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영화이야기] 해외입양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다, ‘케이 넘버'

[윤성은의 영화이야기] 해외입양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다, ‘케이 넘버'

2025.05.14. 오전 09:23.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영화 케이 넘버(K-Number)│2025
감독 : 조세영 │ 주연 : 미오카 밀러, 케일린 바우어, 선희 엥겔스토프, 메리 쉬라프만
AD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케이 넘버' 포스터

* 케이 넘버(K-Number) : 아동들이 해외입양을 갈 때 부여된 고유번호


1970년대 초, 길에서 발견된 8살(추정)의 미오카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러나 양부모는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았고, 미오카는 십대 때부터 혼자 힘으로 생활을 해나가야만 했다. 오전에는 학교를 다니고, 오후에는 미용을 배우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힘겨운 날들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생활이 안정되자 미오카는 생모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간단한 서류 한 장만으로 엄마를 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몇 글자 안되는 기록은 정확하지 않고, 주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기억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미오카와 그녀를 돕는 사람들의 마음은 계속 초조해진다.
▲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얼핏 여느 해외입양인 소재 다큐멘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케이 넘버’(감독 조세영)가 따라가는 미오카의 이야기는 생모와 만나게 되는 기쁨이나 반대로 엄마를 찾지 못한 애환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년 전, 미오카는 영주권을 갱신하려고 하다가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황당한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양부모가 그녀의 귀화신청서를 공기관에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의 해외입양 정책에 대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들 중 약 2만 명 정도가 시민권 없이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데,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양부모가 될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입양이 가능하도록 한 대리입양 제도를 꼽을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이 때 한국은 엄밀히 말해서 미국으로 아동을 입양시킨 것이 아니라 ‘이주’시킨 것이었다고 말한다. 양부모들이 아이들을 입양재판을 통해 귀화시키지 않으면 그들의 국적은 아무도 모르게 한국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일산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던 필립 클레이는 시민권 취득에 실패한 입양인으로서 한국의 입양인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소홀한지를 들춰낸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범죄를 저질렀던 그는 조현병을 앓으며 치료기관을 드나들기도 했는데, 스웨덴에서도 국외 입양인이 자국 태생에 비해 정신질환이나 약물중독 등 정신건강 관련 문제 발생률이 3-5배 가량 높다는 보고서가 있다. 해외입양인들의 가정 및 교육 환경, 적응에 관한 문제는 입양을 보낸 나라에서도, 입양하는 나라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영화는 한국 해외입양의 역사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미오카는 자신이 생모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엄마를 꼭 찾아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미오카의 말은 아이들을 해외에 팔아넘기다시피 했던 한국의 어두운 입양사와 연결된다. 이승만 정부부터 시작된 아동 수출은 군부독재정권 내내 계속되었고,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팔려간 입양인들은 이제 중년이 되어 생모를 찾는 한편,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그러나 ‘케이 넘버’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보고 있기 힘든 영화일 거라는 편견은 내려놓아도 좋다. 주제는 깊고 진중한 반면 태도는 공손하고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덴마크로 입양된 인터뷰이 중 한 명, ‘한나’의 간단한 질문을 곱씹게 만드는 데 있는지 모른다. 한나는 입양 관련 일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이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한다. 아마도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2023년 기준 3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까지 함께 보면 더욱 씁쓸한 우리 사회의 진단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입양에 대해 관심이나 뚜렷한 의견을 가진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한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케이 넘버’는 바로 그런 ‘평범한’ 한국인들에게 통찰력을 주는 다큐멘터리다. 또한,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감독의 궁극적인 문제의식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터뷰이들의 궁금증, “우리가 돌아오는 걸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고국으로 귀환하고 있는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도 시급해 보인다.
▲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브랜드홍보팀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