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구두, 이효리 구두로 유명해진 구두. 아지오 유석영 대표

문재인 대통령 구두, 이효리 구두로 유명해진 구두. 아지오 유석영 대표

2020.07.23. 오후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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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7월 5일 (일요일)
■ 대담 : 유석영 아지오 구두 대표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 구두, 이효리 구두로 유명해진 구두. 아지오 유석영 대표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가수 이효리 씨, 이상순 씨 부부가 모델로 나선 구두 브랜드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이 회사의 구두를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 신기도 했죠. 트랜드 세터와 대통령이 신는 구두 회사는 어떤 곳일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의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의 우석영 대표입니다. 유석영 대표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유석영 아지오 구두 대표(이하 유석영)> 네. 반갑습니다.

◇ 이성규> 청취자분들께 인사 한번 해주시죠.

◆ 유석영> 네. 이렇게 좋은 날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 뜻깊은 시간에 자랑도 하고, 이모저모를 청취자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얼마 전에 이효리 씨가 자신의 SNS에 아지오 구두를 신은 사진을 올렸어요. 그때 실시간 검색 순위가 상당히 올랐는데, 그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 유석영> 실시간 검색어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저희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마침 여성화 신제품을 잘 개발해서 다시 한번 의뢰했더니, 효리 씨가 저희와 연락 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리셨어요. 그랬더니 저희 서버가 용량이 좀 적었어요. 한 이틀을 잠에서 못 깨어나더라고요. 동시접속자가 많아서, 하하하. 그래서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올라가더라고요.

◇ 이성규> 그런데 이효리 부부가 재능기부 형태로 하신 건데. 하나의 모델이 된 거잖아요.

◆ 유석영>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어떤 인연이었습니까?

◆ 유석영> 저희 회사를 창업할 때, 사실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제가 정신적인 창업주예요. 청각장애인들의 편한 일자리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유시민 이사장이 유희열 대표와 가까우세요.

◇ 이성규> 같이 유씨 집안인가요?

◆ 유석영> 유 씨가 세 명입니다. 하하하. 유시민, 유희열, 유석영 이렇게 세 유 씨가 같이 뭉쳤는데, 여성화를 개발해서, 모델이 필요해서 유시민 이사장께 말씀을 드렸더니, 희열 씨가 옆에 있다가, 효리가 좋겠다. 그렇게 효리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효리 씨가 바로 응해주셔서 2018년도에 한 번 저희 모델을 해주셨고, 이번에도 가장 필요할 때 사진을 찍어 올려주셨습니다.

◇ 이성규> 네. 아지오 구두가 어떤 구두예요?

◆ 유석영> 아지오라는 말이 이탈리아어로 편하다는 말이거든요. 이 구두가 손을 가장 잘 쓰고, 손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발과 친해지기 위해서 저희가 회사를 창업했고, 지금 열심히 한 땀 한 땀 만들어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는 구두가 아지오 구두입니다.

◇ 이성규> 그런데 유석영 대표님은 시각장애를 갖고 계신단 말이에요. 어떻게 같이 하게 되셨어요?

◆ 유석영> 제가 일생을 살면서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하고 가장 힘겹게 세상을 살고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 현장에서 청각장애인분들을 만나 보니, 이분들이 능력과 솜씨는 충분한데, 소통으로 인하여 사회와 단절이 되어있는 모습을 봤고, 그 능력 발휘를 못 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시각장애인인 제가 나서면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장애인 복지관장을 할 때 무턱대고 공장을 설립해서 시작했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지금은 아주 알콩달콩, 재미있게 기업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매출이 팍팍 올라야 하는데, 그렇죠?

◆ 유석영> 저희가 사실 기계화하고 인력을 덜 투입하면 돈을 못 벌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 사업은 특히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이고, 그리고 청각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 대비 쓰는 돈이 아직은 많아서, 초기에 진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 이성규> 네. 앞으로 점점 오르겠죠.

◆ 유석영> 희망이 있으니까 저희가 다시 시작한 것이거든요.

◇ 이성규> 또 아지오 구두는 사실 문재인 대통령 구두로 알려져 있어요. 2017년 5.18 기념식 때 무릎 꿇고 참배할 때, 다 낡은 구두 밑창이 보였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문 대통령과 관계가 설정되셨어요?

◆ 유석영> 저희가 원래 시즌 1은 2010년 1월 1일에 시작했거든요. 굉장히 아마추어리즘으로 덤빈 거예요. 시장의 동향이나 소비자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청각장애인들이 솜씨가 있고, 충분히 정직하게 노력하면 잘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구두 회사를 해보니, 직접 행상을 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살릴 수 없었어요.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두를 팔다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자리를 내놓으라고 해서, 거기서 3일 동안 구두를 판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당시에 민주통합당 후보였어요. 저랑 친근하게 지내던 윤후덕 의원이 모시고 오셨어요. 그래서 구두를 한 켤레 사 신으시고, 아주 좋아하셨어요. 나도 잘될 테니, 이 회사도 꼭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고, 그다음에 우리는 자금난을 못 이기고 폐업을 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이게 막을 내리나 보다’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그 구두가 밑창이 닳도록 오래오래 신으셔서, 취임하시자마자 이렇게 다시 이슈가 되어서, 또 인연이 된 거죠.

◇ 이성규> 그래서 화제가 됐었는데, 곧바로 회사를 못 세우고, 좀 전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때 어떤 이유가 있었어요?

◆ 유석영> 대통령이 취임하시고 일주일 만에 제가 전화를 받았어요. 미국 순방을 가야 하는데, 아지오 구두를 다시 찾으신다. 이것을 신고 가고자 하니, 빨리 들어와서 발을 재자. 깜짝 놀랐어요. 대통령님이 그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우리는 이미 폐업한 상태고, 지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양해를 구했는데, 어느 네티즌이 밑창이 갈라진 사진을 올리면서 저희가 이슈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창업하라, 구두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시작은 아무나 할 수 있고 갈 수 있지만, 유지하고, 성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나의 이슈로 창업한다는 것은 또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이고, 장애인들에게 괜히 희망 고문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시작할 때 잘 돼서 같이 부자가 돼서 행복해지자고 했는데, 폐업하면서 상처를 줬기 때문에,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사람들과 논의를 했는데, 유시민 이사장과 제가 30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여쭤보러 갔어요.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우리 같이 노력해서 세웁시다.’ 그렇게 해서 시작을 했고, 어느 기업이나 누구에게 의존하지 말고, 국민들께 돈을 빌립시다. 그래서 아지오 펀드를 개설해서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50만 원을 국민들께 빌려서, 차곡차곡 건실하게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재창업을 하게 된 거죠.

◇ 이성규>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쯤에서 대표님께서 추천하시는 노래를 하나 듣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어떤 노래 추천하시겠어요?

◆ 유석영> 이동원, 박인수 씨가 부르는 ‘향수’라는 노래를 제가 참 좋아해서, 여기에서 한 번 같이 들어보고자 합니다.

◇ 이성규> 그 노래를 왜 좋아하세요?

◆ 유석영> 제가 전라북도 고창이 고향인데, 문을 열고 나가면 넓은 들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가 있는데, 제가 어릴 적이 봤던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고 살고, 어머니가 밭매는 모습, 가족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 황소가 풀도 뜯는 모습. 그런 추억이 저에게 참 많아서, 이 노래를 즐겨 듣고, 즐겨 부르기도 하죠.

◇ 이성규> 네. 그렇군요.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요. 정지용 씨의 곡을 붙인 거죠.

◆ 유석영> 맞습니다.

◇ 이성규> 이동원과 박인수의 노래 ‘향수’ 듣고 계십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의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의 유석영 대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님 아까 관장님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다 컸을 때의 일이고요. 어릴 때의 유석영은 어땠어요?

◆ 유석영> 참 꿈도 많았고, 하고 싶었던 일 욕심도 참 많았는데, 저희 식구들이 전부 시력이 나쁜 상태였고, 어느 날 알지 못하는 질병 때문에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타던 자전거도 못 타고, 칠판 글씨는 오래전부터 못 보고, 이런 시절의 정말 힘든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데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 3학년 올라갈 때였는데, 꿈이 부서지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다 포기하고 병원을 갔는데, 의사는 안 된다고 그러고. 또 어머니는 밤새 한숨을 쉬시고, 선생님은 제가 칠판을 못 보고 숙제를 제대로 못 해오니까, 네가 왜 우리 반에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좌절감이 참 컸습니다. 저는 그래도 괜찮은데, 괜히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그러고,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특별하게 대하려고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저희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어요. 평생 농사만 짓던 분이 저희 집에 밤마실을 오셔서, ‘너 힘들지?’ 그래서, ‘네. 그렇습니다.’ ‘안 보여서 힘들어도, 너는 잘하는 게 많아.’ 그래서 제가 ‘저는 잘하는 게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너는 말도 잘하고, 내가 봤을 때 얼굴도 잘생겼어.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하면 어떻겠니?’라고 하셨어요. 그때 아나운서라는 말을 잘 못 하셔서, ‘아나무사가 되면 어떻겠니?’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의사, 선생님, 부모. 다 안 된다고 했는데, 평생 농사짓던 분이 저에게 그렇게 가슴 설레는 말을 해주신 거예요. 눈이 안 보여도 방송은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걸어 다니면서 축구 중계 흉내도 내고, 노래자랑 사회 보는 것도 하고, 뉴스도 흉내를 냈는데, 실질적으로 큐 사인을 보지 못하면 라디오를 못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래도 이 꿈만은 나중에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집념을 대단히 크게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CBS에서 이것을 나와서 설명하라고 해서 갔더니, 원고를 안 가지고 갔더니, 원고도 없이 방송하러 왔냐고.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바꿀 수는 없으니까, 제가 들어가서, 방송 시간 15분을 아주 잘해서, 그때 당시에 88 장애인 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라디오 저널리스트가 없었는데, 그때 ‘리포터를 한번 해 봐라. 당신은 잘할 것이다.’ 그때 발탁이 되어서 CBS에서 한 11년, 그리고 KBS 장애인 방송 설립할 때 제가 개국 멤버였어요.

◇ 이성규> 사랑의 방송.

◆ 유석영> 사랑의 소리 방송. 서강대에서 박홍 전 총장님이 계실 때. 구두 만드는 풍경 하기 전까지 KBS 방송에서 주간 코너를 할 정도로 방송인으로 성장해서 오히려 그 덕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지금처럼 회사를 경영하는 CEO도 되고, 인생이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 이성규> 네. 꿈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니라 꿈이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수제화라고 하면, 요즘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맞추는 거잖아요. 발 틀도 보관하고 있고, 성남에 있는 매장까지 가야만 그게 가능한가요?

◆ 유석영> 저희가 처음 창업할 때, 소비자의 발에 맞는, 친구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자. 이런 이념을 걸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점포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보니까, 몸으로 뛰는 게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지금도 주말에 저희 회사로 발을 재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그리고 제주도, 강원도, 경상도. 이런 분들이 신청하시면 저희가 발을 재러 갑니다.

◇ 이성규> 제주도도 가요?

◆ 유석영> 네. 갑니다.

◇ 이성규> 비행기 값이 나와요?

◆ 유석영> 모아서 갑니다. 많이 모아서. 하하하. 그렇게 해서 특화된 작업을 저희가 해서 시작했는데, 만족도가 굉장히 좋아요. 지금까지는 이미 정해진 치수에 발을 맞춰 신었던 분들이 많았고, 발의 불편함이 많았는데, 저희가 직접 발에 맞춰서 만들어드린다는 것 때문에, 상당히 매력 있어 하십니다.

◇ 이성규> 지금 직원이 몇 분이죠?

◆ 유석영> 저희가 지원 부서까지 18명이 일을 하는데, 그중 장애 사원분이 10분이 계십니다.

◇ 이성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 유석영>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해요. 당신은 안 보이고, 만드는 사람은 안 들리는데,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느냐? 그런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통역하시는 분이 중간에서 정확한 의사전달을 해주시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오해나 편차를 많이 줄이고, 훨씬 더 정확하게 일을 해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어요. 저희는 장난도 치고, 호흡도 맞고. 작년에 연수를 같이 갔는데, 정말 재미있게, 한 가족처럼 알콩달콩 삽니다.

◇ 이성규> 그 가족들이 만든 구두를 신고 만족했던 분 중 생각나는 분이 있으면 한 분만 소개해주세요.

◆ 유석영> 서서 오랫동안 강의하시던 분이에요. 법무법인에 계시던 분인데, 맞춤 구두라고 해서 처음에 4켤레를 단번에 사시더라고요. 만들어드렸는데 안 맞는 거예요. 우리의 수치적 계산과 그분이 이미 습관화된 느낌이 있거든요. 저희가 4번을 고쳐드렸어요. 수치적으로는 이미 맞아요. 그런데 자기와 안 맞는 구두를 오래 신었기 때문에, 그 습관과 일치가 안 돼서 저희가 고민을 했는데, 그분이 4번 정도 저희가 맞춰서 서로 연습도 하고 신어 보신 다음에, 지금은 저희 홍보대사가 되셨어요. 열심히 신고, 자랑하고 다니시고, 그 법무법인 계신 분들이 저희 구두를 많이 신습니다.

◇ 이성규> 네. 대표님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본인의 삶을 투영해서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계시는 다른 분들께도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 유석영> 제가 살아보니까 별거 아니거든요. 제가 신체 기능 중에서 눈 하나밖에 상실된 게 없단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전체를 못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장애인들이 습득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한 번 익히면 굉장히 잔존기능으로 일을 잘하는데,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손해고 또 복지비용도 훨씬 많이 들어간다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불려 다니면서 지금도 그 역할을 좀 하는 편이거든요. 그렇듯이 재능을 보고, 잔존기능을 봐야 하는데, 손상된 기능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까, 서로가 어려워지고, 소통도 안 되고,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고. 그래서 일자리를 만들어서 우리가 이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은 참 잘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 이성규> 요즘도 가끔 고향에 가세요?

◆ 유석영> 그럼요. 어머니,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지 7년 정도 됐는데, 요즘도 전화번호를 못 지우고 살아요. 요즘은 바빠서 두 달에 한 번, 옛날에는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갔거든요.

◇ 이성규> 아까 말씀하셨던 분은 돌아가셨나요?

◆ 유석영>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정말 저에게 은인이세요. 저희 아버님이 자랑했어요. 우리 아들이 방송국에서 일한다. 그러니까 그 양반이 그건 다 나 때문에 당신 아들이 잘 된 거라고. 하하하.

◇ 이성규> 그러니까 유 대표님이 다른 장애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그분이 이미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자꾸 그분이 생각나네요. 앞으로 하시고 싶은 목표가 있을 것 같아요.

◆ 유석영> 이제 4차 산업 시대에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못 하고 있어요. 거기에 치중하다 보니까. 그런데 그분들은 노동집약적인 일자리가 있어야만 직업의 선택권이 넓어지는데, 디지털화가 됐을 때, 그 부분이 상당히 걱정인데, 저희 구두 만드는 풍경은 틀림없이 역주행하고 있거든요. 기계나 컴퓨터보다 수작업을 통해서 사람사는 세상을 같이 일궈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사업은 꼭 성공해야 한다. 한 번 폐업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대통령의 구두이기 때문에, 이것을 선용해서 장애인 생산품들이 백화점, 저희는 흔히 백화점에 드나들고, 많은 셀럽들이 저희 신발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거죠. 이런 바탕이 될 때까지 저희가 선두적으로 노력을 해서, 우리 사회가 기울어지지 않고, 그늘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기회가 주어지고, 에너지가 있다면 그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대표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힘이 생기기를 기원하고, 저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구두 많이 만들어서, 많은 분들을 편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유석영> 고맙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사회적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의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의 유석영 대표였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 유석영>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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