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뉴스] '위안소 운영업자'가 어쩌다 영웅으로...뒤틀린 역사

[자막뉴스] '위안소 운영업자'가 어쩌다 영웅으로...뒤틀린 역사

2019.08.16. 오전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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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중국 상하이.

김구 선생을 환영하는 인파 속에 한 무리의 여성들이 눈에 띕니다.

여성들 머리 위로 간판이 하나 보이는데 '한국 부녀공제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시 상하이 유일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구호단체로 알려진 곳입니다.

단체를 만든 사람은 '공돈'이라는 이름의 교포였습니다.

공돈은 자기 집을 보호소로 만들어 여성들을 돌보고 사비까지 털었다고 말했습니다.

'상하이 교포가 조선 여성들을 구제했다.'는 극찬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그야말로 난세에 등장한 의인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2년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상하이 지역 위안소 운영자 명단에서 공돈의 이름이 발견된 겁니다.

상하이시 무창로 336호.

규모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중일전쟁 직후 상하이로 건너온 공돈은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5년 넘게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착취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두 달 만에 위안부 보호와 갱생을 내 건 구호단체의 창설자로 변신한 겁니다.

[장석흥 /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 그 사람들은 진짜 교활하다고 할까요. 일제 식민지 시기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애국적인 모습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돈이 부녀공제회를 만들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단체 활동비로 중국 정부에 청구한 돈이 당시 돈으로 수천만 원에 이르는데, 구체적인 지출 기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김대월 / 나눔의 집 학예연구사 : 위안부 피해자들을 내가 수용하니까 예산 달라, 실제로는 막대한 예산을 탔거든요. 경제적인 측면과 자기 변신해야 하는 그 두 가지가 필요충분조건이 맞지 않았나….]

다섯 달 짧은 활동을 끝으로 공돈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남겨두고 홀로 귀국한 뒤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탄받아야 할 파렴치한 일본의 만행 뒤에는 시대에 무릎 꿇고 개인의 영화만 좇은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숨어있습니다.

취재기자ㅣ차유정
촬영기자ㅣ이승준, 박재상
자막뉴스ㅣ류청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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