2019-12-08 08:00
[와이파일] 애써 외면했던 그 이름, '아동 간 성폭력'의 실체
'아동 간 성폭력'이란 말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성폭력'이란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 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입니다. '아동'이란 '아동복지법에서 18세 미만의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아동 간 성폭력'이란 '18세 미만의 아동이 18세 미만의 아동에게 성적인 행위로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 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입니다.

[와이파일] 애써 외면했던 그 이름, '아동 간 성폭력'의 실체

기자회견 중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6세 미만 아동이 관련된 문제에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가장 넓은 범위의 용어가 성적 일탈 행위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 행동'을 '성적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엔 수위가 너무 높아 문제를 축소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고, 피해 아이 부모 역시 '성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보다 중립적인 국립국어원 정의를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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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동 간 성폭력'은 있어도 없는,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 듯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 아이는 수치심에, 피해 부모는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쉬쉬해왔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것도 모호했습니다. 가해 행동을 한 아이도 어찌 보면 넓은 의미의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부모의 잘못이 근본 원인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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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동 간 성폭력'은 분명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2008년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5, 6학년 남자아이들이 3, 4학년 여자아이들을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성적으로 괴롭혔습니다. 무려 2년 동안 말입니다. 당시 상담 과정에서 가해, 피해 학생으로 거론된 아이의 수가 100명이 넘는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2001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 11살 남학생이 친구 2명과 함께 여동생 친구인 10살 여학생을 3차례 성폭행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같은 해에 초등학교 6학년인 13살 남자아이가 이웃집에 사는 9살 여자아이를 학교 화장실에서 성추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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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 당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최근 파장을 일으킨 사건처럼, 피해자가 5살 여자아이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7년 서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5살 여아가 11살 남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 있고요. 같은 해에 다른 5살 여아가 사촌오빠인 11살 남아에게 성추행을 당해 신체 주요부위를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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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도 '아동 간 성폭력'은 명백히 존재합니다. 2007년 해바라기아동센터에 따르면, 센터가 직접 상담했거나 피해자가 지목한 가해자 645명 가운데 만 7살 미만이 58명으로 8%였고요. 8살~14살이 101명, 16%에 달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피해가 많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생각입니다. 10살 미만의 성폭력은 법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는 데다, 피해자가 수치심에 끝내 입 밖으로 털어놓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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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가 낮아지는 현실, 왜 그럴까요? 이를 연구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심영희 교수의 '어린이 성폭력의 변화와 요인: 지구화의 맥락에서') 사건 자체가 늘어났을 수도 있지만, 전에는 '성폭력'으로 인식되지 않은 사건이 시대가 변하면서 '성폭력'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의 치마를 걷어올리는 '아이스케키'라는 게 있었죠. 이게 전에는 '놀이'였다면 이제는 '아동 간 성폭력'으로 인식이 바뀌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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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희 교수의 '어린이 성폭력의 변화와 요인: 지구화의 맥락에서'


연구 보고서는 '아동 간 성폭력'이 늘어난 원인도 분석했습니다. '음란물의 확산'도 주된 이유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의 범람이 크게 문제가 됐고, 특히 '로리타'로 불리는 아동포르노가 본격 등장해 비디오와 CD로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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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해바라기센터 홈페이지에 있는 아동 성폭력 사례들


음란물이 18세 미만 아동, 청소년에게 '그릇된' 영향을 끼쳤다는 설문도 있습니다. 2003년 중고생 113명을 상대로 연구를 했는데, 폭력적인 음란물에 접촉한 경험이 많을수록 이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성폭력을 용인하는 그릇된 성 의식을 갖고 있는 걸로 나타났고요. 특히 2001년 친구 2명과 여동생 친구 10살 여아를 3차례 성폭행한 11살 남아는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보며 여자 몸을 만지고 싶어 이런 짓을 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2008년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 역시, 가해 아이들이 음란물을 본 뒤 이를 모방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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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적발돼 폐쇄된 아동음란물 사이트


'아동 간 성폭력'은 분명히 존재하고, 원인도 있습니다. 대책은 없을까요? 이번에 피해를 본 부모가 올린 청와대 청원 취지 역시 '강제력 있는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거였습니다. 가해 아동 처벌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이 물어본 여러 전문가들도 '처벌보다 치료적 접근', '가해 아이 부모의 사죄와 교육', '부모의 책임을 묻는 법 제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동 간 성폭력 대책을 취재한 YTN 기사
[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12월 3일 YTN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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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성가족부의 국내외 아동 성폭력 연구 보고서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여성가족부의 2010년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미국은 1977년 아동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이미 40여 년 전에 아동 성폭력에 영향을 끼치는 아동 음란물을 막는 법적 근거를 만든 거죠. '피해자 보호기관'도 따로 만들었는데요. 1984년 범죄피해자보호법을 신설한 뒤 1988년 범죄피해자보호청이 설립됐습니다. 이 보호청은 전국 3천여 개에 달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관과 프로그램을 지원하고요. 피해자 상담과 법률 구조, 아동성학대방지프로그램 등을 제공합니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성폭행피해자지원재단이라는 게 따로 있어서요. 피해자에게 소송비용과 주거비 등을 지원합니다. 범죄 피해자 전체에 대해서는 가해자들이 낸 벌금으로 피해자배상계정을 만들어, 각 주 단위의 범죄피해자지원프로그램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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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88년 설립한 연방 범죄피해자보호청


영국은 1925년에 아동 성폭력을 전담하는 정부 부서가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무려 100년쯤 전부터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한 거죠.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의료기관에서 치료와 정신과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과 네덜란드, 체코의 경우 아동 성폭력 피해를 모니터링하는 전담 조직은 없지만 부정기적으로 피해 자료 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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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아동 성폭력 예방 공익 광고


하지만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 행동을 한 아이와 당한 아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분리하는지, 피해를 본 아이가 치료와 상담 등 비용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지, 가해 행동을 한 부모에 대해 어떻게 의무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지, 외국 사례에서도 딱 떨어지는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접촉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경우 매우 드문 케이스라, 외국에서도 접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 아이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어서, 분명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와이파일] 애써 외면했던 그 이름, '아동 간 성폭력'의 실체

외국의 아동 성폭력 예방 광고. "6명 중 1명의 아이는 성폭력에 노출돼 있습니다. 75%는 말하지 않습니다"


2008년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 후 정부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아동 성폭력 상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각 시도에 해바라기아동센터를 확충하고, 국무총리실 산하로 여성부와 경찰청 등 7개 기관이 참여하는 '아동여성보호대책추진점검단'을 만들었습니다. 10여 년 전인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더 발전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 파문에서 보듯, 피해를 본 아이의 후속 대책은 가해 행동을 한 아이 부모의 '선의'에 기대고 있습니다. 5살 아동 간 성폭력 사건에서 '강제력' 있는 제도가 없어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피해 아이 부모는 호소합니다. 지금, 정부 부처 장관이 해야 할 것은 '성폭력'인지, '성적 일탈'인지 구분지으며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앞으로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떻게 제도를 만들 건지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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