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3·15 의거 60주년...최초 유혈 민주화운동

마산 3·15 의거 60주년...최초 유혈 민주화운동

2020.03.14. 오후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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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시작은 옛 경남 마산에서 시작된 3·15 의거였습니다.

3·15 의거가 대한민국 첫 유혈 민주화운동으로 올해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박종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60년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가 있던 옛 경남 마산 오동동입니다.

1960년 3월 15일 3·15 의거가 시작된 곳입니다.

민주당 당원들이 3·15 부정 선거를 부인하는 공고문을 내걸고 거리로 뛰쳐나가 선거 무효를 외쳤습니다.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에 합세했고, 등불처럼 퍼진 목소리는 만 명으로 커졌습니다.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고, 결국 12명이 숨지고 250여 명이 다쳤습니다.

[강성부 / 3·15의거 참가자 : '부정선거 무효''투표권 내놔라' 구호 외치면서 올라갔는데 중간에 시민극장쯤 가서 또 총성이 발사돼서 몇 사람이 또 후송되었다고….]

4·19 혁명의 불길이 점점 거세진 건 김주열 열사가 마산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고등학생이던 김주열 열사는 3·15 의거 당일 실종되었다가 4월 11일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습니다.

당일 2차 마산 시위가 이어졌고, 당시 마산의 8개 고등학교가 모두 참가했습니다.

1·2차 마산 시위의 사망자 14명 가운데 12명은 모두 20살이 안 된 사람들입니다.

시위를 이끈 건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서익진 /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당시 고등학생이라면 사회적 식자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지금 학생들보다 사회적 의식이 높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많이 호응해서 참여했기 때문에 총탄에 많이 희생되지 않았나….]

1·2차 마산 시위에서 유혈 사태가 났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시위하다 괴청년들의 습격으로 역시 유혈사태로 번졌습니다.

결국, 다음날 전국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총궐기해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4·19 혁명이 시작된 겁니다.

대한민국 첫 유혈민주화운동인 3·15 의거는 4·19 혁명과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YTN 박종혁[johnpark@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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