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백개 '고답이,' 네 가지 유형 있다... 혹시 나?

고구마 백개 '고답이,' 네 가지 유형 있다... 혹시 나?

2021.11.15. 오후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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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드라마 속 주인공 출생의 비밀을 아는 인물이 뜬금없이 기억 상실에 걸렸을 때. 스포츠 중계에서 우리 팀만 자꾸 경고를 받을 때. 이런 표현을 합니다. "아! 고구마 100개 먹은 기분이야!",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 막히는데요. 드라마 속이나 스포츠 경기장이 아닌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이렇게 물 한 모금 없이 군고구마만 잔뜩 먹은 듯한 상황을 겪습니다. 이럴 때 상대를 '고답이'라고 표현한다는데요. 오늘 언어생활 속 답답함의 끝판왕! '고답이'에 대해 파헤쳐보고, 고답이와의 대화도 슬기롭게 이어나갈 방법은 없는지 고민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얘기 나눌 분 모셔보죠.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나오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교수(이하 신지영): 네, 안녕하십니까.

◇ 최형진: 재미있는 주제 같아요.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고답이',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라는 말은 종종 들어봤는데, 이 말을 줄인 말인가요?

◆ 신지영: 맞습니다. 원래는 처음에 고구마로 시작한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해주셨지만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라고 해서 ‘고구마’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보니까 주변에 그런 상황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을 유발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 사람만 만나면 나는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져’ 이렇게 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을 한마디로 줄여가지고 ‘고답이’,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유발하는 사람’...

◇ 최형진: 참 말 잘 지어내요.

◆ 신지영: 정말 잘 지은 말이죠. 고답이. 한 마디로 하니까 모두가 맞아 맞아 하게 되는 거죠.

◇ 최형진: 얼마나 답답하면 이런 말까지 만들어 냈을까요.

◆ 신지영: 정말 소통의 욕구가 최고도에 이르렀구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말 얼마나 답답하면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하는데. 실제로 생활에서 이런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최근에 만난 고답이, 답답했던 경험에 대한 애청자 의견 받고 이야기도 나눠보겠습니다.

◇ 최형진: 오늘 슬기로운 언어생활, 여러분들의 대나무숲이 되어보죠. 저부터 얘기하면, 상대가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주장만 반복할 때 있잖아요. 그럴 때 너무 답답한데요. 이렇게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다' '벽 같다'이런 표현도 사용하잖아요. 이런 걸 '고답이'라고 합니까?

◆ 신지영: 고답이의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요. 결국 고답이가 대화가 안 통하니까 고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가 관찰자 시점에서 어떨 때 사람들이 드라마나 현실상황에서 진짜 답답하다고 생각하는지 유형을 나눠 봤어요. 제가 한 번 유형을 나눠봤는데요. 첫 번째, ‘망설임형’으로 이름을 붙여봤어요. 드라마에 굉장히 많이 나와요.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다가 소통의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은 못하고.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까지 답답하게 만드는, 갑자기 무언가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 최형진: 벌써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데요?

◆ 신지영: 두 번째 유형은 제가 이름을 ‘회피형’이라고 지어봤어요. 의도적으로 소통의 기회를 회피하는 거죠. 나는 소통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막 피하는 거예요.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그런 유형. 세 번째는 ‘일방통행형’, 이게 우리가 보통 벽 같다고 하는 거겠죠. 쌍방향형 소통을 하고 싶은 데 그 틈을 전혀 안 주고 계속 자기 말만 하는 일방통행형. 오늘 아나운서님 표정이 답답해 보여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표정이 마스크를 뚫고 나오고 있어요. 정말 답답하죠.

◇ 최형진: 네, 더 들어보겠습니다.

◆ 신지영: 네 번째는 ‘이해부족형’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재미있게 이름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안 되어서 이렇게 붙여봤는데요. 상대 표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요. 잘 말하고 있는데 상대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를 못 하는 거죠. 이럴 때도 정말 답답해지죠. 우리가 관찰자 시점에서 볼 때 이 네 가지 유형이 답답함을 유발합니다. 이런 걸 보면서 관찰자 시점에서 사이다가 먹고 싶어지는 상황이 되죠.

◇ 최형진: 유형이 되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요. 애청자 사연이 들어왔는데 이게 언어생활에 맞는 사연인지, 연애생활 코너를 만들어야 될지 모르겠는데요. “분명 상대방이 저를 좋아하는 게 맞거든요. 분명해요. 그런데 1년째 고백을 안 해요. 저 언제 사이다 마시게 될까요?” 이거 언어생활에 맞는 사연일까요?

◆ 신지영: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는데 1년째 고백을 안 한다, 자기도 고백 안 한 거 아니에요?

◇ 최형진: 이런 말씀 어떨지 모르겠는데, 사연 보내주신 애청자님께 제가 고구마를 느끼네요. 고백하세요. 본인이 고백하시면 되잖아요. (웃음)

◆ 신지영: 네, 고백합시다. 하하.

◇ 최형진: 애청자 사연 또 있는데요. “어제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세 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원하는 걸 정확히 얘기를 하면 좋은데. 부장님, 고답이세요!”

◆ 신지영: 역시 이런 부장님 굉장히 많거든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해요. 탈출 전략이랄까요. 그런 게 있는데요. 부장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에요. 제가 강의를 하면서 대학원에서는 세미나로 강의라 이뤄지거든요. 얘기를 하다가 A라는 학생이 발표해요. 그러면 나머지 학생들이 질문을 하죠. 그럼 발표한 사람들은 똑같은 답을 해요. 그러면 똑같은 질문이 또 나와요. 이런 상황을 탈출하는 방법인데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말로 설명을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설명을 똑같이 한다. 그러면 못 알아듣죠. 그러니까 한 번은 해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똑같이 했는데 똑같은 질문이 나오거나 똑같은 맥락으로 가면 자신이 잘 설명하지 못한 거예요. 설명을 바꿔야 해요. 이 부장님은 두 가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설정해놓고 계속 몰아가는 ‘일방형’이죠.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계속 가는 거예요.

◇ 최형진: 이건 어떻게 보면 아집인데요.

◆ 신지영: 그렇죠. 일종의. 그냥 몰고 간다, 그러니까 답답함을 느끼는 거겠죠. 이때는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회의에 참여한 사원들이 탈출을 해야 돼요. 고답이를 탈출하는 방법은 부장님의 허를 찌르는 거죠. 그쪽으로 갈 수 없게 몰 수 없게 허를 찌르는 거죠. 그렇지만 각오해야 될 게 있습니다. 부장님께 찍힐 수 있습니다. (웃음)

◇ 최형진: 언어라는 것도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허를 찌르고 가면 되는데, 결국 사회 속에서 이뤄지는 거라서 그런 눈치를 보면서 진행해야 되는 게 있죠. 가장 좋은 건 그런 사람이 없는 건데요.

◆ 신지영: 맞아요. 중간 결론처럼 말씀드리면 제가 우리 사회 소통 문제들을 쫙 살펴보니까 가장 큰 문제가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한 거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 최형진: 반성하게 되네요.

◆ 신지영: 부장님, 회의를 어떻게 할 건지 조금 더 투명하게 진행하시고요. 그 다음에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한다고 하면 둘 중 하나다, 내 문제이거나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데. 상대방이 여러 명이면 내 문제일 수도 있다, 이렇게요.

◇ 최형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애청자 사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진영논리로 몰아가는 정치권만 보면 명치가 답답해져요.” 이런 사연 올 것 알았습니다.

◆ 신지영: 그것 역시 설정해놓기 때문이죠. 우리가 탈출해야 돼요.

◇ 최형진: 다음 사연입니다. “저희 장인어르신이요. 맨날 톡방에 가짜뉴스 올리시는데 제발 올리지 말라고 해도 본인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있다면서 듣질 않아요. 고답이를 넘어서 고구마 만개 고만입니다.”라고 하시면 마지막에 “장인어른 사랑합니다.”라고 하셨네요.

◆ 신지영: 사랑하니까 이런 얘기하죠.

◇ 최형진: 그런데 가끔 가짜뉴스를 진짜로 믿으시고 그걸 세뇌시키려고 하는 분들이 주위에도 계시더라고요. 이럴 때 고구마 먹은 느낌이 있거든요.

◆ 신지영: 맞습니다. 그래서 실존하는 고답이들을 보면, 아까는 관찰자 시점에서 고답이를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관찰자가 아니라 내 주변에 실존하는 그런 고답이가 있더라고요. 그런 고답이를 나눠보니까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첫 번째가 아까 세 번째 유형하고 비슷한데요. 내 말이 들어갈 틈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꼰대형’이죠. 사연 속 장인어른 같은 경우도 틈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이런 어르신들 굉장히 많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 나는 이러지 않은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틈을 안 주고 이런 얘기하면 안 듣고 다른 얘기하고, 또 이런 얘기하면 절대 틈 안 주고 똑같은 얘기 또 하고, 이런 고답이 유형 많습니다.

◇ 최형진: 애청자 사연입니다.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는데 아예 내리지도 않고 보험사가 올 때까지 차량이동도 안 해줍니다. 아우 답답해.”라고 하셨고. “손녀가 이번에 수능 시험 보는데 예상 문제만 접하면 고답이 된다네요. 저는 대선 정치판만 보면 고답인데. 손녀야, 물 마셔가며 문제 풀어라.” 역시 정치권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연처럼 다양한 고답이가 존재하는데요. 이거 시원하게 해결해줄 사이다 같은 방법 없겠습니까?

◆ 신지영: 아까 첫 번째 유형밖에 얘기를 안 해서 두 번째 유형도 말해봐야 하는데요. 두 번째는 내 말을 투과시키는 유형이에요. 꼰대도 있을 수 잇고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말을 하면 몸으로 투과되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내 말을 알아 들었나, 듣기는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죠. 토론회 장면에서 상대가 자기 고집을 계속할 때, 일방통행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듣는 자세 자체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죠. 정치토론 보면 아까 답답하다고 하셨는데, 이게 두 번째 유형하고 비슷한 거죠. 말이 투과가 되는 거죠. 사라지는 거죠. 도대체 나는 누구랑 얘기하고 있나 생각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게 우리가 고답이가 누구인가 물어보면, 머릿속에 고답이들이 막 떠올라요. 이런 고답이 저런 고답이. 고답이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혹시 당신 고답이인가요?’라고 했을 때, 자기를 떠올린 사람은 없다는 거죠.

◇ 최형진: 저도 아닌 것 같은데요.

◆ 신지영: 그렇죠. 모두 자기는 고답이가 아닌 거죠.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 맥락에서 너무나 명쾌하게 해석이 되니까요.

◇ 최형진: 역지사지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 신지영: 그렇죠. 그 역지사지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역지사지를 해야 고답이로부터 탈출하고 고답이를 방지할 수 있잖아요. 우리 모두가 고답이가 되는 건 원치 않잖아요. 서로에게 자기 얘기처럼 사이다가 되었으면 좋겠죠. 그럼 다음 시간에 멀리 있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 방법, 탈출 방법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 최형진: 기다리기 힘든데요. 아쉽지만 오늘은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신지영: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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