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토크] 인생을 바꾼 '공부의 힘'

[공감토크] 인생을 바꾼 '공부의 힘'

2015.11.09. 오후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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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권, '공부의 힘' 저자

[앵커]
공감 토크 오늘 모실 초대 손님,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에서 일곱 번 연속 만점을 받고 두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공부의 신, 노태권 선생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대입수능 이제 사흘 남았는데요. 사흘 앞두고 저희가 그야말로 수능의 신을 모셨습니다. 대입수능 모의고사에서 7번 만점을 받으신 거죠.

[인터뷰]
네. 제가 공부를 시작한 지 한 7년 정도되었을 때 7번 정도 만점을 받았습니다.

[앵커]
남들은 십 몇 년 해도 결코 나올 수 없는 그런 점수인데요. 마흔세 살에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마흔세 살에 왜 시작하신 걸까요?

[인터뷰]
우선 저는 제 이름을 제대로 못 썼으니까 이름만큼은 쓰고 싶어서 아내한테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했죠.

[앵커]
이름을 못쓰신다는 게 어떤 얘기입니까?

[인터뷰]
제가 난독증입니다. 난독증을 제가 잠시 설명하자면 저는 글자가 이렇게 보이고.

[앵커]
원래는 선남선녀라는 글자가 보여야되는데 난독증 때문에 글자가 이렇게 보이신다는 말씀이시죠? 어떤 글자인지 알아보기가 힘든데요.

[인터뷰]
이렇게 뒤집혀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그당시에는 난독증이라는 용어도 몰랐을 때라저 같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몰랐죠.

[앵커]
난독증 때문에 중학교 졸업을 하셨다고 들었고요. 그 이후에 40살이 넘어서 공부를 시작하신 건데 하루에 14시간씩 공부를 하셨다고요?

[인터뷰]
14시간은 일을 했고 공부는 24시간을 했습니다.

[앵커]
24시간이요? 잠도 안 주무시고요?

[인터뷰]
자나깨나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앵커]
일을 하시면서 공부를 했다고 하시는데 그때 어떤 일을 하신 건가요?

[인터뷰]
저는 주로 육체노동을 했습니다. 세차장이나 야간 주유소의 주유원 일을 하면서 그렇게 공부를 했죠. 육체노동이 하나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몸은 움직이지만 머리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그런 장점을 이용한 것이죠.

[앵커]
육체노동이면 몸도 고되고 또 노동시장도 상당히 기셨다고 하는데 틈틈이 어떻게 공부를 하신 건가요?

[인터뷰]
저는 글자를 못썼기 때문에 아내가 만들어준 노트, 그리고 아내가 녹음을 해 준 테이프를 가지고 주유소에서 일할 때나 세차장 일할 때 들으면서 공부를 했죠.

[앵커]
아내분이 교과서 같은 것을 다 일일이 읽어서 녹음을 해 주신 건가요?

[인터뷰]
예, 녹음도 해 주고 다 써줬죠. 그당시에는 제가 글자를 쓰기 어려웠으니까 그때는 노트를 살 돈이 없어서 공사장에서 시멘트 포대를 주워오면 시멘트 포대를 이불 밑에 깔아서 써줬는데 기름떼 묻으니까 코팅을 해줬습니다.

[앵커]
또 아내분이 직접 써주신 글씨는 알아볼 수 있으니까 아내분이 일일이 써주셨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아내가 제 취향을 잘 알고 또 글자가 저한테 맞았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맞게끔 써주니까 아내 도움을 제가 받았습니다.

[앵커]
써주신 게 얼마나되나요, 분량이.

[인터뷰]
한 6~7년 동안 써 준것이 3000만 자 정도 됩니다.

[앵커]
3000만 자요? 아내분이 손도 다 휘셨다고요?

[인터뷰]
손가락도 다 휘었습니다.

[앵커]
그렇게 해서 일 하시면서 틈틈이 공부하시면서 수능대입시험을 보신 건가요?

[인터뷰]
예, 수능은 제가 7년을 공부를 했습니다.

[앵커]
7년 공부를 하셨고 모의고사를 처음 딱 봤더니 만점을 받았던 건가요?

[인터뷰]
네. 그때 제가 12과목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죠, 아내도 당황하고. 저는 공부를 잘하려고 마음먹은 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을 찾았는데 저도 거기에 대해서는 놀랐죠.

[앵커]
학원 다니신 것도 아니고 독학으로요?

[인터뷰]
네. 일을 해야 되니까 학원 다닌다는 개념은 없었죠, 그 당시에.

[앵커]
보통 생각에는 그렇게 공부를 하셨으면 실제로 수능을 봐서 좋은 대학을 가시든지 아니면 고시준비를 하시든지 그랬을 것 같은데 본인의 꿈을 위해서 어떤 것을 하신 건 아닌 건가요?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요?

[인터뷰]
저는 원래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무직 그런 계통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했는데 불행하게도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앵커]
어떤 것 때문에 그럴까요?

[인터뷰]
아이들 때문에 제가 공부를 포기해야 됐습니다.

[앵커]
두 아들 때문에, 공부를 7년 동안 하셨지만 대학에 가는 것은 포기하셨다는 말씀이신데요. 선생님의 두 아들이 선생님이 직접 공부를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요.

먼저 두 아들을 저희가 영상으로 먼저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앵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아버지, 이렇게 저희가 소개를 해 드렸는데 두 아들이 게임중독이었습니까?

[인터뷰]
네. 아주 게임중독도 심각했죠. 그 당시에 2000년도 초니까 한창 게임이 보급되고 그럴 때 우리 아이들도 거기에 빠졌던 모양입니다.

[앵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했습니까?

[인터뷰]
제가 볼 때는 거의 학교 마치고 나면 게임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제 공부에 빠져 있었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일하러 다니거나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죠. 아이들은 또 게임을 하다보니까 성적도 떨어지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었죠.

[앵커]
게임중독이라는 것을 처음에 알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알고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지금까지 본 중에서 그렇게 끔찍한 일은 제가 처음 당했습니다. 저도 막노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그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고 아이가 게임을 하면 3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해요.

그리고 게임이 끝나면 이틀은 밥도 안 먹고 잠만 자요. 그러면 5일을 굶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아이가 실체가 없는 거죠, 얼굴에. 눈도 마주칠 수가 없고 저것을 어떻게 하나.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죠.

[앵커]
그렇게 두려우셨고요. 아이들이 게임중독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도 받으셨을 텐데 그 게임중독인 두 아들을 공부중독으로 아버지가 만드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비결이 궁금할 텐데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인터뷰]
저는 우선 아이들과 이렇게 같이 운동을 하자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냥 게임을 그만두게 하면 더 폭발적으로 게임에 빠질 수 있으니까 운동을 하는 쪽으로 해서 하루에 한 20km씩 걸었습니다. 2년 동안 한 8000km 걸었습니다.

[앵커]
8000km를 두 아들과 걸으신 거군요.

[인터뷰]
네. 저도 생업을 포기를 했죠. 그런데 그게 또 금방되는 것이 아니죠. 소통도 안 되고 그래서 아이들이 자꾸 가출을 많이 했었습니다.

2년 동안 1년은 가출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을 했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아이들의 가출을 멈추게 하는 그런 계기가 있었습니다.

[앵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인터뷰]
하루는 이렇게 보니까 아이들이 또 집을 나갈 그런 궁리를 하더라고요. 제가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잡는다고 잡힐 아이들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아이들 신발하고 옷을 빨아버렸습니다.

빨아서 마르기를 아이가 기다릴 동안 저는 그 당시에 아이들과 행군을 하느라 생업을 포기했었는데 제가 다시 막노동 가서 이틀을 일을 해 줬습니다.

옷이 마를 동안 이틀 동안 일을 해서 그 돈을 가지고 아이들 배낭에 넣어줬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 배낭에 든 돈을 발견을 했던 모양이죠. 그러더니 3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그 뒤로는 다시는 가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아버지가 배낭에 넣어둔 돈을 보고 아이들이 느낀 바가 있었군요?

[인터뷰]
네, 저는 외곽을 때리는 전술을 사용했죠. 잡기 위해 놓아줘라.

[앵커]
잡기 위해 놓아줘라. 가출을 그 이후로는 아드님들이 하지 않았고 그리고 게임중독도 많이 나아진 거죠.

[인터뷰]
네. 호전되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더라고요. 아버지가 어떻게 보면 막노동하고 참 무식한 아버지 같은데 그래도 사랑과 정성은 아버지가 있구나, 그렇게 느낀 모양이에요.

[앵커]
게임중독 때문에 두 아들도 중학교만 졸업했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된 이후에 아버지가 게임중독에 멈추게 하고 또 집에서 직접 과외까지 다 하신 거잖아요. 열 몇 과목을요. 어떻게 가르치신 건가요?

[인터뷰]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영어의 3인칭 단수도 모르는 아이라. 그래서 제가 제일 처음에 시도한 것은 글자를 읽지 못하니까 읽기 능력은 인생을 결정한다. 성적을 좌우하는 것을 넘어서서, 제가 읽기 연습을 많이 시켰습니다.

언어가 발명된 지는 50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두뇌에는 읽기와 관련된 DNA 구조가 없다고 합니다.

[앵커]
읽기를 많이 시키고 과목별로 시간표를 정해서 직접 과외까지 하셨는데요. 그 결과 두 아들이 방황 끝에 명문대에 진학을 했습니다, 아버지 소망대로요.

저희가 사전에 두 아들분들에게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게 있는지 미리 좀 여쭤봤습니다. 그 얘기를 먼저 들어보시죠.

[인터뷰]
아빠 안녕하세요. 아버지 속 진짜 많이 썩였던 큰아들입니다. 지금에서야 제가 깨닫게 됐는데 제가 아버지와 함께 행군을 하면서 얼마나 많이 속을 썩였는지요.

이제서야 아버지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항상 목표로 하시는 것 있죠?

그게 바로 가수인데 저도 옆에서 물신양면 아버지가 가수가 되도록 옆에서 많이 돕도록 하겠습니다. 공부에서도 1인자, 가수에서도 1인자. 아버지 파이팅!

[인터뷰]
아버지 안녕하세요. 둘째 아들 희주입니다. 제가 아버지 도움으로 제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요.

저희가 가족이다보니까 너무 익숙하고 민망해서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앵커]
두 아들의 메시지를 들어보셨는데요. 눈가가 촉촉해지셨습니다. 많은 시청자분들이 이것을 보시면서 부러움을 느끼실 것이고요.

가장 중요한 게 이렇게 단시간에 성적을 올리려면 뭐가 가장 중요할까. 이게 가장 궁금하실 것 같아요. 몇 가지만 짧게 소개를 해 주시죠.

[인터뷰]
저는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이고 또 두 번째는 아이는 반드시 성장하기 때문에 부모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고 그리고 소 팔아 공부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하면 어떤 과목이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의 수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학생이 우리 아이가 만약에 국어가 약하다면 홈스쿨은 하세요. 고등학생이라도. 만약에 수학이 약하다면 초등학교 5학년 것부터 시키니까 누구나 성장하더라고요.

[앵커]
그리고 수능이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요. 수능 사흘 남은 수험생들에게 끝으로 전략이라고 할까요? 4일 동안 점수 올리는 법 좀 공개해 주시죠.

[인터뷰]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시킬 때 중학교 1학년 목차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했으니까 자기가 공부가 했던 것을 회상을 하면서 써보면서 아주 효과적입니다.

내가 무엇을 배웠고 그때는 무엇이 내가 부족했는가 생각을 하고 두 번째는 그다음에 두 번째는 6월, 9월 평가문제를 반드시 풀어봐야 합니다.

출제의도를 분석하고. 다음 마지막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수능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잠자는 시간, 기상시간. 적어도 기상시간은 8시 10분까지는 입실을 해야 되고 8시 30분에 시험을 치르니까 2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앵커]
수능 앞둔 자녀분들에게 부모님들 하고 싶은 말씀 많을 텐데 많은 말을 하면 안좋을 것 같고요. 어떤 말을 하면 가장 좋겠습니까?

[인터뷰]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실 말이 있겠습니까? 제가 생각할 때는 저는 우리 가정의 자부심이다. 이 정도만 이렇게 격려만 해 주면 됩니다.

[앵커]
수능 사흘 앞두고 수능의 신, 공부의 신 모시고 얘기를 나눠봤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이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노태권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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