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무대' 뽀빠이 이상용이 '강철부대' mc에게 조언? "모엿!"

'우정의 무대' 뽀빠이 이상용이 '강철부대' mc에게 조언? "모엿!"

2021.07.23. 오후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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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무대' 뽀빠이 이상용이 '강철부대' mc에게 조언? "모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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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7월 23일 (금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방송인 이상용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2부는 밀덕쑥덕으로 이어갑니다. 오늘 특별한 분 모셨는데요. 이 음악을 들으시면서 떠오르는 분 계실 겁니다. 빨리 소개하죠. 우리들의 영원한 뽀빠이 아저씨! 방송인 이상용 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방송인 이상용(이하 이상용): 네, 반갑습니다. 전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장병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충성~!

◇ 최형진: 단.결. 영원한 뽀빠이 뵐 때마다 그대로신데요. 도대체 건강관리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 이상용: 작아서 관리하기가 편하고요. (웃음) 저는 늘 이거 먹으면 건강하댄다 그러면 그걸 먹습니다.

◇ 최형진: 아, 주로 드시고요.

◆ 이상용: 우리 아나운서, 뭘 먹어야 오래 사는지 아세요? 나이를 많이 먹어야 오래 삽니다.

◇ 최형진: 하하, 한 수 배웠습니다.

◆ 이상용: 사람이 몇 살까지 살면 최고 영광일까, 백살? 아닙니다. 몇 살까지 살면 멋있을까? 여든한 살입니다.

◇ 최형진: 여든한 살이요?

◆ 이상용: 네, 구구단이 81까지 밖에 없거든요. 그만큼만 살면 나머지는 보너스입니다.

◇ 최형진: 오, 대단하신데요. 오늘도 운동을 하셨습니까?

◆ 이상용: 네, 하고 왔습니다.

◇ 최형진: 어떤 운동하십니까?

◆ 이상용: 여기가지 오는데 숨쉬기 운동 안 하면 죽는 거잖아요. 하하, 저는 역기만 듭니다.

◇ 최형진: 역기 드는 운동을 거의 매일 하십니까?

◆ 이상용: 네, 65년째 합니다. 오늘도 이거 끝나면 운동하러 갑니다.

◇ 최형진: 역기 드시러 가십니까?

◆ 이상용: 네.

◇ 최형진: 인생의 대부분을 뽀빠이로 살아오셨잖아요. 운동을 좀 쉬고 싶고 날도 있으실 테고요.

◆ 이상용: 있죠. 쉬고 싶은 날은 아예 기구 옆에도 안 갑니다.

◇ 최형진: 그러면서 푹 쉬시고요.

◆ 이상용: 하고 싶을 때 두 배하고, 밥도 먹기 싫을 때 더 퍼주면 얹히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을 때 두 배, 하기 싫으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 최형진: 아예 그 근처도 안 가시는군요.

◆ 이상용: 네, 내일도 있는데 뭐 그렇게 무리를 해.

◇ 최형진: 하고 싶을 때 한다, 그런 마음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마음가짐 같기도 해요.

◆ 이상용: 저는 스트레스가 없어요. 그냥 넘겨요. 누가 달라면 주고 갖고 있는 건 안 빼앗고 편하게 살아요. 제 키도 거의 다 서수남 줬거덩,

◇ 최형진: 하하, <우정의 무대>를 1989년 시작해서 8년간 진행하셨어요. 가끔씩 그때 생각이나 추억에 빠져드실 때도 계십니까?

◆ 이상용: 그렇죠. 오프닝에 ‘그리운 어머니’ 노래 조금 나왔을 때, 그때 벌렁벌렁해요.

◇ 최형진: 아직도...

◆ 이상용: 참 그때 좋았죠.

◇ 최형진: 저도 당시에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이후에 다시보기를 통해서 보면 저도 엄청난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 이상용: 그때 그 시간에 택시가 없었어요.

◇ 최형진: 다 그거 보느라고요?

◆ 이상용: 네.

◇ 최형진: 혹시 그때 인연으로 장병들과 연을 맺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인연이 있으실까요?

◆ 이상용: 그때 군 위문 프로그램이 다섯 개가 있었어요. 방송국마다. 다섯 개를 제가 전부 사회 봤어요. <위문열차> 라고 있었어요. 그거 23년 했어요.

◇ 최형진: 정말 오래하셨군요. 여전히 뽀빠이 아저씨예요. 이름을 너무 잘 지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사용하게 된 이름입니까?

◆ 이상용: 잘 지었어요. 그때 <뽀빠이>라는 만화가 유행일 때, 부르터스 나오고 그때, 뽀빠이가 나왔는데 영락없이 나야, 뽀빠이가 조그맣고 빠릿빠릿하고.

◇ 최형진: 좀 닮은 것도 같습니다.

◆ 이상용: 올리브가 키가 크잖아요. 저희 아내가 나보다 10cm가 커요. 호리호리하고요. 영락없이 저건 나다.... 뽀빠이가 적중했어요.

◇ 최형진: 코로나 이전에는 강연으로 전국의 팬들을 만나셨잖아요.

◆ 이상용: 한 달에 50군데 했어요. 최고 많이 했죠. 제 강의는 깊이가 있는 게 아니라 많이 웃어요. 화장실도 안 가요. 하나 빼놓는다고요.

◇ 최형진: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이런 시기에 선생님 같은 강의가 필요한 건데요. 재미를 주고.

◆ 이상용: 어제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21개월째 놀아요. 백수. 21개월 간 십만 원도 못 벌었어요. 왜냐하면 모든 MC는 실내 프로그램이지만, 나는 전부 야외에요. 그래서 21개월째 노는데, 내 친구가 30년 노는 애가 있어요. 걔는 나보다 바빠요. 놀기에 바빠요. 그래서 부러워요. ‘어떻게 견뎠어요’ 그랬더니 그냥 있으면 된대.

◇ 최형진: 쉽지 않은데요.

◆ 이상용: 나 못 살아요. 왜냐하면 기구 나르던 사회자잖아요. 급하고 빠르고 오래 걸리고 말 안 듣고 그런 프로그램을 하다가 가만히 있으려다 보니까 이러다 죽겠다...

◇ 최형진: 그럼 요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보통 집에 계십니까?

◆ 이상용: 금방 얘기했잖아. 그냥 지내. 누가 오라는 애들도 없고 요새 또 누구 만나기도 겁나고요. 저는 백신 두 번 다 맞았거든요.

◇ 최형진: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서 선생님이 멋진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 저도 보고 싶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신 이유가 저희 코너 중에 한 달에 한 번씩 군대 얘기를 하거든요. ‘밀떡쑥떡’이라고 하고 있는데요.

◆ 이상용: 이름도 참 쑥떡 같으네. (웃음)

◇ 최형진: 하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장병들을 만나보신 분을 꼽으면 당연히 우리 뽀빠이 아저씨라서 저희가 모셨습니다. <우정의 무대>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장병들을 만나보셨어요?

◆ 이상용: 제가 국군만 하면 47년 했습니다. 군 위문만 47년, 그래서 다닌 부대가 3.200개 부대를 공연했습니다.

◇ 최형진: 그럼 우리나라 부대 거의 다 도신 거 아니에요?

◆ 이상용: 다 돌았죠. 어떤 대통령을 만났더니 군인 출신 대통령, 자기가 제대할 때가지 자기가 있는 부대를 내가 32번 방문했대. 그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웃음)

◇ 최형진: 3,200개 부대, 예하부대까지 다 가신 것 같은데요. 그때 당시 추억을 조금 상기해보면, 무대 설 때마다 벅차고 엄마 볼 때는 감동이 밀려오고, 이러셨겠죠?

◆ 이상용: 그래도 자긍심이 있죠. 왜냐하면 <우정의 무대> 할 때 앞에 앉아있는 장병이 8,000명이에요. 그걸 이 작은 내가 웃기고 울린 다는 거, 내 말 한 마디로 웃고 운다는 거, 또 ‘그리운 어머니’ 할 때 전 국민을 울렸다는 거, 그런 거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고 자랑스럽습니다.

◇ 최형진: 에피소드도 많고 자긍심도 가지실 거고요. <우정의 무대> 이전에도 라디오 <위문 열차>로 장병들 만나셨잖아요?

◆ 이상용: 더 많죠. 24년 했으니 그 프로그램에 안 나온 연예인이 없죠.

◇ 최형진: 최근 들어서도 예능에 군대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했고, 군대생활을 각색해서 콩트 형식으로 만든 드라마 같은 것도 있었고요. 옛날에는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일종의 방송의 흐름이었습니까?

◆ 이상용: 네, 그런데 북한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어서 낮에는 못했어요. 밤에 했어요. 건물이 보인다고요. 집에 오면 새벽 1시였어요. 10시에 끝나니까.

◇ 최형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 넘치게, 수많은 장병들을 웃기셨어요. 젊은 친구들이고 기들도 세잖아요. 어떻게 공연을 하셨어요?

◆ 이상용: 말 안 듣죠. 내 별명이 총알이야, 총알. 강하고 세고 뚫고 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모이세요’ 이러면 안 모여요. ‘모여!’, 이렇게 강하게 하면 다 모여요.

◇ 최형진: 그렇게 큰 목소리로 하면 모일 수밖에 없겠네요.

◆ 이상용: 네,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와요.

◇ 최형진: 갑자기 저 훈련소에 와있는 기분이에요.

◆ 이상용: 제가 이 목소리를 보면, 요즘에 <강철부대> 그거 제가 사회 봐야 되거든요. 그렇잖아요. 군인 프로그램은 군인답게, ‘자, 지금부터! 허이야!’, 이렇게 나가야 해요.

◇ 최형진: 하하, 자꾸 훈련소 와있는 것 같아요.

◆ 이상용: 그리고 프로그램의 특징을 살려야 돼요. ‘지금부터 배를 타겠습니다~’, 이렇게 멘트하면 안 되고, ‘지금부터 배를 탄다! 허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누웠던 자리에서도 벌떡 일어나죠.

◇ 최형진: 저는 참고로 헌병을 나왔기 때문에 뱃심이 좋습니다. (웃음) 청취자 의견이 많이 옵니다. 소개해드릴게요. ‘필승! 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들어온 보람이 있네요. 뽀빠이 이상용 선생님을 만나다니 힘찬 함성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반갑습니다. 이상용 선생님 여전히 쩌렁쩌렁 하시네요’, ‘15사단 92년도 강원도 철원군 군 생활 때 우정의 무대 출연했었어요. 뽀빠이 이상용 형님 반갑습니다. 필승!’ 하셨는데요.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나시다보면, 우연히 ‘저 옛날에 그 부대에 있었어요’, 이런 분들도 계시겠네요?

◆ 이상용: 하루에 두세 명은 있죠. 엘리베이터 타면 ‘저 몇 사단에 있었습니다. 많이 늙으셨네’, 이래요. (웃음)

◇ 최형진: 아무래도 전 부대들을 다 돌아다니며 장병들을 만나셨으니까요. 또 다른 청취자님이 보내주셨는데요. ‘저 여자인데 우정의 무대 꼭 챙겨봤었어요. 엄마가 보고플 때~ 이 노래 나오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나요’, 라고 하셨는데요.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 이렇게 찾는 프로그램이었죠. 많은 분들이 지금도 기억을 하고 계십니다.

◆ 이상용: 그 프로그램을 만들 때, 너무 강하다, 맨 훈련하는 것만 나오면 안 된다고 해서 감동을 주자고 해서 만든 게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 최형진: 거의 전 국민을 울리지 않았나요?

◆ 이상용: 애들이 없는 엄마는 없어서 울고, 있는 사람들은 군대 가서 울고.

◇ 최형진: 또 어렵게 키웠던 그런 사연도 있고요.

◆ 이상용: ‘그리운 아버지’로 하라고 많은 항의가 왔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한 번 했다가 프로그램이 망했죠.

◇ 최형진: 많은 부대를 다니셨는데, 앞서서 충성이라고 말씀 하셨고, 저 같은 경우는 단결이었거든요. 혹시 어떤 구호들 기억나세요? 부대마다 다르니까요.

◆ 이상용: 다 달라요. 헷갈려요. 희한한 구호도 많아요.

◇ 최형진: 이기자도 있고요. 맹호고 있고요. 필승, 충성, 단결. 굉장히 많죠. 부대마다 이런 구호에 의미가 담겨 있는 거죠?

◆ 이상용: 그렇죠. 그 정신을 따르게 되죠.

◇ 최형진: 맹호 같은 경우는 호랑이 마크 있는 부대에서, 이런 식으로 격려하기도 하고요. 사실 계속 말씀드립니다만, ‘그리운 어머니’ 코너는 정말 전 국민이 사랑했던 부분인데요. 요즘은 스마트폰을 쓰더라고요.

◆ 이상용: 지금은 우는 애들 없을 걸요.

◇ 최형진: 그때는 군대에서 전화 한 통 하기 어려웠나요?

◆ 이상용: 전화하려고 하면 다섯 군데 거쳐서 받을 수가 있어요. 아예 생각도 못하는 거죠.

◇ 최형진: 거친다는 게 어딜 거친다는 거죠?

◆ 이상용: 국방부, 교환원, 군단, 사단, 여단, 동사무소....

◇ 최형진: 전화통화 한번 하는데요.

◆ 이상용: 그러니까 아예 안 하죠.

◇ 최형진: 당시 선생님 계실 때 군 복무기간이 어느 정도였죠?

◆ 이상용: 2년 5개월이요.

◇ 최형진: 참 당시에는 몇 달 만에 혹은 몇 년 만에 부모님 만나는 장병들도 많았겠네요.

◆ 이상용: 그렇죠. 못 만나죠. 그래서 <우정의 무대>도 전방 아주 먼 곳에 있는 그리운 엄마를 초대해서 호남이 많아요, 전라남도.

◇ 최형진: 특별히 기억나는 분들이나 에피소드 있으실까요?

◆ 이상용: 아유, 에피소드 내일까지 해도 안 돼요.

◇ 최형진: 하하, 그래도 하나만요.

◆ 이상용: ‘그리운 어머니’에는 전라도가 많아요. 호남 엄마가 말도 잘하고 재미있어요. 웃겨. 충청도 엄마는 그냥 숨만 쉬다 나가고. (웃음)

◇ 최형진: 말씀을 잘 하셨군요.

◆ 이상용: ‘뒤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러면, 호남엄마는 ‘아잇, 빨리해. 더워 죽겠구만 빨리해 시방’, 이래요.

◇ 최형진: 그럼 충청도는 어떻게 합니까?

◆ 이상용: 충청도는 ‘어머니,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그러면, 한참 있다가 ‘예...’, 이렇게요. 끝이에요.

◇ 최형진: 지역마다 특색이 있군요.

◆ 이상용: 그리고 ‘올해 농사 어떻게 지으셨어요?’ 그러면, 전라도는 ‘비료를 못 줘가지고 조져버렸당께’, 충청도는 한참 있다가 ‘그렇죠 뭐...’

◇ 최형진: 하하, 그럼 경상도 지역 어머니들은 어떠십니까?

◆ 이상용: ‘됐십니더’, 그러니 호남이 나와야 재미있어요.

◇ 최형진: 그런 에피소드가 있군요. 재미있네요. 당시 코너 이름이 ‘그리운 어머니’ 아니었습니까. 사실 당시 아버지들이 서운했을 것 같은데요.

◆ 이상용: 했다니까, 한번. 하도 편지가 많이 와서요. 한번 했는데요. 아버지가 희한해, 백구두에 통바지에 모자 탁 쓰고 나오셔서, 모시 저고리에요. 그런데 아들이 자기 아버지인데 나오지도 않아요.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나오세요~’ 그래도 안 나와, 옆에서 막 찔러 나가라고. 그럼 머리 긁으면서 나와. 엄마 같으면 쫓아와서 오다가 급해서 넘어지고 막 껴안고 안 떨어져요. 그런데 아버지가 나오면 안지도 않아. 한 5미터 앞에서 뭐라 그러냐면, ‘바쁠 텐데 뭐 하러 오셨어요?’ 그러니 아주 김 새.

◇ 최형진: (웃음) 그러면 프로그램 진행이 됩니까?

◆ 이상용: 그럼 아버지도 고생한 애보고 하는 소리가, 엄마는 ‘깻잎이 나오냐 장아찌 나오냐 미역국 나오냐’ 하는데, 아버지는 ‘요새 별 고생 안 하지 인마?’, 자기 때는 고생 엄청 했거든요.

◇ 최형진: 하하, 요즘은 군대 쉽지 않냐, 이런 식의.

◆ 이상용: 네, ‘다이어트 한다면서?’ 그러니 아주 김 새. 사기가 팍 떨어져요.

◇ 최형진: 애청자 의견 보내주셨네요. ‘저 뒤에 계신 분은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캬, 감동이었죠.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어머님들 섭외하신 거예요? 우연이에요?’ 라고 하셨습니다.

◆ 이상용: 이거 참 많이 물어보는데 이게 짜고 하면 감동이 없어요. 우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이건 비밀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전화국에 전화를 끊고요. 전화 할까 봐요. 그래서 업고 와요. 엄마는 막 울어요. 애가 전사했다고, 죽어서 데릴러 온 줄 알아요.

◇ 최형진: 겁이 나셨겠죠.

◆ 이상용: 올 때까지도 말 안 하니까요. 그러나 날 쳐다보면 어머니가 그제서야 ‘아, 그거구나’, 안심을 하시죠. 그런데 아들이 없는 때도 많아요. 보초 서거나 다른 섬에 가 있고 그런 경우도 있었고요.

◇ 최형진: 마지막으로 ‘어머니~’ 한 번 외쳐주세요.

◆ 이상용: 뒤에 계신 어머니를 보고 싶은 장병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어머니의 나옴을 부르짖어봅니다. 어머니, 나오세요~

◇ 최형진: 감동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장병들과 함께 해주실 거죠?

◆ 이상용: 네.

◇ 최형진: 정말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이상용: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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