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BJ들의 민낯…연극 '인방갤'

[리뷰] BJ들의 민낯…연극 '인방갤'

2019.08.19.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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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J들의 민낯…연극 '인방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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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J들이 사는 정글...자본에 뒤틀린 쌍방향 소통의 현장


별사탕, 건빵, 의첸, 열혈, 찐텐, 어그로, 블랙, 주작 방송....

이 낯선 단어들은 인터넷 방송 은어들이다. '별사탕'은 인터넷 화폐를, '어그로'는 상대를 도발해 관심을 끄는 행위를, '찐텐'은 진짜를 뜻한다. '주작 방송'은 조작 방송을 지칭하는 용어다. 1인 미디어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유튜브의 유튜버나 크리에이터, 아프리카TV의 BJ (Broadcasting Jockey) 등 동영상 창작자들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타급 유투버나 BJ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와 부를 누리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연극 '인방갤'은 인터넷 방송 갤러리의 줄임말로 이같은 1인 미디어 BJ들의 실상을 다룬 이색적인 작품이다. 거친 욕설과 자극적인 가십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의 민낯과 함께 별사탕(자본)에 휘둘리는 BJ들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최고 인기 BJ 철호,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섹시 BJ 미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방송을 시작한 트랜스젠더 BJ 프림,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체를 파헤치는 극우 애국주의자 BJ 육만원, 성인 인터넷 방송 '핑크 TV' 출신의 VJ 밀크 등 다양한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인터넷 방송의 실태를 날 것 그대로 펼쳐놓는다.

[리뷰] BJ들의 민낯…연극 '인방갤'


"회장님 별사탕 1000개! 의첸(의상 체인지) 뭐로 갈까요?" - BJ 미라

'의첸'은 별사탕을 준 회원의 요구에 따라 노출 있는 의상으로 바꿔 입는 것을 뜻한다. BJ들은 시청자(구독자)들의 모욕적인 발언도, 성희롱도 능숙하게 웃어넘기고, 도를 넘어선 비윤리적 요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넷 방송계의 '철통령'으로 불리는 억대 연봉 BJ 철호가 한밤 중에 안방에서 자는 딸을 깨우라는 회원의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모습은 '웃픈' 장면이다. 시청자들이 뿌리는 별사탕(인터넷 화폐)에 울고 웃는, 급기야 심신이 멍들어가는 BJ들의 모습은 자본의 횡포 속 비인간화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작품은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진검 승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출의 기교를 가급적 배제하고 한 명 한 명의 배우가 펼치는 연기력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이 점에서 김용준(육만원 역) 배우의 능청스러운 '극우'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인터넷 방송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의 북한 배후설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천연덕스럽게 반공서적과 시집을 파는가 하면 매니저 김 실장(권유진 배우)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연신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또 '트렌스 젠더' 박지홍(프림 역)과 '게임 덕후' 김경덕(순봉 역), 김애진(애찡 역), 장선(밀크 역) 배우 등 조연들이 극에 활력과 깨알 재미를 불어넣으며 소극장의 공간과 단조로운 동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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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극단 나베

이 작품은 김선영 배우와 이승원 연출이 힘을 합쳐 만든 극단 '나베'의 네 번째 작품이다.

기괴하게 뒤틀린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모럴 패밀리>, 지존파 살인사건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은 <두 형사 이야기>, 예술가의 죽음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고독을 다룬 <예술이 죽었다> 등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사회성 짙은 소재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통해 소통을 왜곡시키는 소비,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직시하게 한다. '소통의 도구' 인터넷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극심한 불통과 차별을 겪고 있는 BJ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연민과 함께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이교준 기자 (kyoj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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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인.방.갤 (인터넷 방송 갤러리)
■ 일시 : 2019년 8월 16일(목)~8월 25일(일)
■ 장소 : 노을소극장
■ 주최 / 제작 : 극단 나베
■ 러닝타임 : 130분
■ 작가 : 이승원
■ 연출 : 이승원
■ 조명 : 김호형
■ 음향 : 권유진, 정겨운
■ 디자인ㆍ사진 : 김우유
■ 기획 : 강선영, 권유진
■ 진행 : 강재흠, 정겨운
■ 조연출 : 김성민
■ 출연 : 김용준, 김권후, 김선미, 김애진, 김경덕, 박다미, 박지홍, 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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