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출발새아침] 고종 황제, 테니스 치는 외국인 보며 "저 힘든 일을 하인 안 시키고"

[신율의출발새아침] 고종 황제, 테니스 치는 외국인 보며 "저 힘든 일을 하인 안 시키고"

2015.07.08. 오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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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History in News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고종 황제, 테니스 치는 외국인 보며 "저 힘든 일을 하인 안 시키고..."
- 스포츠만큼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어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역사의 눈으로 뉴스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History in News, 오늘도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지금 광주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리고 있잖아요. 대학생들의 대회인데요. 출전자격이 19살부터 27살까지이죠. 매일 우리 선수들의 메달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스포츠의 기원이 전쟁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 전우용: 전부 전투행위이죠. 사실 근대 올림픽이 창시되면서 고대 종목들을 재편해서 집어넣었는데, 그 대표적인 종목이 근대5종이거든요. 이 종목이 뭘로 구성되어 있냐면, 승마, 육상, 수영, 사격, 펜싱, 이렇게 5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 타고 달리다가 물이 나오면 말을 놓아두고 헤엄쳐서 건너고, 그 다음에 다시 두 다리로 달리고, 적을 만나면 총을 쏘고, 총알이 떨어지면 칼 싸움하는, 전투의 전체과정을 요약한 것인데요. 육상이나 수영은 가장 기본적인 종목들, 그리고 양궁, 사격, 펜싱, 이런 것들 전부 전투행위잖아요. 그러니까 고대 전투훈련에서 비롯되었고, 거기에 순수하게 전투적 의미가 없는 놀이라고 하면 구기종목 정도이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유니버시아드 대회이든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아주 평화로운 전쟁이잖아요. 그래서 용어도 보면 이겼다, 졌다 정도가 아니라, 출전, 격파, 군단, 이렇게 쓰잖아요.

◇ 신율: 그렇죠. 그런데 사실 스포츠와 정치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이고, 사실 스포츠가 정치의 대리전을 띠는 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전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 전우용: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기보다, 올림픽의 기원 이야기를 봐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올림푸스 산의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진짜 전쟁을 쉬고 가짜 전쟁을 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전쟁 대행이었던 것이고, 전쟁 자체의 폭력성을 완화하기 위한 대리전이었다. 그러니까 정치가 스포츠와 결합된다는 것은 정치가 곧 전쟁의 평화로운 수단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봅니다.

◇ 신율: 제 기억으로는 축구의 기원도 상대편의 해골을 차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 전우용: 스페인을 점령해서 물리쳤던 영국인들이 스페인 점령자들의 해골을 차면서 놀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 신율: 그런 걸 보면 축구도 사실 살벌한 기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 스포츠나 운동이라고 이야기할만한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 전우용: 군사훈련적 성격을 지니는 신체활동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죠. 승마, 격구, 활쏘기, 씨름, 돌 싸움,

◇ 신율: 돌싸움이요?

◆ 전우용: 네, 석전이라고 하죠. 서울에서는 1902년도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 신율: 맞으면 큰일나는 거 아닌가요?

◆ 전우용: 매년 수백명씩 죽었습니다.

◇ 신율: 그럼 스포츠가 아니죠?

◆ 전우용: 고대 스포츠 같은 거 보면, 그리스의 올림픽도 벽화로 남아있는데요.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경기들이 요즘 같은 보호구 없이 했잖아요. 상대가 죽을 때까지 했고요. 예를 들어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졌던 검투경기도 사실 스포츠 거든요. 이게 무슨 전쟁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고대의 스포츠는 사람 목숨걸고 하는 것이 많았죠. 그런 식의 살벌함, 군사 훈련과 관계 없이 심신단련이라는 것으로 목적을 이동시킨 것이 근대 스포츠인데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그런 식의 폭력성,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교육적, 유희적 목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1880년대 서양인들이 학교를 세우면서,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 이쪽에서부터 스포츠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되겠죠.

◇ 신율: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라는 영화가 그 무렵의 이야기잖아요.

◆ 전우용: 한 20여년 뒤의 이야기죠.

◇ 신율: 그렇군요. 그러니까 배재학당, 이화학당, 이런 게 생기면서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인데요. 이때부터는 완전히 운동이 되는 건가요?

◆ 전우용: 보편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배재학당, 이화학당처럼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은 몇 개 안 되었으니까요. 이걸 체력의 단련이라는 것을 중요한 교육 목표로 인정하게 된 것은 1894년에 교육입국조서, 그때 비로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되었고, 그 전까지는 체를 육성한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덕체지의 육성, 체육이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들어오게 되었고요. 그 이후로 바로 생긴 것이 소학교들인데, 이 소학교들에 체육과목이 들어왔고, 당시에는 도구들이 변변치 않았으니까 주로 체조, 달리기, 이런 정도의 간단한 육상경기들을 가리키기 시작했고요. 그게 일반화하기 시작한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가 체육을 긍정하는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죠.

◇ 신율: 그러면 그 당시 체육은 어떤 것일까요? 체조나 이런 것 가르치는 건가요?

◆ 전우용: 그러니까 최초의 학교 교육은 1880년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나라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최초의 서양인이 웰렌도르프라는 독일인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지금 종로 수성공원 자리에 민겸호라는 사람의 집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임오군란 때 피살 당하거든요. 그 집을 왕실에서 내려줬어요.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한 것이 마당에 테니스장을 만든 거예요.

◇ 신율: 얼마나 집이 컸으면 마당에 테니스장을 만들어요?

◆ 전우용: 글쎄요. 그래서 중국인 통역과 함께 테니스를 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서양인 외교관이나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1880~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런 테니스 경기가 굉장히 흔했고요. 정동 분수대 있는 자리 인근에도 서양인들을 위한 공공 테니스 경기장이 있었죠. 그런데 하루는 고종이 직접 가서 구경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고종이 그랬다고 합니다. “귀빈들이 저렇게 힘든 일을 아랫것들을 안 시키고, 왜 직접 하시는지 모르겠다.“ 말은 점잔케 했던 것이고, 당시 많은 양반들이 그렇게 생각했죠. “역시 오랑케는 할 수 없다. 저렇게 힘든 일을, 아랫것들 보내줬더니 자기들이 직접한다.” 이건 노동과 운동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던, 그런 문화가 1880년대 이후로도 꽤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죠.

◇ 신율: 네, 제 몸 속에 양반 피가 흐르나봐요. 저도 별로 운동을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운동회 있잖아요. 학교 운동회나 그런 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 전우용: 아마 학교별 운동회는 1880년대 서양식 학교에서부터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은 안 남아 있는데요. 기록상 개별학교 내에서의 운동경기가 아니라, 경쟁의 성격을 띤 경기대회가 열린 것은 1896년 관립소학교 연합운동회가 처음입니다. 초등학교 연합 운동회를 했다는 것이죠.

◇ 신율: 그때는 달리기나 이런 것 했겠죠?

◆ 전우용: 종목이 굉장히 재밌어요. 2인3각, 달리기, 이런 것인데요. 재밌는 것은 모든 선수들이 평등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대인부, 소인부로 나눠서 합니다.

◇ 신율: 키 순서대로인가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런데 키 크다고 반드시 빠른 것은 아닌데요.

◆ 전우용: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요. 또 중요한 것은 이때부터 운동회 식상에 장식을 올리는 것이 있어요. 만국기라는 것이죠.

◇ 신율: 그때부터 만국기가 있었군요.

◆ 전우용: 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올림픽이 생기고 난 이후니까, 스포츠 경기가 단순히 나와 상대방의 경쟁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대 국가의 경기라는 자의식을 심어주는 것이고요. 사실 스포츠만큼 자기 국기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없잖아요. 이 스포츠 경기만큼 애국심을 자극하는 게 없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항상 정치 이념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뉘지만,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벤트가 월드컵 같은 거잖아요. 이런 스포츠 경기는 한 편으로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내고, 또 한편으로는 애국심, 국가에 대한 생각,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마당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 신율: 그런데 예전에 운동회를 하면 한복입고 뛰지 않았나요? 걸리적거려서 제대로 뛸 수 있었을까요?

◆ 전우용: 우리 문화 자체가 그런 면이 있어요. 마당도 그렇고 복장도 그런데요. 좀 걷어 올려서 질끈 묶어버리면 걸리적거리지 않는 면이 있죠.

◇ 신율: 그렇군요. 그런데 일제시대에 스포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손기정 선수인데요. 마라톤을 뛰면서 일장기를 뜯어내는..

◆ 전우용: 그건 그야말로 신화죠. 있지 않은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고요. 본인은 끝까지 일장기를 달고 뛰었고, 시상식에 올랐죠. 나중에 신문에 보도할 때, 조선중앙일보에서 일장기 부분을 뭉개고 보도하는 바람에 일장기 말소사건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만약에 그랬으면 손기정 선수가 귀국도 못했을 겁니다.

◇ 신율: 그렇군요. 어쨌든 손기정 선수, 민족적 영웅 아니었습니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는 스포츠에 민족적 의미가 상당했을 것 같은데요.

◆ 전우용: 스포츠에 민족적 의미를 담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이후부터 인 것 같아요. 을사늑약 이후에, 그 때는 스포츠라기보다 각급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뭘 하냐면, 집총훈련을 해요. 우리 시대로 치면 교련에 해당하는 것을 하죠. 나라가 망해간다는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려면 군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교육이 군사교육처럼 되어 버리고요. 체육교육이 군사훈련 비슷하게 되어 버리고, 나아가서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개념, 조선인이 스스로 강해져야 독립의 기틀을 다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까지 쭉 지속이 되는데, 다만 일제강점기에는 공개적으로, 이게 민족의 힘이다. 체력을 길러야 독립의 기틀을 다질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못하니까 은밀하게 숨겨서 체육에 임하는 것이었고요. 일본도 공식적으로 ‘조선인은 체력이 약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못하니까, 체육 교육을 지원하고 하는 것을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죠.

◇ 신율: 그렇죠.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그리스 있잖아요. 그리스하고 터키가 한일관계보다 더 나쁘더라고요.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그리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터키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요.

◆ 전우용: 오스만 터키 시절에서부터, 1차 대전 당시 그리스가 독립하고, 터키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부터 나타난 갈등이니까요.

◇ 신율: 그렇죠. 우리도 한일전, 다른 건 다 져도 일본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이런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 전우용: 일제강점기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조선인은 스포츠 중에서도 마라톤하고 축구에 특장점이 있다. 다른 종목은 다 일본에 졌어요. 그런데 축구하고 마라톤은 일본에 이겼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슬픈 이야기예요. 왜냐면 이 두 종목이 돈이 안 드는 거잖아요. 현대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로 들어왔는데, 가장 심각하게 부각되는 문제는 얼마 전에 피파 회장이 불명예 퇴진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지나친 상업화로 인한 비리의 가능성, 이런 문제들이 현대 사회에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 신율: 네, 잘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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