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의 얼굴을 읽어내는 재미

[Y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의 얼굴을 읽어내는 재미

2017.08.30.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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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일그러진 살인자부터 자신과 닮은 눈빛을 알아채는 예리함. 여기에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지만, 어떻게든 기억의 파편을 잡으려는 모습 등 배우 설경구의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얼굴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 제작 쇼박스·W픽처스)이 안기는 강렬한 경험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원작의 설정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 등에 변화를 줬다. "소설을 읽고 40분 만에 영화화를 결정했다"는 원신연 감독은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를 만들겠다"는 남다른 포부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영화는 주인공인 병수(설경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병수 때문에 미스터리는 켜켜이 쌓인다. 설경구의 열연은 놀랍다. 원작 속 병수가 책을 뚫고 나온 듯했다. "세상엔 꼭 필요한 살인이 있다. 청소라고 하자"라며 살인을 저지르는 살기는 물론 치매에 걸려 유약하고 힘없는 노인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병수는 연쇄살인범이었으나 17년 전 사고로 살인을 그만뒀다. 수의사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병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주(김남길)의 차를 들이 받는다. 그의 눈을 보고 자신과 같은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마침 병수의 마을에서 20대 여성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병수는 태주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태주는 병수의 외동딸 은희(설현) 곁을 맴돈다.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녹음하고, 필사적으로 일과를 기록하며 태주를 잡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기억은 자꾸 끊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희미해져 가는 병수의 기억과 기억을 붙들기 위한 기록 그로 인한 망상과 현실을 오가며 조각난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재미가 돋보인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신선한 설정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지지만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에서는 다소 맥이 풀린다. 원작 속 큰 비중이 없던 태주는 영화에서 그 사연이 촘촘히 그려지나 기존 영화에서 봐왔던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후반부에 반전이 집중되며 놀라움을 안기지만 늘어진다는 인상도 남긴다.

아쉬움을 덮는 건 설경구다. 원작 속 펄떡이는 생명력의 병수는 설경구의 연기력을 만나 더욱 입체적으로 변모했다. 설경구는 매일 줄넘기를 1만개씩 하면서 10kg을 감량했다. 특별한 분장 없이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체중을 감량한 탓에 바짝 건조하고 마른 노인의 느낌을 안긴다.

'박하사탕'(2000)부터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실미도'(2003) '역도산'(2004) '그놈 목소리'(2007) '해운대'(2009) '타워'(2012) '감시자들'(2013) 등 충무로에 존재감을 뽐내온 설경구였지만 최근 몇 년간 선보이는 작품들은 흥행성과 작품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설경구 역시 "흥행을 떠나 근래 몇 작품은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루시드 드림'(2016) 촬영이 끝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작품을 했다가는 아웃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였다. '루시드 드림' 촬영 직후 찍은 작품이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나의 독재자'(2014)에서 특수분장으로 늙은 모습을 표현했던 설경구가 마음먹고 진짜 늙으려고 한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바삭바삭하고 수분기 없는 피부는 '나에게 창피하지 말자'는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오는 9월 7일 개봉.

YTN Star 조현주 기자 (jhjdhe@ytnplus.co.kr)
[사진출처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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