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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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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안네 프랑크의 의붓자매인 에바 슐로스가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영국 안네 프랑크 트러스트는 단체의 명예 회장인 슐로스가 지난 토요일 영국 런던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에바 슐로스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헌신적인 홀로코스트 교육자였으며, 기억과 이해, 평화를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친 놀라운 여성"이라며 "그가 남긴 책과 영화, 교육 자료들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슐로스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했다. 이곳에서 같은 또래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친구가 됐다.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뒤 슐로스 가족 역시 프랑크 가족과 마찬가지로 체포를 피하기 위해 약 2년간 은신 생활을 했지만, 결국 밀고로 발각돼 체포됐다. 이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슐로스는 2019년 CBS와의 인터뷰에서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떠올리며 "80명이 한 공간에 몰려 있었고, 물이 든 양동이 하나와 화장실로 쓰는 양동이 하나뿐이었다"며 "하루 한 번, 마치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던지듯 빵 덩어리를 던져줬다"고 증언했다.
슐로스와 어머니 프리치만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살아남았으나 아버지 에리히와 오빠 하인츠는 아우슈비츠에서 숨졌다.
전쟁 후 슐로스는 영국으로 이주해 독일계 유대인 난민 츠비 슐로스와 결혼하고 런던에 정착했다. 1953년에는 어머니 프리치가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재혼하면서 슐로스는 안네 프랑크의 의붓자매가 됐다. 안네 프랑크는 전쟁 말기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15살의 어린 나이에 숨졌다.
슐로스는 오랜 세월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내성적으로 변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86년 런던에서 열린 안네 프랑크 전시회 개막식 연설을 계기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학교와 교도소, 국제회의 등을 돌며 증언 활동을 이어갔고, '에바의 이야기: 안네 프랑크 의붓자매의 생존 기록'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는 201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나치 경례 사진으로 논란이 된 고등학생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고, 이듬해에는 페이스북에 홀로코스트 부정 콘텐츠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슐로스는 "사람들은 절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명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특권이자 자랑이었다"며 "젊은 시절 겪은 공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는 남은 생을 증오와 편견을 극복하고 친절과 용기, 이해와 회복력을 전파하는 데 헌신했다"고 추모했다.
남편 츠비 슐로스는 2016년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에바 슐로스는 유족으로 세 딸과 여러 손주, 증손주를 남겼다.
YTN digital 정윤주 (younju@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영국 안네 프랑크 트러스트는 단체의 명예 회장인 슐로스가 지난 토요일 영국 런던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에바 슐로스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헌신적인 홀로코스트 교육자였으며, 기억과 이해, 평화를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친 놀라운 여성"이라며 "그가 남긴 책과 영화, 교육 자료들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슐로스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했다. 이곳에서 같은 또래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친구가 됐다.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뒤 슐로스 가족 역시 프랑크 가족과 마찬가지로 체포를 피하기 위해 약 2년간 은신 생활을 했지만, 결국 밀고로 발각돼 체포됐다. 이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슐로스는 2019년 CBS와의 인터뷰에서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떠올리며 "80명이 한 공간에 몰려 있었고, 물이 든 양동이 하나와 화장실로 쓰는 양동이 하나뿐이었다"며 "하루 한 번, 마치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던지듯 빵 덩어리를 던져줬다"고 증언했다.
슐로스와 어머니 프리치만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살아남았으나 아버지 에리히와 오빠 하인츠는 아우슈비츠에서 숨졌다.
전쟁 후 슐로스는 영국으로 이주해 독일계 유대인 난민 츠비 슐로스와 결혼하고 런던에 정착했다. 1953년에는 어머니 프리치가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재혼하면서 슐로스는 안네 프랑크의 의붓자매가 됐다. 안네 프랑크는 전쟁 말기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15살의 어린 나이에 숨졌다.
슐로스는 오랜 세월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내성적으로 변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86년 런던에서 열린 안네 프랑크 전시회 개막식 연설을 계기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학교와 교도소, 국제회의 등을 돌며 증언 활동을 이어갔고, '에바의 이야기: 안네 프랑크 의붓자매의 생존 기록'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는 201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나치 경례 사진으로 논란이 된 고등학생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고, 이듬해에는 페이스북에 홀로코스트 부정 콘텐츠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슐로스는 "사람들은 절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명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특권이자 자랑이었다"며 "젊은 시절 겪은 공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는 남은 생을 증오와 편견을 극복하고 친절과 용기, 이해와 회복력을 전파하는 데 헌신했다"고 추모했다.
남편 츠비 슐로스는 2016년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에바 슐로스는 유족으로 세 딸과 여러 손주, 증손주를 남겼다.
YTN digital 정윤주 (younj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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