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듬 속에 그 춤을' 만든 '록의 대부' 신중현... 김완선 "레전드는 다르더라"
▲ "하와이 갈 때는 영원히 그곳에 살아야겠다고 생각"
▲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 다한 5집 앨범 100만 장 '성공'..."은퇴 미뤄져"
▲ "하와이 갈 때는 영원히 그곳에 살아야겠다고 생각"
▲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 다한 5집 앨범 100만 장 '성공'..."은퇴 미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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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인사이드] 데뷔 40년 차 김완선 "이제야 음악 알 것 같다"](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5/0711/202507111407010158_d.jpg)
▲ YTN ‘컬처인사이드’ 문화人터뷰에 출연한 김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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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완선이 YTN 문화 프로그램 <컬처 인사이드>(MC 박민설)에 출연해 최근 발매한 앨범과 그동안의 음악 인생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 혜성처럼 데뷔...한국 가요계 댄스음악의 시작
198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결코 잊지 못하는 이름 김완선. 그녀가 최근 라틴팝 'HI ROSA'로 돌아왔다. 춤과 음악을 좋아했던 그녀는 1986년 열여섯의 나이에 매니저이자 제작자인 이모 손에 이끌려 데뷔했고 첫 앨범 '오늘밤'부터 30만 장이라는 기록을 쓸 정도로 화제와 함께 큰 인기를 얻었다. "리어카에서 (앨범을) 파는 '길보드차트'가 있어서 카피 된 테이프나 앨범들이 많이 팔렸던 시기"에 데뷔 앨범부터 30만 장을 판매한 건 대단한 기록이었다. 이후 2집 수록곡 '리듬 속에 그 춤을'은 김완선을 명실공히 가요계 '댄싱 퀸'으로 만들어주었다. 당시 록의 대부 신중현이 기타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댄스곡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큰 화제를 모았다.
독보적인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 활동하며 김완선은 발표하는 곡마다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계속된 성공에도 고민은 이어졌다. "가수는 내 길이 아니다, 나랑 너무 안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5집 앨범을 끝으로 은퇴하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탓인지 5집 앨범이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히트를 기록했고,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공은 오히려 그녀를 무대에 더 오래 머물게 했다. 이미 쉼 없는 활동에 지쳐 있던 김완선은 해외 무대에까지 서게 됐고 그렇게 홍콩, 일본 등 해외 활동을 통해 한류스타의 인기를 얻는다. 이후 1996년, 다시 국내 가요계에 복귀한 김완선. 그녀의 오랜 은퇴 결심은 결국 매니저인 이모의 죽음 이후에야 가능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6년 하와이로 떠난 김완선.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지쳐 있던 그녀는 하와이에서 2~3년을 쉬며 지냈다. 10대의 이른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제 인생과 저를 다시 돌아보는 시기였다". 그렇게 삶과 본인을 돌아본 덕분일까. 하와이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김완선은 다시 국내 가요계 복귀를 선택한다. 이전에는 매니저인 이모가 원하는 대로 활동했다면 재복귀 후에는 원하는 음악을 스스로 선택하고 다양한 K팝 아이돌과의 콜라보 등을 통해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게 됐다. "노래를 히트시켜야 해, 인기가 많아져야 해" 그런 부담을 벗어나 이제는 '무대가 감사하다'는 김완선.
50대 넘은 나이, 가수 인생 40년 차, 때로는 가요계에서, 때로는 무대를 벗어나 긴 세월을 보낸 그녀. "이제야 음악을 알 것 같다"는 김완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YTN <컬처 인사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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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 혜성처럼 데뷔...한국 가요계 댄스음악의 시작
198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결코 잊지 못하는 이름 김완선. 그녀가 최근 라틴팝 'HI ROSA'로 돌아왔다. 춤과 음악을 좋아했던 그녀는 1986년 열여섯의 나이에 매니저이자 제작자인 이모 손에 이끌려 데뷔했고 첫 앨범 '오늘밤'부터 30만 장이라는 기록을 쓸 정도로 화제와 함께 큰 인기를 얻었다. "리어카에서 (앨범을) 파는 '길보드차트'가 있어서 카피 된 테이프나 앨범들이 많이 팔렸던 시기"에 데뷔 앨범부터 30만 장을 판매한 건 대단한 기록이었다. 이후 2집 수록곡 '리듬 속에 그 춤을'은 김완선을 명실공히 가요계 '댄싱 퀸'으로 만들어주었다. 당시 록의 대부 신중현이 기타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댄스곡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큰 화제를 모았다.
5집 앨범 끝으로 은퇴 결심 인기 때문에 은퇴 기회 놓쳐
독보적인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 활동하며 김완선은 발표하는 곡마다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계속된 성공에도 고민은 이어졌다. "가수는 내 길이 아니다, 나랑 너무 안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5집 앨범을 끝으로 은퇴하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탓인지 5집 앨범이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히트를 기록했고,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공은 오히려 그녀를 무대에 더 오래 머물게 했다. 이미 쉼 없는 활동에 지쳐 있던 김완선은 해외 무대에까지 서게 됐고 그렇게 홍콩, 일본 등 해외 활동을 통해 한류스타의 인기를 얻는다. 이후 1996년, 다시 국내 가요계에 복귀한 김완선. 그녀의 오랜 은퇴 결심은 결국 매니저인 이모의 죽음 이후에야 가능할 수 있었다.
무대를 벗어나 하와이로..."다시 돌아올 생각 없었다"
그렇게 2006년 하와이로 떠난 김완선.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지쳐 있던 그녀는 하와이에서 2~3년을 쉬며 지냈다. 10대의 이른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제 인생과 저를 다시 돌아보는 시기였다". 그렇게 삶과 본인을 돌아본 덕분일까. 하와이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김완선은 다시 국내 가요계 복귀를 선택한다. 이전에는 매니저인 이모가 원하는 대로 활동했다면 재복귀 후에는 원하는 음악을 스스로 선택하고 다양한 K팝 아이돌과의 콜라보 등을 통해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게 됐다. "노래를 히트시켜야 해, 인기가 많아져야 해" 그런 부담을 벗어나 이제는 '무대가 감사하다'는 김완선.
50대 넘은 나이, 가수 인생 40년 차, 때로는 가요계에서, 때로는 무대를 벗어나 긴 세월을 보낸 그녀. "이제야 음악을 알 것 같다"는 김완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YTN <컬처 인사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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