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빛은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다…영화 '꿈의 제인'

[★톡] 빛은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다…영화 '꿈의 제인'

2016.11.13. 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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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묻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 별로 궁금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제인(Jane)은 말한다.

"우리 죽지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가출 소녀 '소현(이민지)'은 우연히 알게 된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과 그가 보살피는 아이들의 '가출팸'을 만난다. '가출팸'은 가출한 아이들이 모여 가족처럼 생활하는 공동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곁을 떠났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모르겠단다. 사랑보다는 상처에 익숙한 그들이다. 지독하게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럼에도 유쾌함은 잃지 않는다.

올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관객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영화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 제작 서울집)'이다. 남녀배우상과 CGV아트하우스상까지 3관왕을 휩쓸었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사는 '제인'을 보며 묻고 싶은게 많았다. 이 영화를 시작하고 완성한 조현훈 감독과 배우 구교환, 이민지를 최근 YTN 뉴스퀘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Q. '꿈의 제인'은 어떤 영화인가.

조현훈 감독(이하 조) : 소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외부 시선으로 소수자가 된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와 구분 지을 수 없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거다. 그 '우리'라 함은 이런 이야기들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비단 그렇게 구분 짓지 말고 나의 아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면 좋겠다.

Q.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글을 쓰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다른 분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나는 그렇다). 이번 영화 속 캐릭터들은 개인적으로 계속 관심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장편을 찍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나서 내가 가장 관심있던 그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꿈의 제인'은 '서울집'을 연출하고 '만일의 세계' 등을 제작한 조현훈 감독의 장편 입봉작이다)

Q. 구교환, 이민지 배우와는 어떻게 만났나.

: 내가 두 분의 팬이었다. 구교환 선배님은 출연 영화나 직접 연출한 작품들도 많이 봐서 관심을 가졌던 분이다. 이민지 씨는 이런 말하면 식상할지 모르겠지만, 감독들이 동경하는 배우다. 꼭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두 분께 제가 부탁을 하게 됐다.

Q. 두 배우 연기를 본인 영화로 보니 어떤가.

: 민지 씨가 보여준 '소현'은 '내가 이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줬다. 소현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끌어갈 수 있겠다'라는 걸 보여준 연기였다. 결국 소현이가 카메라에 담긴 순간 이 영화는 시작됐다. 그리고 '제인'을 향한 구교환 씨의 애정을 느꼈을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지어야할지 분명해졌다. 촬영 내내 그걸 느끼게 만들었다. 두 배우한테 그런 에너지를 받았고 그게 결국 영화를 완성시켰다.

Q. 구교환에 대한 배우 김의성의 심사평이 인상 깊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올해의 배우상' 심사한 김의성의 심사평 일부)

올해의 남자배우상은 '꿈의 제인'에서 '제인' 역할을 연기한 구교환 배우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미스터리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황홀하게 연기해주었고, 말하는 것보다 듣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상업적 필드에서 더욱 기대가 되는 젊은 배우들이 있었지만, 출품작 안에서의 퍼포먼스를 놓고 본다면 이 배우의 연기가 저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직였습니다.

배우 구교환(이하 구) : 전문을 봤다. '누군가의 예술적 노력의 결과를 평가한다는 것, 그것에 순서를 매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로 시작하는 심사평을 보고 김의성 선배님의 마음이 느껴졌고 너무 감사했다. 내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Q. 트랜스젠더를 연기했다.

: 모든 연기가 쉽지 않다. 너무 교과서적인 답인가. 그런데 정말 그렇다. '제인을 연기하기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촬영 내내 애틋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였다. 원래는 신마다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는 편인데, 이 시나리오는 딱 보자마자 '연기 하기 바쁘겠다' 이 생각이 들었다. 제인의 말투나 동선, 사소한 움직임들까지 너무 정확히 시나리오 상에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다. 이런 캐릭터를 향해 달려가는 건 배우로서 너무 즐거운 일이다.

Q. 그런 제인은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 나는 무엇보다 '제인'의 신념이 크게 와닿았다. 막 어떻다고 전파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네 이렇게 살아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라고 한다. 나도 그런 '제인'을 보며 힘을 얻고 응원을 받았다. 내가 느낀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Q. 그 어려운 걸 해냈다.

: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다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Q. 소현을 연기하며 어떤 마음이었나.

배우 이민지(이하 이) : 제인이나 지수(또다른 가출 소녀, 배우 이주영)가 눈에 띄는 캐릭터고 소현은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이야기의 화자 역할을 잘 해보자고 생각했다. 최대한 무난하게 보이려했다. 튀지 말자. 화자의 역할에 충실하자 이런 생각이 컸다.

Q. 그 고심이 영화에서 보이더라.

: 찍을때는 충실히 했는데 막상 완성된걸 보니까 '아 너무 표정이 다 거기서 거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나 화났어' 이런 걸 그대로 보여주면 너무 일차원적인 느낌이고. 그걸 감추면서 감정이 드러나야했다.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게 아니라 관객들이 읽어줘야하는 캐릭터다. '이걸 읽어줄 사람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알아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심사위원 배우 조민수 선배님의 평이 '소현'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그림자 같은 사람'. 한 대 딱 맞은 느낌이었다. 그걸 한번에 캐치하시다니.

Q. 중간 중간 나오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 보통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다음 후시녹음(편집본에 대사 등을 녹음하는 것)을 하니까 촬영 당시의 감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자칫 루즈해질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연기만큼 부담이었는데 감독님이 지도를 잘해주셨다.

: 첨언을 하자면 극중 소현이 '잘 지내시나요'라고 했을때, 러닝타임이 한참 남았을 때인데 울컥하더라. 그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이라는 말 참 좋아하는데 못쓰겠다 요즘. 하하. 아무튼 민지 씨가 겸손하게 말하지만 정말 잘했다고 제가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이다.

: 후반 작업하고 영상 보면서 민지 씨한테 제일 고마웠던 부분이 그런거였다. 영화 전체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연기 톤을 컨트롤하는게 느껴졌다. 자기가 어느정도로 맞춰야 영화 전체가 완성될지 계산하고 연기를 했다는 걸 확인했다. 모든 영화가 그렇다. 주인공이 그렇게 연기 해주지 않으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감독들은 그런데서 배우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용기를 얻는다. 후반 작업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에너지'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 '힘'이라고 하자.

Q. 영화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뭔가.

: 주변인들 덕분이다. '어떻게 하지' 할때 조현훈 감독이 다가와서 '꿈의 제인'을 하자고 한다던가. 그러면 다시 또 힘이 쌓이고. 혼자서는 이길수 가 없다. '꿈의 제인'도 연대를 이야기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게 다시 다짐을 하게 되고. 아직 직업 배우라고 할 수가 없다. 수익을 주지 않으니까. 물론 그것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흔들리거나 피로해지는 순간에는 역시나 주변의 좋은 동료들한테 힘을 받는다.

: 나도 비슷하다. 배우는 누군가 찾아줘야하는 직업이지 않나. 한번 잊혀지면 다시 불러내기 힘들고, 찾아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딱 '꿈의 제인' 들어오기 전에 그런 상태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독립 영화쪽에서는 부르기 애매하고, 상업 영화 쪽에서는 마이너가 된 느낌? 그래서인지 나를 안 찾아줄 때였다. '뭔가 다른 걸 배워놔야하나' 할때 작품이 하나씩 들어왔는데, '꿈의 제인'이 또 그랬다. 고향 같은 독립 영화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제인' 역을 누가하냐 여쭤보니 구교환 배우가 한다고 하시더라. 바로 감독님께 '저 할게요' 이랬다. 내게 있어 동력은 우선 그런 현장이 너무 재미있고, 날 찾아주는 인연들에 대한 감사함인 것 같다.

: 이번 영화를 하면서도 느꼈다. 조명, 촬영, 미술, 분장 팀 전부다 공들였다는 느낌이 든다. 다들 창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게 영화에서 그대로 느껴지지 않던가. 나는 현장에 가면 자연스럽게 제인이 됐다. 이것은 온전히 여러 사람들의 힘이다.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플플달)'의 OST 음악까지도 이 영화에서 인물이었다. 그 음악이 계속 맴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그런데 말하다보니 좀 수상소감 같다. 아닌가.

Q. '꿈의 제인' 극장에서도 빨리 보고 싶다.

: 아직 개봉 일정이 정확하게 잡히진 않았지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더 빨리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 관객들과 공유하는것이 사실 영화의 결과물이고 가장 큰 미덕이니까. 어떤 방식이 좋을지 감독님이 고심을 많이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Q. 앞으로 감독으로 어떤 영화를 보여주고 싶나.

: 사람이 달리기 같은 걸 해야 몸이 건강해지듯,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운동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을 하는게 맞지 않나. 내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배우들과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시기에 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Q. 못다한 이야기 없는지.

: 혹시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 아시나. 드라마퀸이랑 맷돼지라는 두 분이 진행하는 건데, 정말 웃기다. 한번 들어보시라. 그 코미디가 아마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코미디일거다. 못다한 이야기 하라하니 너무 팬이라 갑자기 생각났다. 하하. 그리고 이 얘기도 꼭 하고 싶다. 조현훈 감독님 단편영화 '서울집'을 추천한다. 편지 형식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꿈의 제인'과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이다. 그런데 제작사 이름까지 '서울집'으로 할 줄 몰랐다.

: 아, 지방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집을 '서울집'이라고 하지 않나. 전주집이라고 하듯. 그런 느낌의 제목이다. 나는 그 영화에서 제목이 제일 좋다. 시골 출신이라서.

어딘가에 있을 '뉴월드'와 상처를 떠안고 살아갈 이 시대 모든 '제인'에게 하고 싶은 말, 조현훈 감독이 '제인'의 입을 빌려 던졌다는 질문은 어쩌면 우리 모두를 향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 몇일 전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가수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YTN Star 최영아 기자 (cya@ytnplus.co.kr)
[사진 = YTN PLUS 김진화 모바일PD / 영화 '꿈의 제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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