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 옆 공동묘지?...서삼릉 집단 비석군의 정체

조선 왕릉 옆 공동묘지?...서삼릉 집단 비석군의 정체

2020.10.01. 오전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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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혹시 고향 주변에 태실, 혹은 태봉이라는 지명이 있지 않으신지요?

조선 시대 왕이나 왕자, 공주의 태를 묻은 길지입니다.

일제 침략을 거치며 훼손되거나 잊히고 있어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조선 왕릉인 고양 서삼릉입니다.

한 켠에 공동묘지처럼 석물 54개가 쭉 서 있습니다.

일제가 전국 각지에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옮기고 태비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죽은 자가 묻힌 공간에 생명의 근원을 집단으로 옮긴 일제의 의도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일제는 전시 명목으로 원래 태가 담긴 분청 항아리를 백자로 바꿔 놓기도 했습니다.

[김득환 / 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 :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시멘트 구조물을 넣고 그 속에 태 항아리를 넣고 그 위에는 날일자(日) 기단 뚜껑을 두 개를 붙여놨기 때문에 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돼 있던 거죠.]

조선 왕실은 왕자와 왕녀가 태어나면 아기의 건강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태를 항아리와 네모난 석함에 넣어 전국 길지에 묻었습니다.

이런 안태문화는 방식은 달랐지만 조선 이전에도, 또 백성들 사이에도 있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입니다.

태가 묻힌 곳은 무덤을 쓰기 위한 음택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양택이었습니다.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 무덤과의 경쟁은 없었고요. 좋은 길지를 선택하는 것은 분명한데 양택을 주로 선택했다, 길지라고 양택에 무덤을 쓴 분들도 제법 있는데요. 하지만 이번 조사 과정에서 지역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덤을 쓴 분들은 조상의 덕을 본 게 아니고 대가 끊겼다는 집안도 있고요.]

최근 정부는 일제가 서삼릉으로 옮긴 태실 54기의 원래 자리를 처음으로 조사했습니다.

54곳 가운데 4곳은 개발로 사라졌고, 10여 곳은 석물이 방치돼 관리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이홍주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연구사 : 이 보고서를 지자체와 공유를 해서 지자체에서 보존할 수 있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생명 존중과 자연 친화 사상이 담긴 태실, 전국 어디에, 몇 곳이 있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YTN 이승은[selee@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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