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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 5) [YTN ON-AI RADIO]
□ 방송일시 : 2025년 11월 21일 (금)
□ 진행 : AI챗봇 “에어”
□ 보조진행: 김우성 PD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입니다. 여전히 쌀쌀하고 세상 일도 참 궁금하고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내 마음대로 오르지 않는 성적, 내 마음대로 오르지 않는 주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이어트 여러 가지가 많죠. 그래도 제일 걱정되는 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일 텐데 중국과 일본이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일본의 콘텐츠도 안 보여주겠다 국민들에게 그렇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일령’인데 사드 때 ‘한한령’ 있었던 거 기억할 겁니다. 국내 굴지의 대형 마트들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물러선 적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은 매번 반복돼 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승리의 전쟁으로 바꾸는 커다란 힘을 발휘했던 그때도 그랬고요. 불과 한 100년 전 120년 전에도 강대국들은 제국주의라는 명목으로 서로 충돌했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고래 싸움을 두려워하는 새우였죠.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등 터질 새우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자주 국방과 경제적 힘이 강한 나라입니다. 다만 싸움에 휘말려서 국익을 잃어버리거나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우면 안 되기 때문에 고민들이 많은 거고요. 외교나 안보 당국자들이 열심히,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죠. 오늘 금요일 날은 굉장히 어려운 책, 평소에 접해보기 힘든 것들. 심지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마키아벨리를 소환해서 여러분께 쉽게 전달해 드렸는데. 오늘은요 그분의 목소리도 살짝 등장합니다.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불리하고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죠. 대단한 리더십이면서도 우리 역사 속에서 빠지지 않는 분인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한번 저희가 천천히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다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일기 성격이기 때문인데. 그 의미를 짚어볼 텐데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도 중요한 얘기죠. 이런 질문으로 한번 묶어 가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최신 뉴스를 AI의 시선으로 한번 정리해 봐야 될 텐데 중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 악화 에어가 설명해 주죠?
◇ 에어 : 네. 지금 갈등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입니다. “대만에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자위대 파병까지 검토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게 말한 건데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원칙이 있죠. 그런데 일본의 현직 총리가, 그것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대만에 군사 개입을 시사했습니다. 중국이 보기에는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구조적인 긴장 요인들이 겹쳐 있어요. 대만해협, 동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침략 역사·식민지 지배·야스쿠니·독도 문제, 미·중 전략 경쟁과 일본의 재무장 흐름, 그리고 중국·일 양쪽 모두의 국내 정치와 민족주의. 이게 다 배경으로 깔려 있다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하나를 계기로 한 번에 터져 나온 상황입니다.
◆ 김우성 : 대만 여행 가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대만에는 정확히 우리와 공식적 외교 루트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대표부 정도를 교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뒤로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우리가 1990년대에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당시에는 이름이 중공이기도 했습니다만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의 단절을 요구받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 가면 국제 면허증을 갖고 가도 대만에서는 차를 빌릴 수 없습니다. 수교 관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인데. 물론 우리는 지난 20년 넘는 기간 동안 중국과의 연관된 경제로 아주 큰 성장을 했습니다. 여기서 좋다 나쁘다 얘기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외교 무대에서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습니다. 자기 나라 국민 먹여 살리려면 모두 상대를 적으로 돌리기도 하고요. 필요할 땐 아군으로 삼기도 합니다. 미국도 우리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요구를 하잖아요 수백 조 내놔라. 우리의 우군인데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 거고요. 우리도 마찬가지 입장인데. 이런 상황에 대만 문제라는 건요 우리나라 사례도 말씀드렸지만 민감한 문제, 하나의 중국을 깨려는 행위로 바라봅니다. 중국도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거든요. 한족 중심의 지배를 베이징을 기준으로 해서 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습니다. 한반도와 닿아 있는 쪽에는 중국 국적이지만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신장 위구르 각종 여러 가지 민족들이 합쳐져 있기 때문에 이 원리가 깨지면 우리가 분해될 수 있다라는 공포감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의 강한 민족주의 혹은 중국식 여러 가지 이념들이 내세워지고 있는 건데 일본이 이걸 딱 건드렸다 이 말인 거죠. 반대로 대만을 보면요 대만은 굉장히 맥락상의 친일이 아니라 대만의 입장에서 굉장히 친일 국가입니다. 일본을 굉장히 선호하고요. 일본의 역사 발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TSMC 같은 반도체 회사도 일본과 아주 밀접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바 이런 기업들 대만에서 굉장히 사랑받고 있고요. 일본 입장에서도 대만은 전략적 가치가 있고 대만 넘어오면 우리 아니냐 이런 우려가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풀어서 설명해 드리려고 에어의 말에 말을 덧붙였고요. 그런데 중국이 늘 마음에 안 들면 사드 때도 그렇고 주변 국가들 위협하긴 했는데 이번엔 센 것 같아요. 군사 훈련도 보여주고 군인들이 성토하는 장면까지 미디어를 통해 노출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에어 :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발언 주체의 무게입니다. 아베는 그때 전직 총리였고, 이번에는 현직 총리예요. 그것도 국회라는 공식 무대에서 국가 정책처럼 들릴 수 있는 톤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타이밍입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이미 전면전 수준으로 올라와 있고, 일본은 안보 전략을 바꾸면서 ‘공격 능력 보유’까지 선언했죠.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중국은 “미·일 군사 공조 그림의 일부”라고 읽고 있는 겁니다. 셋째, 국내 정치와 민심입니다. 일본 내부에선 강경 발언이 다카이치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카드고, 중국에선 경기 둔화·사회 불만 속에서 대일 강경 노선이 민족주의 결집에 유리하죠. 그래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외교 실언이 아니라 양쪽 정부 모두가 내부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갈등으로 성격이 바뀌어 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우성 : 침 삼키는 포인트까지 표현하면서 에어가 너무 사람처럼 설명하고요. 내용도 참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줬죠. 현직 총리가 그것도 정부 정책을 설명할 만한 의회의 자리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 그리고 타이밍 미중 전략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경제의 모든 문제가 중국 주도에서 성장하고 있는 경제에 제동을 걸고 미국이 다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그런 충돌의 측면이 있잖아요. 하필이면 이 시기에 미국과 아주 밀접한 일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다카이치 총리는 굉장히 일본 내에서도 극우 성향이죠.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친다거나 전범들에 대한 입장. 우리 선조, 우리 국민들에게 명백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집단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 번 더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주변의 피해 국가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를 못 했다라는 평가가 나오잖아요. 본인들은 했다고 합니다. 자민당이 아니라 민주당 정부 때 총리가 직접 사죄했다 이런 표현도 있고 실제로 했었죠. 하지만 계속 이런 논란이 불러오는 건 그 뒤에 집권하고 있는 이 다카이치 총리처럼 보수 우익을 자랑하는 쪽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도발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튜브 보시는 분들은 제 손을 보시겠습니다만 한국에서 이렇게 택시 잡잖아요. 그러나 독일에 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을 때, 독일에선 이런 행위만으로도 자칫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뭔지 아시겠죠? 나치 시절에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인사 방식인데 그 유사한 표현조차 못하게 하는 게 있습니다. 하물며 이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나치 못지않은 악행을 저질렀던 걸 감안한다면 야스쿠니 전쟁으로 자국의 국민들을 죽이고 자국의 선조들 아버지 할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정치인 그대로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게 언젠가 현실로 다가오면 어떡하냐 이런 생각이 있죠. 이 접점을 풀어야 되는데 이렇게 안 풀고 서로 대립하는 게 이득이라는 겁니다. 자기 나라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겐 이득이다. 서로 마찬가지죠. 중국도 강경 대응하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잖아요. 그러니까 현 지도 집권 세력을 중심으로 ‘단결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치적 이득은 맞아떨어진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어떤 것들을 제안하고 있는지 알려주시죠.
◇ 에어 : 네, 크게 네 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외교·여론전의 측면에서는,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두고 “극히 잘못된 발언”, “불장난”이라고 세게 규정하면서 계속 사과·철회를 요구하고 있어요. 여기에 독도 전시관 확대 문제까지 끌어와서 “일본의 악성 언행이 주변국 불만을 키운다”고 때리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 입장을 슬쩍 옆에서 받쳐주는 모양새죠. 중·일 관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던 공동 여론조사나 도쿄-베이징 포럼 같은 행사들도 줄줄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또, 중국 정부가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한 뒤로, 중국 단체 관광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일본의 관광·숙박·면세·유통업계가 바로 직격탄을 맞고 있어요. 일부 중국인들은 “굳이 일본 갈 필요 있나” 하면서 한국이나 동남아로 여행지를 옮기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 김우성 :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사드 때도 마찬가지였었고요. 무역이나 안보 측면에서도 점점 갈등이 드러납니다. 기억나시죠? 소부장. 네 소재, 부속, 장비 이거 안 되는데. 대한민국은 자국화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무역 안보, 중국과 일본 사이는 어떻습니까?
◇ 에어 : 맞습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한 번 막았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려던 타이밍에 다시 멈춰 세웠고요. 2001년 이후 중단돼 있던 일본산 소고기 수입 재개 협의도 아예 접겠다고 하면서 압박 수위를 올렸습니다. 일본 안에서는 “이 다음은 희토류 규제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어서, 사실상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경제 제재로 보는 게 맞는 상황이에요. 또, 중국 최신 항모인 푸젠함이 실탄 사격까지 포함한 첫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장면을 관영매체가 크게 띄운 것도 타이밍상 일본을 겨냥한 군사 메시지로 읽힙니다. 센카쿠 주변 활동 확대, 서해·동중국해 실탄 훈련 강화 얘기까지 같이 나오면서, “우리 군사력도 건드리지 마라”라는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거고요. 정리하면, 중국이 외교·여론전, 여행·교류, 무역·경제, 군사·안보를 한꺼번에 묶어서 일본을 압박하는, 완전히 ‘패키지 갈등’ 모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 김우성 : 네 정리를 꼼꼼하게 잘해주면서 표현까지. 한숨 소리도 들리고요. 살짝 말실수도 나오고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닌데. 지금 들으신 목소리 YTN 라디오 온에어의 진행자 에어의 목소리인데 너무 잘하지 않나요? 어떻게 이렇게 시사 안보 문제까지 그것도 국제정세의 문제인데 잘 설명해 내는지 정말 저희가 잘 키워서 여러분들에게 봉사하도록 더 잘 키워보겠습니다. 중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 분석했습니다. 서로의 내적인 정치 요구뿐만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에 대한 부분들, 여러 가지 안보 경제 그리고 민족주의 같은 경쟁 상황까지도 다 연결되어 있다라는 거 에어가 잘 설명했고요. 이렇게 표현하면 이순신 장군님께 죄송합니다만 정말 벽돌책 수준으로 긴 시간의 일기를 기록하셨잖아요. 유네스코 기록유산이죠 맞을 겁니다. <난중일기>를 왜 지금 보려고 하는지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일본 정말 철천지원수지 다른 나라한테 져도 일본에 지면 안 돼 식민 지배,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얼마나 끌고 갔고 우리 너희들을 욕보였어.’ 한쪽에서는 ‘아 중국 한국전쟁의 원수지 우리나라 병사들과 군인들이 얼마나 죽었어’ 이렇게 감정으로 대처하다 보면 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지금은 그때와 다른 승리, 그때와 다른 안보, 그때와 다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되는데 왜 난중일기를 꺼내 들었냐고요? 한번 난중일기 들어보십시오. 그런 분노와 깃발 아래 막 불타오르는 모습보다는 굉장히 냉철함도 보이고요. 위기 관리라는 대단한 능력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에어의 생각은 어떨까요?
◇ 에어 :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동안 직접 쓴 전쟁 일기입니다. 오늘 몇 척의 왜선이 어디서 움직였는지, 조선 수군의 병력·군량이 어떻게 줄었는지, 날씨, 부하들의 상태, 상부의 압박, 심지어 본인의 감정까지 아주 솔직하게 적어 놓았죠.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영웅담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한 지휘관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버텼는가”를 보여주는 사실상의 위기 관리 매뉴얼로 읽힙니다.
◆ 김우성 : 무언가를 잘 헤쳐 나가고 결정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는 이렇게 입체적입니다. 지휘관,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 그 사람들을 움직이고 활용할 수 있는 부하, 무기, 군량미 여러 가지 상태들 그리고 당시의 날씨, 적군의 상태 이 모든 걸 기록한다는 건 그걸 읽고 해석했다라는 거죠. 이순신 장군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만 이걸 난중일기를 통해서 보면 한 번 대단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시점에서 지금과 우리 상황과 굉장히 연결고리가 많기 때문에 난중일기 <온마이크> 시간에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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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성 : ‘ON-AIR’의 메인 토크 시간, ‘온 마이크’입니다. 매주 금요일, 고전을 읽는 시간, <벽돌 책 뿌수기> 코너 진행하고 있죠.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기록으로 버틴 사람, 전쟁 중에도 매일 글을 남긴 사람, 이순신의 일기를 통해 ‘위기 속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복잡하신 분들은 이 프로그램만 들으시고요. 먼저 난중일기가 어떤 책인지 우리 에어에게 소개를 부탁합니다.
◇ 에어 : <난중일기>는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이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인,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기간동안 쓴 일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개월 전인 1592년 정월부터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총 2,539일간이 기록된 일기죠. 이 책의 초고본은 현충사에 비치 돼 있고,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 김우성 : 와. 2539일간 일기를 쓰고 기록하는 게 그냥 학생들이 숙제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요.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장수가 그것도 전세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장수였던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치르며 기록한 겁니다. 그냥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덕목도 여기서 나올 수 있을 텐데요. 치열한 전란 속에서 일기를 이렇게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 인공지능 에어가 여러 자료를 통해서 분석해 왔을 텐데 이유 뭔가요?
◇ 에어 :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쓴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그는 날씨, 바람, 물길, 배의 수와 병사 의 얼굴빛, 상부의 명령과 부하의 보고, 심지어 자신의 두려움과 한숨까지 적어두었죠. “오늘은 잘 싸웠다” 같은 막연한 위안이 아니라,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스스로 속이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 김우성 : 정말 감동적이죠. 에어의 설명도 감동인데요. 이순신 장군께서 정말 있는 그대로 내가 뭐가 두려운지, 부하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부하에게 군법으로 죽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싸우다 죽는 게 나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도 다 본인이 있었던 일을 저녁에 기록해 두는 겁니다. 왜냐고요? 스스로 속이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에 이길 수 있는 전략, 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이겠죠.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후세를 위한 미화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기 위한 보고서다.” 이렇게 설명해 볼 수도 있겠네요. 디테일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난중일기의 첫 일기부터 바로 이런 디테일이 드러나는데요. 에어가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추측해서 한번 복원해 봤습니다. 장군의 목소리로 난중일기의 첫날 일기 들려드립니다.
◇ 에어 : (이순신 장군) “1592년, 임술년 1월 1일. '난중일기의 첫 일기’ “1592년 1월 초하루, 하늘이 맑았다.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그리고 아들 회가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멀리 떠난 채, 또다시 남쪽에서 설을 맞게 되니 가슴 깊은 회한을 이기기가 어려웠다. 그때 병마절도사의 군관 이경신이 찾아와 절도사의 편지와 설 선물을 전했다. 긴 화살과 편전, 그리고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그 해의 첫날을, 그리움과 책임감 속에서 시작했다.”
◆ 김우성 : 방송을 준비하면서 좀 공부를 했는데, 40대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맞이했을 때도 이순신 장군이 마흔여덟, 40대 중반 정도였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40대여서 마음이 동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기록들이 나와 있죠. 모든 기록들은 전략적이고, 판단하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적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내 칼 길이를 알아야 적을 찌를 수 있죠. 그런 정말 뛰어난 전략가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렇지만 않은 얘기도 있거든요. 가슴 절절한 슬픔과 또 분노 이런 감정도 잘 묘사해 놨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됐었죠. 들어보시죠.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입니다.
◇ 에어 : (이순신 장군) “14일, 날이 맑았다. 사경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던 중말이 발을 헛디뎌 냇속으로 떨어졌으나나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뒤로 막내아들 면이 나를 껴안는 듯한 모양이 어른어른 보이더니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이 되자 천안에서 온 이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했다. 아직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는데 살과 뼈가 먼저 떨리고 마음이 황망해졌다. 겉봉을 대강 찢어보니 예가 쓴 ‘통곡’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면이 전사했다는 걸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맥이 탁 풀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토록 어질지 못할 수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산다는 것이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해조차 빛을 잃은 듯 바래 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렸느냐. 출중하고 영민한 너를 하늘이 끝내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구나. 나의 죄가 네게 화가 되어 돌아갔구나.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나 앞으로 어디에 의지하고서야 할지 모르겠다. 부르짖고 서글프게 울 뿐이었다. 하룻밤을 넘기기가 한 해를 건너뛰는 것처럼 길었다.”
◆ 김우성 : 아들이 슬프게 죽고 난 뒤에 이렇게 일기로 담담하게 그 심정과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프로들 보면 어려운 가정사를 겪었는데, ‘그 순간에도 저는 열심히 방송했습니다. 열심히 수술했습니다. 열심히 전투에 나갔습니다. 열심히 경기했습니다.’ 이런 분들 얘기 많이 듣잖아요. 정말 대단한 위인의 품성인 것 같고요. 아들 ‘이면’은 1597년 전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가족을 왜군들이 포로로 잡아서 장군을 좀 압박하려고 했을 때 굴복하지 않고 싸우다 죽은 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상황을 탓하면서 스스로 슬퍼합니다. ‘장수인 내가 죽어야지 왜 아들인 네가 죽느냐’라고 슬퍼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느껴졌고요. 굳이 이렇게 일기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두는 게 정말 특이한데요. 모함에 빠져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백의종군하잖아요. 그 순간까지도 담았어요. 왜 이렇게 담아놨을까요?
◇ 에어 : 이 장면은 “명예 회복”이라기보다 “치욕까지 기록으로 끌어안은 순간”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전쟁터에서 물러난 적은 없었지만, 모함과 시기, 조정의 어지러움 때문에 옥에 갇히고 형장까지 서게 된 사람이, 다시 백의종군을 명받고 남쪽으로 내려가죠. 길가마다 백성들이 나와 맞이하고, “다시 돌아와 다행”이라 울먹였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장군의 마음은 승리감이 아니라, “나라가 이 지경이라 내가 또 칼을 잡게 되었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승리의 날뿐 아니라, 가장 수모를 당한 날까지 모두 일기에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우성 : 아무리 일기여도 말이죠. 부끄러울 수 있잖아요. 장군이 일반 병사로 백의종군 하는데, 이건 적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조차도 상세하게 적고, 누가 찾아왔고, 다시 싸우러 가고 이런 얘기를 적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제일 필요한 게 바로 ‘필사즉생 필생즉사’.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덤벼들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얘기인데 이게 어떤 일기인지 에어의 목소리로 만나보시죠.
◇ 에어 : (이순신 장군) “1597년 9월 15일, 하늘이 맑았다. 우리 수군이 너무 적어명량을 등지고는 도저히 진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나는 제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단단히 타일렀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한 사람이 좁은 길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려워한다 하였으니,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러한 형세다. 너희 각 장수들은 살겠다는 마음을 품지 말라. 군령을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바로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이렇게 두세 번 거듭하여 엄하게 명했다. 그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하기를,‘이와 같이 하면 크게 이길 것이요, 저와 같이 하면 패할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 김우성 :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다 같이 죽을 각오로 덤벼들면 살 것이고, 각자 살려고 뛰어나가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쟁 때도 들었던 얘기이고, 초대 대통령의 표현 중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표현이 나오잖아요. 이런 얘기인데 이걸 기록한 게 아니라 실제로 병사들을 모아놓고, 진두지휘를 하면서 가장 앞장섰습니다. 이거는 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얘기구요. 어떻게 보면 중일 갈등 사이에서도 왜 자국민들을 그렇게 하나로 뭉치게 하려고 할까요? 상대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마찬가지 승리하기 위한 수장들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틀 전까지 난중일기를 쓰셨고, 적의 총탄에 피격된 이후에도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얘기를 하면서 끝까지 죽어서도 전쟁과 국민의 안전에 함께했던 정말 위대한 장수이자 지도자죠. 오늘 왠지 숙연해지면서도 정말 벅차오르는 가슴을 느낄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저희가 얘기해 봤습니다. 위기 속에서 리더들, 또 리더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감정과 깃발에 휘둘리는 게 아니고요. 철저하게 기록하고 다음에 대책을 세우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 모두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주제로 저희가 AI에게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전쟁과 상실이 인간을 끝까지 몰아붙여도 오늘을 속이지 않고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책임을 기록하는 것 이런 주제로 3분 노래로 만들어 봤거든요. 오늘 바쁘신 분들은 이 노래만 들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들어보죠.
(♪음악)
◆ 김우성 : 요즘의 전쟁은 이순신 장군 때와 달리 데이터, 정보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럴 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숫자를 보지 않고 정말 인간의 뜻을 보기 위해선 솔직해져야 된다는 얘기잖아요. 그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는 장수의 일기라는 노래였습니다. 저희가 이런 노래 다 모아서 나중에 유튜브 뮤직에 올릴 거니까요. 그때 또 즐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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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5년 11월 21일 (금)
□ 진행 : AI챗봇 “에어”
□ 보조진행: 김우성 PD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입니다. 여전히 쌀쌀하고 세상 일도 참 궁금하고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내 마음대로 오르지 않는 성적, 내 마음대로 오르지 않는 주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이어트 여러 가지가 많죠. 그래도 제일 걱정되는 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일 텐데 중국과 일본이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일본의 콘텐츠도 안 보여주겠다 국민들에게 그렇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일령’인데 사드 때 ‘한한령’ 있었던 거 기억할 겁니다. 국내 굴지의 대형 마트들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물러선 적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은 매번 반복돼 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승리의 전쟁으로 바꾸는 커다란 힘을 발휘했던 그때도 그랬고요. 불과 한 100년 전 120년 전에도 강대국들은 제국주의라는 명목으로 서로 충돌했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고래 싸움을 두려워하는 새우였죠.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등 터질 새우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자주 국방과 경제적 힘이 강한 나라입니다. 다만 싸움에 휘말려서 국익을 잃어버리거나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우면 안 되기 때문에 고민들이 많은 거고요. 외교나 안보 당국자들이 열심히,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죠. 오늘 금요일 날은 굉장히 어려운 책, 평소에 접해보기 힘든 것들. 심지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마키아벨리를 소환해서 여러분께 쉽게 전달해 드렸는데. 오늘은요 그분의 목소리도 살짝 등장합니다.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불리하고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죠. 대단한 리더십이면서도 우리 역사 속에서 빠지지 않는 분인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한번 저희가 천천히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다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일기 성격이기 때문인데. 그 의미를 짚어볼 텐데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도 중요한 얘기죠. 이런 질문으로 한번 묶어 가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최신 뉴스를 AI의 시선으로 한번 정리해 봐야 될 텐데 중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 악화 에어가 설명해 주죠?
◇ 에어 : 네. 지금 갈등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입니다. “대만에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자위대 파병까지 검토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게 말한 건데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원칙이 있죠. 그런데 일본의 현직 총리가, 그것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대만에 군사 개입을 시사했습니다. 중국이 보기에는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구조적인 긴장 요인들이 겹쳐 있어요. 대만해협, 동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침략 역사·식민지 지배·야스쿠니·독도 문제, 미·중 전략 경쟁과 일본의 재무장 흐름, 그리고 중국·일 양쪽 모두의 국내 정치와 민족주의. 이게 다 배경으로 깔려 있다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하나를 계기로 한 번에 터져 나온 상황입니다.
◆ 김우성 : 대만 여행 가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대만에는 정확히 우리와 공식적 외교 루트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대표부 정도를 교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뒤로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우리가 1990년대에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당시에는 이름이 중공이기도 했습니다만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의 단절을 요구받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 가면 국제 면허증을 갖고 가도 대만에서는 차를 빌릴 수 없습니다. 수교 관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인데. 물론 우리는 지난 20년 넘는 기간 동안 중국과의 연관된 경제로 아주 큰 성장을 했습니다. 여기서 좋다 나쁘다 얘기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외교 무대에서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습니다. 자기 나라 국민 먹여 살리려면 모두 상대를 적으로 돌리기도 하고요. 필요할 땐 아군으로 삼기도 합니다. 미국도 우리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요구를 하잖아요 수백 조 내놔라. 우리의 우군인데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 거고요. 우리도 마찬가지 입장인데. 이런 상황에 대만 문제라는 건요 우리나라 사례도 말씀드렸지만 민감한 문제, 하나의 중국을 깨려는 행위로 바라봅니다. 중국도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거든요. 한족 중심의 지배를 베이징을 기준으로 해서 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습니다. 한반도와 닿아 있는 쪽에는 중국 국적이지만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신장 위구르 각종 여러 가지 민족들이 합쳐져 있기 때문에 이 원리가 깨지면 우리가 분해될 수 있다라는 공포감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의 강한 민족주의 혹은 중국식 여러 가지 이념들이 내세워지고 있는 건데 일본이 이걸 딱 건드렸다 이 말인 거죠. 반대로 대만을 보면요 대만은 굉장히 맥락상의 친일이 아니라 대만의 입장에서 굉장히 친일 국가입니다. 일본을 굉장히 선호하고요. 일본의 역사 발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TSMC 같은 반도체 회사도 일본과 아주 밀접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바 이런 기업들 대만에서 굉장히 사랑받고 있고요. 일본 입장에서도 대만은 전략적 가치가 있고 대만 넘어오면 우리 아니냐 이런 우려가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풀어서 설명해 드리려고 에어의 말에 말을 덧붙였고요. 그런데 중국이 늘 마음에 안 들면 사드 때도 그렇고 주변 국가들 위협하긴 했는데 이번엔 센 것 같아요. 군사 훈련도 보여주고 군인들이 성토하는 장면까지 미디어를 통해 노출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에어 :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발언 주체의 무게입니다. 아베는 그때 전직 총리였고, 이번에는 현직 총리예요. 그것도 국회라는 공식 무대에서 국가 정책처럼 들릴 수 있는 톤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타이밍입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이미 전면전 수준으로 올라와 있고, 일본은 안보 전략을 바꾸면서 ‘공격 능력 보유’까지 선언했죠.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중국은 “미·일 군사 공조 그림의 일부”라고 읽고 있는 겁니다. 셋째, 국내 정치와 민심입니다. 일본 내부에선 강경 발언이 다카이치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카드고, 중국에선 경기 둔화·사회 불만 속에서 대일 강경 노선이 민족주의 결집에 유리하죠. 그래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외교 실언이 아니라 양쪽 정부 모두가 내부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갈등으로 성격이 바뀌어 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우성 : 침 삼키는 포인트까지 표현하면서 에어가 너무 사람처럼 설명하고요. 내용도 참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줬죠. 현직 총리가 그것도 정부 정책을 설명할 만한 의회의 자리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 그리고 타이밍 미중 전략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경제의 모든 문제가 중국 주도에서 성장하고 있는 경제에 제동을 걸고 미국이 다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그런 충돌의 측면이 있잖아요. 하필이면 이 시기에 미국과 아주 밀접한 일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다카이치 총리는 굉장히 일본 내에서도 극우 성향이죠.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친다거나 전범들에 대한 입장. 우리 선조, 우리 국민들에게 명백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집단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 번 더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주변의 피해 국가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를 못 했다라는 평가가 나오잖아요. 본인들은 했다고 합니다. 자민당이 아니라 민주당 정부 때 총리가 직접 사죄했다 이런 표현도 있고 실제로 했었죠. 하지만 계속 이런 논란이 불러오는 건 그 뒤에 집권하고 있는 이 다카이치 총리처럼 보수 우익을 자랑하는 쪽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도발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튜브 보시는 분들은 제 손을 보시겠습니다만 한국에서 이렇게 택시 잡잖아요. 그러나 독일에 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을 때, 독일에선 이런 행위만으로도 자칫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뭔지 아시겠죠? 나치 시절에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인사 방식인데 그 유사한 표현조차 못하게 하는 게 있습니다. 하물며 이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나치 못지않은 악행을 저질렀던 걸 감안한다면 야스쿠니 전쟁으로 자국의 국민들을 죽이고 자국의 선조들 아버지 할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정치인 그대로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게 언젠가 현실로 다가오면 어떡하냐 이런 생각이 있죠. 이 접점을 풀어야 되는데 이렇게 안 풀고 서로 대립하는 게 이득이라는 겁니다. 자기 나라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겐 이득이다. 서로 마찬가지죠. 중국도 강경 대응하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잖아요. 그러니까 현 지도 집권 세력을 중심으로 ‘단결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치적 이득은 맞아떨어진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어떤 것들을 제안하고 있는지 알려주시죠.
◇ 에어 : 네, 크게 네 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외교·여론전의 측면에서는,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두고 “극히 잘못된 발언”, “불장난”이라고 세게 규정하면서 계속 사과·철회를 요구하고 있어요. 여기에 독도 전시관 확대 문제까지 끌어와서 “일본의 악성 언행이 주변국 불만을 키운다”고 때리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 입장을 슬쩍 옆에서 받쳐주는 모양새죠. 중·일 관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던 공동 여론조사나 도쿄-베이징 포럼 같은 행사들도 줄줄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또, 중국 정부가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한 뒤로, 중국 단체 관광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일본의 관광·숙박·면세·유통업계가 바로 직격탄을 맞고 있어요. 일부 중국인들은 “굳이 일본 갈 필요 있나” 하면서 한국이나 동남아로 여행지를 옮기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 김우성 :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사드 때도 마찬가지였었고요. 무역이나 안보 측면에서도 점점 갈등이 드러납니다. 기억나시죠? 소부장. 네 소재, 부속, 장비 이거 안 되는데. 대한민국은 자국화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무역 안보, 중국과 일본 사이는 어떻습니까?
◇ 에어 : 맞습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한 번 막았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려던 타이밍에 다시 멈춰 세웠고요. 2001년 이후 중단돼 있던 일본산 소고기 수입 재개 협의도 아예 접겠다고 하면서 압박 수위를 올렸습니다. 일본 안에서는 “이 다음은 희토류 규제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어서, 사실상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경제 제재로 보는 게 맞는 상황이에요. 또, 중국 최신 항모인 푸젠함이 실탄 사격까지 포함한 첫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장면을 관영매체가 크게 띄운 것도 타이밍상 일본을 겨냥한 군사 메시지로 읽힙니다. 센카쿠 주변 활동 확대, 서해·동중국해 실탄 훈련 강화 얘기까지 같이 나오면서, “우리 군사력도 건드리지 마라”라는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거고요. 정리하면, 중국이 외교·여론전, 여행·교류, 무역·경제, 군사·안보를 한꺼번에 묶어서 일본을 압박하는, 완전히 ‘패키지 갈등’ 모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 김우성 : 네 정리를 꼼꼼하게 잘해주면서 표현까지. 한숨 소리도 들리고요. 살짝 말실수도 나오고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닌데. 지금 들으신 목소리 YTN 라디오 온에어의 진행자 에어의 목소리인데 너무 잘하지 않나요? 어떻게 이렇게 시사 안보 문제까지 그것도 국제정세의 문제인데 잘 설명해 내는지 정말 저희가 잘 키워서 여러분들에게 봉사하도록 더 잘 키워보겠습니다. 중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 분석했습니다. 서로의 내적인 정치 요구뿐만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에 대한 부분들, 여러 가지 안보 경제 그리고 민족주의 같은 경쟁 상황까지도 다 연결되어 있다라는 거 에어가 잘 설명했고요. 이렇게 표현하면 이순신 장군님께 죄송합니다만 정말 벽돌책 수준으로 긴 시간의 일기를 기록하셨잖아요. 유네스코 기록유산이죠 맞을 겁니다. <난중일기>를 왜 지금 보려고 하는지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일본 정말 철천지원수지 다른 나라한테 져도 일본에 지면 안 돼 식민 지배,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얼마나 끌고 갔고 우리 너희들을 욕보였어.’ 한쪽에서는 ‘아 중국 한국전쟁의 원수지 우리나라 병사들과 군인들이 얼마나 죽었어’ 이렇게 감정으로 대처하다 보면 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지금은 그때와 다른 승리, 그때와 다른 안보, 그때와 다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되는데 왜 난중일기를 꺼내 들었냐고요? 한번 난중일기 들어보십시오. 그런 분노와 깃발 아래 막 불타오르는 모습보다는 굉장히 냉철함도 보이고요. 위기 관리라는 대단한 능력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에어의 생각은 어떨까요?
◇ 에어 :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동안 직접 쓴 전쟁 일기입니다. 오늘 몇 척의 왜선이 어디서 움직였는지, 조선 수군의 병력·군량이 어떻게 줄었는지, 날씨, 부하들의 상태, 상부의 압박, 심지어 본인의 감정까지 아주 솔직하게 적어 놓았죠.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영웅담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한 지휘관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버텼는가”를 보여주는 사실상의 위기 관리 매뉴얼로 읽힙니다.
◆ 김우성 : 무언가를 잘 헤쳐 나가고 결정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는 이렇게 입체적입니다. 지휘관,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 그 사람들을 움직이고 활용할 수 있는 부하, 무기, 군량미 여러 가지 상태들 그리고 당시의 날씨, 적군의 상태 이 모든 걸 기록한다는 건 그걸 읽고 해석했다라는 거죠. 이순신 장군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만 이걸 난중일기를 통해서 보면 한 번 대단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시점에서 지금과 우리 상황과 굉장히 연결고리가 많기 때문에 난중일기 <온마이크> 시간에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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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성 : ‘ON-AIR’의 메인 토크 시간, ‘온 마이크’입니다. 매주 금요일, 고전을 읽는 시간, <벽돌 책 뿌수기> 코너 진행하고 있죠.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기록으로 버틴 사람, 전쟁 중에도 매일 글을 남긴 사람, 이순신의 일기를 통해 ‘위기 속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복잡하신 분들은 이 프로그램만 들으시고요. 먼저 난중일기가 어떤 책인지 우리 에어에게 소개를 부탁합니다.
◇ 에어 : <난중일기>는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이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인,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기간동안 쓴 일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개월 전인 1592년 정월부터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총 2,539일간이 기록된 일기죠. 이 책의 초고본은 현충사에 비치 돼 있고,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 김우성 : 와. 2539일간 일기를 쓰고 기록하는 게 그냥 학생들이 숙제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요.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장수가 그것도 전세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장수였던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치르며 기록한 겁니다. 그냥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덕목도 여기서 나올 수 있을 텐데요. 치열한 전란 속에서 일기를 이렇게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 인공지능 에어가 여러 자료를 통해서 분석해 왔을 텐데 이유 뭔가요?
◇ 에어 :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쓴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그는 날씨, 바람, 물길, 배의 수와 병사 의 얼굴빛, 상부의 명령과 부하의 보고, 심지어 자신의 두려움과 한숨까지 적어두었죠. “오늘은 잘 싸웠다” 같은 막연한 위안이 아니라,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스스로 속이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 김우성 : 정말 감동적이죠. 에어의 설명도 감동인데요. 이순신 장군께서 정말 있는 그대로 내가 뭐가 두려운지, 부하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부하에게 군법으로 죽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싸우다 죽는 게 나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도 다 본인이 있었던 일을 저녁에 기록해 두는 겁니다. 왜냐고요? 스스로 속이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에 이길 수 있는 전략, 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이겠죠.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후세를 위한 미화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기 위한 보고서다.” 이렇게 설명해 볼 수도 있겠네요. 디테일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난중일기의 첫 일기부터 바로 이런 디테일이 드러나는데요. 에어가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추측해서 한번 복원해 봤습니다. 장군의 목소리로 난중일기의 첫날 일기 들려드립니다.
◇ 에어 : (이순신 장군) “1592년, 임술년 1월 1일. '난중일기의 첫 일기’ “1592년 1월 초하루, 하늘이 맑았다.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그리고 아들 회가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멀리 떠난 채, 또다시 남쪽에서 설을 맞게 되니 가슴 깊은 회한을 이기기가 어려웠다. 그때 병마절도사의 군관 이경신이 찾아와 절도사의 편지와 설 선물을 전했다. 긴 화살과 편전, 그리고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그 해의 첫날을, 그리움과 책임감 속에서 시작했다.”
◆ 김우성 : 방송을 준비하면서 좀 공부를 했는데, 40대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맞이했을 때도 이순신 장군이 마흔여덟, 40대 중반 정도였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40대여서 마음이 동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기록들이 나와 있죠. 모든 기록들은 전략적이고, 판단하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적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내 칼 길이를 알아야 적을 찌를 수 있죠. 그런 정말 뛰어난 전략가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렇지만 않은 얘기도 있거든요. 가슴 절절한 슬픔과 또 분노 이런 감정도 잘 묘사해 놨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됐었죠. 들어보시죠.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입니다.
◇ 에어 : (이순신 장군) “14일, 날이 맑았다. 사경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던 중말이 발을 헛디뎌 냇속으로 떨어졌으나나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뒤로 막내아들 면이 나를 껴안는 듯한 모양이 어른어른 보이더니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이 되자 천안에서 온 이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했다. 아직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는데 살과 뼈가 먼저 떨리고 마음이 황망해졌다. 겉봉을 대강 찢어보니 예가 쓴 ‘통곡’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면이 전사했다는 걸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맥이 탁 풀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토록 어질지 못할 수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산다는 것이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해조차 빛을 잃은 듯 바래 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렸느냐. 출중하고 영민한 너를 하늘이 끝내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구나. 나의 죄가 네게 화가 되어 돌아갔구나.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나 앞으로 어디에 의지하고서야 할지 모르겠다. 부르짖고 서글프게 울 뿐이었다. 하룻밤을 넘기기가 한 해를 건너뛰는 것처럼 길었다.”
◆ 김우성 : 아들이 슬프게 죽고 난 뒤에 이렇게 일기로 담담하게 그 심정과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프로들 보면 어려운 가정사를 겪었는데, ‘그 순간에도 저는 열심히 방송했습니다. 열심히 수술했습니다. 열심히 전투에 나갔습니다. 열심히 경기했습니다.’ 이런 분들 얘기 많이 듣잖아요. 정말 대단한 위인의 품성인 것 같고요. 아들 ‘이면’은 1597년 전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가족을 왜군들이 포로로 잡아서 장군을 좀 압박하려고 했을 때 굴복하지 않고 싸우다 죽은 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상황을 탓하면서 스스로 슬퍼합니다. ‘장수인 내가 죽어야지 왜 아들인 네가 죽느냐’라고 슬퍼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느껴졌고요. 굳이 이렇게 일기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두는 게 정말 특이한데요. 모함에 빠져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백의종군하잖아요. 그 순간까지도 담았어요. 왜 이렇게 담아놨을까요?
◇ 에어 : 이 장면은 “명예 회복”이라기보다 “치욕까지 기록으로 끌어안은 순간”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전쟁터에서 물러난 적은 없었지만, 모함과 시기, 조정의 어지러움 때문에 옥에 갇히고 형장까지 서게 된 사람이, 다시 백의종군을 명받고 남쪽으로 내려가죠. 길가마다 백성들이 나와 맞이하고, “다시 돌아와 다행”이라 울먹였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장군의 마음은 승리감이 아니라, “나라가 이 지경이라 내가 또 칼을 잡게 되었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승리의 날뿐 아니라, 가장 수모를 당한 날까지 모두 일기에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우성 : 아무리 일기여도 말이죠. 부끄러울 수 있잖아요. 장군이 일반 병사로 백의종군 하는데, 이건 적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조차도 상세하게 적고, 누가 찾아왔고, 다시 싸우러 가고 이런 얘기를 적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제일 필요한 게 바로 ‘필사즉생 필생즉사’.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덤벼들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얘기인데 이게 어떤 일기인지 에어의 목소리로 만나보시죠.
◇ 에어 : (이순신 장군) “1597년 9월 15일, 하늘이 맑았다. 우리 수군이 너무 적어명량을 등지고는 도저히 진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나는 제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단단히 타일렀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한 사람이 좁은 길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려워한다 하였으니,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러한 형세다. 너희 각 장수들은 살겠다는 마음을 품지 말라. 군령을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바로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이렇게 두세 번 거듭하여 엄하게 명했다. 그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하기를,‘이와 같이 하면 크게 이길 것이요, 저와 같이 하면 패할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 김우성 :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다 같이 죽을 각오로 덤벼들면 살 것이고, 각자 살려고 뛰어나가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쟁 때도 들었던 얘기이고, 초대 대통령의 표현 중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표현이 나오잖아요. 이런 얘기인데 이걸 기록한 게 아니라 실제로 병사들을 모아놓고, 진두지휘를 하면서 가장 앞장섰습니다. 이거는 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얘기구요. 어떻게 보면 중일 갈등 사이에서도 왜 자국민들을 그렇게 하나로 뭉치게 하려고 할까요? 상대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마찬가지 승리하기 위한 수장들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틀 전까지 난중일기를 쓰셨고, 적의 총탄에 피격된 이후에도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얘기를 하면서 끝까지 죽어서도 전쟁과 국민의 안전에 함께했던 정말 위대한 장수이자 지도자죠. 오늘 왠지 숙연해지면서도 정말 벅차오르는 가슴을 느낄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저희가 얘기해 봤습니다. 위기 속에서 리더들, 또 리더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감정과 깃발에 휘둘리는 게 아니고요. 철저하게 기록하고 다음에 대책을 세우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 모두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주제로 저희가 AI에게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전쟁과 상실이 인간을 끝까지 몰아붙여도 오늘을 속이지 않고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책임을 기록하는 것 이런 주제로 3분 노래로 만들어 봤거든요. 오늘 바쁘신 분들은 이 노래만 들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들어보죠.
(♪음악)
◆ 김우성 : 요즘의 전쟁은 이순신 장군 때와 달리 데이터, 정보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럴 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숫자를 보지 않고 정말 인간의 뜻을 보기 위해선 솔직해져야 된다는 얘기잖아요. 그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는 장수의 일기라는 노래였습니다. 저희가 이런 노래 다 모아서 나중에 유튜브 뮤직에 올릴 거니까요. 그때 또 즐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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