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뼈아픈 역사의 흔적, 귀무덤 [박사유, 도쿄 리포터]

임진왜란 뼈아픈 역사의 흔적, 귀무덤 [박사유, 도쿄 리포터]

2010.02.11. 오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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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을 통해 일본의 정치권력을 휘어잡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사들에게 조선인 학살의 증거로 귀나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오게 했지요.

조선인들의 귀나 코를 모아두었다고 해서 귀무덤 혹은 코무덤이라고 불리는데요.

최근 일본의 한 감독이 귀무덤을 주제로 임진왜란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도쿄의 박사유 리포터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귀무덤, 코무덤...말만들어도 섬뜩한데요.

어떤 연유로 생겨난 말들인가요?

[답변]

한일양국의 옛 문헌들을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 민중들의 저항이 강해 일본군이 수세에 몰리자 남녀노소 따지지 말고 무조건 귀를 베어오게 했다고 합니다.

정유재란 때는 코까지 베어오도록 해 소금에 절인 조선양민의 귀와 코가 일본 땅에 넘쳐 났다는 기록까지 있는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소금에 절인 귀와 코를 세는 것을 낙으로 삼았고, 어느 부대의 누가 몇 월 몇 일 몇 개의 귀를, 또는 코를 베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귀영수증'이나 '코영수증'을 끊어주고 인사고과에 반영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왜병들은 당시 전공을 세우기 위해 조선인의 귀와 코 베기에 혈안이 됐습니다.

[질문]

구체적으로 어떤 문헌에 이런 역사적 증거들이 남아 있는 것인가요?

[답변]

일본 큐슈 출신의 승려이자 한의사로서 징병당한 케이넨의 '조선일 일기'를 보면 "조선인을 죽이고 귀와 코를 자르니 길바닥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고, 귀와 코를 잘린 어린애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우는 소리가 온 산천을 진동했다"고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신의 후대에 전하기 위해 적은 가문서 '정한록'에서 "강원도 춘천과 함경도 싸움에서 조선병사의 머리 70개, 귀와 코 1,300개를 잘라 보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 왜장 토토 다카도라의 신하인 나가노 기타에몬은 "조선인의 코를 자르기 시작한 것은 정유재란 때인데 전라도 남원성을 칠 때부터 도요토미가 내린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국내 사료로는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만 봐도 "왜적이 조선인을 보기만 하면 모조리 코를 베어 공을 세우게 하고 겸하여 시위하였다"고 적고 있고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왜적이 우리나라 사람의 코를 베어 소금에 담아 도요토미에게 보내면 그 나라 수도 북쪽의 대불사 옆에 구덩이를 파고 저장해 자국인들에게 위엄을 보이려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질문]

그래서 귀무덤 코무덤이라고 하는군요.

이런 귀무덤 코무덤은 일본 열도 어느 곳에 있나요?

[답변]

현재까지 확인된 귀무덤은 교토에 1기, 오카야마에 1기가 있는데요.

교토의 경우 이미 400여 년 전, 정유재란이 끝난 뒤 조선 의병이나 양민들의 귀와 코를 모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한국 전통의 묘지처럼 큰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위령비라면서 3층 돌탑을 쌓아놓았습니다.

매년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위령제가 올려지고 있는데요.

교토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그 중심에 도요토미의 신사가 있고요, 바로 그 건너편에 이 귀무덤이나 코무덤이 있습니다.

지난해 위령제를 올리던 한 재일동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만행을 설명 들은 뒤 학교에서는 그런 것 배운 적 없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질문]

올해들어 귀무덤과 코무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일본에서 상영되고 있다면서요?

[답변]

주로 한국의 고대사나 민속과 관련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마에다 켄지 감독이 '달빛 아래의 침략자 - 귀무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3년에 걸쳐 제작발표했는데요.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 상영운동이 벌어져 이미 도쿄, 오사카, 교토에서 상영되었고요.

입석표까지 동이 나 화면 바로 앞에까지 무릎 꿇고 앉아 영화 관람할 정도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귀무덤'은, 제작비 3,000만 엔을 들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배경과 역사적 사실들을 좇아 일본은 물론 한반도 전체를 발로 뛰며 만든 대작 다큐멘터리인데요.

각계 전문가들의 증언을 들으며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려 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일본에선 위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옆나라 한국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니 한국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본을 증오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거나 "귀무덤 옆에 30년을 살았지만 그런 참혹한 역사가 숨겨져 있는 줄은 꿈도 못꿨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 와중에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귀무덤이 또 하나 확인됐다면서요?

[답변]

일본 오카야마현 츠야마시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이치노미야에, 작고 초라한 돌무더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이 지역의 귀무덤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간판에 서 있었는데요.

"이 지역 귀족이었던 나카지마 마고사에몽이 조선출병 때 조선인을 죽이고 귀를 잘라 전공의 증거로 삼았다. 군령에 의했다고는 해도 정말로 슬픈 일이라 귀국 후 여기에 무덤을 만들어 '이지장'이라고 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였다"라고 이 귀무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93살 가량의 촌로가 귀무덤을 돌보고 있는데요.

전직 중학교 교사로 향토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누군가 역사를 남겨 둬야 한다면서 귀무덤 앞에서 합장을 해보여주었고요.

귀무덤 옆에, 귀모양처럼 돌을 갈아 만든 것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는데요.

노인께서는 적들의 귀를 잘라 와 여기에 묻고 그 상징으로 귀모양을 만들어 걸어놓았다면서, 귀가 아플 때 여기 와서 빌면 낫는다는 민간신앙이 이 마을에는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 방영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서 귀무덤이나 코무덤이 추가로 발견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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