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기획사 모두 모인다…단 1곳 남은 카세트테이프 앨범 공장
"국내산 카세트테이프 앨범, 5~10년 지나 사라질지도"
"국내산 카세트테이프 앨범, 5~10년 지나 사라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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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K팝 시장의 정수를 담은 단 하나의 상품은 앨범이다. 앨범의 중요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1세대 아이돌 팬들은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줄 서서 샀다면, 이젠 CD, NFC, QR코드 등 여러 형태의 앨범을 구매한다. 이러한 'K팝 앨범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K-앨.사] 시리즈다.
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 아이돌 가수들의 카세트테이프 앨범. 이 앨범은 놀랍게도 모두 한 업체에서 생산되고 있다.
어떤 기획사든 국내에서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면, 이곳을 거쳐가지 않을 수가 없다. 전국 유일. 이제는 단 한곳만 남아버린 카세트테이프 앨범 공장, 훈상레코드다.
이곳의 직원은 단 1명. 60대 후반의 사장 정윤열 씨뿐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혼자 생산에 들어가거나, 가끔 손이 모자라면 아르바이트를 쓴다. 이 작은 곳에서 그룹 라이즈, (여자)아이들, 밴드 데이식스 등 각종 K팝 아이돌들의 카세트테이프 앨범이 탄생했다.
사실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가공하는 업체는 전국에 두 곳이지만, K팝 앨범은 훈상레코드에서만 생산된다. 다른 한 곳은 주말에만 운영되고 규모가 더욱 작아 K팝 앨범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소위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만 일부 만든다.
1990년에 이 일에 뛰어든 정 사장은 "그땐 70~80개 업체가 있었다. 일 자체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당시엔 주요 생산 물품이 문제집, 교재 등에 수록되는 카세트테이프였다. 주문이 넘쳐 다른 회사가 소화해야 하는 물량을 넘겨받기도 했다.
그러다 가요 앨범 제작을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으로 불리는 메들리 앨범부터, '도로 위의 가수'로 불렸던 박진석, 민승아 등의 독집 앨범도 취입했다. 가수와 전속계약도 했다. "그땐 정말 많이 팔렸지."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 정도의 이야기다.
그 사이 교재 관련 일은 빠르게 하락세를 걸었다. 회사는 한차례 부도를 맞기도 했다. 교재용 CD 제작 일도 있었지만, 이도 급속도로 저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줬던 일은 완전히 사라졌고, 부업에 가까웠던 가요 음반 일만 남아 카세트테이프 생산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2010년부터 카세트테이프 앨범 일은 점점 더 없어졌어요. 공장이 200평이 넘었고, 직원도 많을 때는 스물몇 명 됐죠. 3~4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이 두 명 있었거든. 그런데 유지가 안 되니까…."
카세트테이프의 하락세는 전국의 수많은 업체를 집어삼켰다. 소리를 기록하는 자기 테이프는 이미 국내에 생산이 중단됐고, 플라스틱의 카세트테이프 몸체를 만드는 생산 업체도 단 한곳만 남았다. 투명 케이스 생산 업체도 두 곳뿐이다.
"자기 테이프는 이미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그래서 원가가 엄청 올랐죠. 점점 힘들어지는 거지. 앞으로 5~10년 가면 없어질 것 같은데…."
정 사장은 카세트테이프 몸체를 만드는 업체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거 국내에서 안 만들면 힘들거든. 이게 생명이여." 이 몸체를 수입하면 원가가 두 배 가까이 뛰어버려, 훈상레코드도 사업 유지가 어려워진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이 업체도, 케이스 생산 업체도 70대 사장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카세트테이프 앨범 생산 일은 70대 전후의 노년층이 지켜나가고 있는 유산이다. 정 사장은 "이제는 같이 일하는 거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같이 하지 않으면 힘들다"며, 동반자들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최근 2년 사이 반짝 생산량이 늘었다. 2023년엔 약 20만 개, 2024년엔 약 30만 개를 만들었다. 레트로 붐과 함께 불어온 훈풍이었다. 정 사장은 "이걸 사서 듣지는 않지만, 하나의 액세서리가 되지 않았나. 그리고 포토카드가 들어가니 이 앨범도 팔리는 것"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긍정적인 흐름에도 이 오랜 베테랑은 쉬이 기뻐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다"며 "문의는 있었는데 아직 확답이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시대가 그런 거니까"라고 말할 뿐이었다.
한때는 엄마에게 카세트테이프 한 장 사달라고 졸랐던 시절이 떠오르며, 이 공장이 오래도록 운영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나이 먹어도 혼자 할 수 있으니, 걸어 다닐 수만 있으면 계속해야지." 노장의 대답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YTN star 오지원 (blueji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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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 아이돌 가수들의 카세트테이프 앨범. 이 앨범은 놀랍게도 모두 한 업체에서 생산되고 있다.
어떤 기획사든 국내에서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면, 이곳을 거쳐가지 않을 수가 없다. 전국 유일. 이제는 단 한곳만 남아버린 카세트테이프 앨범 공장, 훈상레코드다.
이곳의 직원은 단 1명. 60대 후반의 사장 정윤열 씨뿐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혼자 생산에 들어가거나, 가끔 손이 모자라면 아르바이트를 쓴다. 이 작은 곳에서 그룹 라이즈, (여자)아이들, 밴드 데이식스 등 각종 K팝 아이돌들의 카세트테이프 앨범이 탄생했다.
사실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가공하는 업체는 전국에 두 곳이지만, K팝 앨범은 훈상레코드에서만 생산된다. 다른 한 곳은 주말에만 운영되고 규모가 더욱 작아 K팝 앨범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소위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만 일부 만든다.
사진출처 = 케이팝아일랜드, 예스24
1990년에 이 일에 뛰어든 정 사장은 "그땐 70~80개 업체가 있었다. 일 자체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당시엔 주요 생산 물품이 문제집, 교재 등에 수록되는 카세트테이프였다. 주문이 넘쳐 다른 회사가 소화해야 하는 물량을 넘겨받기도 했다.
그러다 가요 앨범 제작을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으로 불리는 메들리 앨범부터, '도로 위의 가수'로 불렸던 박진석, 민승아 등의 독집 앨범도 취입했다. 가수와 전속계약도 했다. "그땐 정말 많이 팔렸지."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 정도의 이야기다.
그 사이 교재 관련 일은 빠르게 하락세를 걸었다. 회사는 한차례 부도를 맞기도 했다. 교재용 CD 제작 일도 있었지만, 이도 급속도로 저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줬던 일은 완전히 사라졌고, 부업에 가까웠던 가요 음반 일만 남아 카세트테이프 생산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2010년부터 카세트테이프 앨범 일은 점점 더 없어졌어요. 공장이 200평이 넘었고, 직원도 많을 때는 스물몇 명 됐죠. 3~4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이 두 명 있었거든. 그런데 유지가 안 되니까…."
카세트테이프의 하락세는 전국의 수많은 업체를 집어삼켰다. 소리를 기록하는 자기 테이프는 이미 국내에 생산이 중단됐고, 플라스틱의 카세트테이프 몸체를 만드는 생산 업체도 단 한곳만 남았다. 투명 케이스 생산 업체도 두 곳뿐이다.
"자기 테이프는 이미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그래서 원가가 엄청 올랐죠. 점점 힘들어지는 거지. 앞으로 5~10년 가면 없어질 것 같은데…."
정 사장은 카세트테이프 몸체를 만드는 업체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거 국내에서 안 만들면 힘들거든. 이게 생명이여." 이 몸체를 수입하면 원가가 두 배 가까이 뛰어버려, 훈상레코드도 사업 유지가 어려워진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이 업체도, 케이스 생산 업체도 70대 사장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카세트테이프 앨범 생산 일은 70대 전후의 노년층이 지켜나가고 있는 유산이다. 정 사장은 "이제는 같이 일하는 거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같이 하지 않으면 힘들다"며, 동반자들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최근 2년 사이 반짝 생산량이 늘었다. 2023년엔 약 20만 개, 2024년엔 약 30만 개를 만들었다. 레트로 붐과 함께 불어온 훈풍이었다. 정 사장은 "이걸 사서 듣지는 않지만, 하나의 액세서리가 되지 않았나. 그리고 포토카드가 들어가니 이 앨범도 팔리는 것"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긍정적인 흐름에도 이 오랜 베테랑은 쉬이 기뻐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다"며 "문의는 있었는데 아직 확답이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시대가 그런 거니까"라고 말할 뿐이었다.
한때는 엄마에게 카세트테이프 한 장 사달라고 졸랐던 시절이 떠오르며, 이 공장이 오래도록 운영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나이 먹어도 혼자 할 수 있으니, 걸어 다닐 수만 있으면 계속해야지." 노장의 대답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YTN star 오지원 (blueji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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