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백범 김구 선생이 스님이었다고?" 불교계 꽁꽁 싸맨 보따리를 풀어 보니...

[잠시만요] "백범 김구 선생이 스님이었다고?" 불교계 꽁꽁 싸맨 보따리를 풀어 보니...

2025.09.01. 오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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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8월 24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불교신문 이성수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김영민: 지난 2009년 8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 칠성각에서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는데요. 칠성각 불단 내부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비밀 공간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그 안에는 먹과 안료로 그려진 태극기가 보관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죠. 진관사 태극기처럼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의 치열한 독립운동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습니다.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시간에는 해방 80년 돌아본 불교 꽁꽁 싸맨 보따리를 출간한 불교신문 이성수 기자 모셨습니다. 기자님 어서 오세요.

□이성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영민: 청취자분들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성수: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아주 더운데요. 저를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는 지금 불교신문에서 편집국장으로 일을 하고 있고요. 불교 기자로서 30년 가까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동국대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을 했는데 논문도 해외로 유학 간 일제 강점기 스님들 한 500여 명 되거든요. 그분들을 조명한 논문을 좀 썼고요. 또 동국대 국어국문 문예창작학과하고 부산 동명대 글로벌 문화 콘텐츠 학과에서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또 가르친 적도 있고요. 지금은 불교신문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일제강점기 불교 청년의 세계관과 근대화라는 주제로 또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영민: 교단에도 서셨고 연구자로도 계셨고 취재를 하면서 불교의 다양한 현장까지 돌아보신 아주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기자분 모셨습니다. 사실 한 일을 10년만 해도 전문가라고 하잖아요.

□이성수: 저는 부끄럽습니다.

■김영민: 산을 3번이나 바꾸시면서 불교계에 몸을 담으셨다니 정말 존경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앞서서 진관사 태극기 얘기도 오프닝을 했고 그리고 또 기자님께서 감사하게 진관사 태극기 모양의 배지를 제게 선물해 주시기도 하셨잖아요. 사실 너무 갖고 싶었는데 이 진관사 태극기가 굉장히 발견이 된 게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쳤던 건가요?

□이성수: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2009년 8월에 발견이 됐는데요. 이 태극기가 처음에 그쪽에 들어가게 된 거는 1919년 3.1 운동 전후로 그렇게 지금 보고 있거든요. 그 당시에 백초월 스님이라고 독립운동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셨던 스님이 있는데 이분이 만해 한용운 스님하고 같이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날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그 태극기하고 같이 숨겨 놨어요. 그래서 2009년에 발견됐으니까 80년, 90년 만에 발견이 된 그런 의미 있는 태극기고요.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하고 또 우원식 국회의장이 진관사 태극기를 형성한 배지를 맞습니다. 또 달고 나오면서 관심을 많이 끌었죠.

■김영민: 독립운동의 흔적 그때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태극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게 진관사에서 발견이 됐어요.

□이성수: 보물로 현재 돼 있고요. 지금 국보 승격을 추진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태극기가 조금 더 의미가 있는 거는 이 태극기의 원본은 일장기입니다.

■김영민: 맞아요.

□이성수: 그냥 일장기에다가 태극 문양을 그리고 4괘를 그렸어요.

■김영민: 그래서 자세히 보면 붉은색은 이렇게 정원의 모양인데 위에 더 칠해진 파란색은 약간 울퉁불퉁한 모양이더라고요.

□이성수: 그렇습니다. 그래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진관사가 위치한 곳이 서울시 은평구잖아요. 그래서 2009년 발견 이후에 몇 년 뒤에 3.1절을 맞아서 태극기를 은평구 관내에 다 구청에서 개항을 했어요. 그런데 그날 은평구청으로 항의 전화가 많이 들어왔답니다. 구청에서 설명을 잘 해드리니까 항의를 하셨던 분들이 오히려 그런 뜻이 있었는가라고 하면서요.

■김영민: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불교가 독립운동에 어떻게 함께했는지 그런 부분들을 조명한 꽁꽁 싸맨 보따리라는 책을 내셨어요. 제가 아주 간단하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자세히 어떤 책인지 자랑 해주세요.

□이성수: 꽁꽁 싸맨 보따리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태극기에 이렇게 속에 독립운동 자료들이 이렇게 숨겨져 있었던 거거든요. 보따리처럼 꽁꽁 싸매져 있었다라는 거를 상징을 하고 있고요. 하나는 그동안 숨은 역사에 대해서 꽁꽁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지 않았나. 그리고 제가 몸 담고 있는 것이 또 불교계다 보니까 불교와 관련된 독립운동 자료들을 쭉 한 20여 년째 쭉 추적을 좀 해왔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모은 내용을 이 책에 담았는데요. 또 올해가 특히 광복 80주년이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불교계의 항일 역사를 발굴하고 싶었고요. 하나는 저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일제강점기에 불교,천주교 지금으로 치면 시민단체 또 해외에 있는 교포들이 다 독립운동을 했잖아요. 각자의 영역에서 그런 부분에서 제가 인연이 있는 불교계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한 426페이지가 되더라고요.

■김영민: 그렇죠. 두껍습니다.

□이성수: 담앤북스라는 아주 또 좋은 출판사를 만나서 책을 내게 됐어요.

■김영민: 사실 책 내용에 대해서 여쭤보기 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두꺼운 책을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들을 정확하게 읊어야 하는 책은 집필하기가 정말 고되셨겠다 이런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들었는데 안 힘드셨어요?

□이성수: 제가 크게 글 쓰는 재주는 없긴 한데 사실은 이게 한 20년 가까이 불교 신문에 토막토막 연재했던 것들을 좀 모으고 또 그것이 세월이 지난 후에 보완할 부분들이 있어서 원고 정리하면서 보완을 했고요. 또 일부는 신문에 나오지 않았고 제가 새롭게 발굴한 내용들을 그 책에다가 포함을 시켰습니다.

■김영민: 너무 흥미롭습니다. 제가 또 이 책을 읽어보기 위해서 또 앞에 두고 있는데 오늘 밤에 재미있게 읽어보도록 할게요. 지금 이 책의 구성이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의 역사를 독립과 문화 교육과 수행 이렇게 4가지 분야로 나눠 놓으셨는데 이렇게 나누신 이유가 있어요?

□이성수: 뭐 아무래도 그 독립운동에 대한 부분을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했고요. 또 사실은 일제 강점기에 보면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당시 선조들이 교육이나 문화 이런 부분에 많은 활동들을 했거든요. 저는 아주 깜짝 놀란 경우들이 많아요. 제 책에도 있지만 야구나 축구를 그 당시에 또 했던 기록들.

■김영민: 절에서요?

□이성수: 예. 그래서 그런 자료들을 많이 좀 찾았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 왜 YMCA 야구단 있잖아요. 저는 아마 그거하고 비슷한 시기나 아니면 더 빠르지 않을까. 불교계가 이런 흥미로운 자료들을 좀 많이 찾아서 문화하고 교육 파트를 넣었고 마지막으로 스님들이 수행한 이야기들 그렇게 구성을 하게 됐습니다.

■김영민: 스님들에 대한 얘기가 일단 기본적으로 굉장히 많이 실려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책 내용 중에 백범 김구 선생과 불교계의 인연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이건 어떤거죠?

□이성수: 저도 사실 백범 선생님이 불교하고 인연이 깊은지 사실 잘 몰랐는데요. 그런데 이분이 젊은 시절에 황해도에서 일본 경찰 순사라고 옛날에 했었죠. 그것을 처단한 후에 도망을 다니거든요. 탈옥을 해서 그때 공주 마곡사 계룡산의 그 근처인데요. 물론 그쪽 산 이름은 태화산이지만 그곳에 피신을 해서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법명이 원종이라는 그것도 받으셨고요. 그러니까 한 1년 정도 스님 생활을 했고요. 이 내용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백범 선생님이 직접 쓰신 백범 일지에도 마곡사에 출가를 해서 당신이 머리를 깎았던 이야기들을 아주 상세히 기술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자료를 보고 제가 추적을 더 했고요. 하나 말씀드리면 서울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대문에 강북 삼성병원이라고 있잖아요. 거기에 경교장이 있거든요. 백범 선생이 환국해서 머물렀던 공간인데 그곳에서 돌아가셨을 때 마곡사 스님들이 와서 거기서 기도도 해줬던 그 기록도 찾았고요. 또 하나는 1945년 해방 후에 한국이 우리나라로 돌아오셨을 때 서울 대각사 그러니까 종로에 있습니다. 그 전에 방문했던 아주 빛바랜 사진도 그걸 찾아서 이번 책하고 또 신문에 소개를 했거든요. 그래서 백범 선생님이 우리 불교하고 인연이 상당히 깊다라는 걸 보면서 자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김영민: 그러니까요. 정말 몰랐던 이야기를 또 알게 되는 순간인데 그런데 백범 김구 선생뿐 아니라 윤봉길 의사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이성수: 저도 이게 최근에 그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한 건데요. 김광만이라는 전 KBS 개원 연구원이라는 분이 저희 신문사로 연락이 와서 저하고 통화를 하다가 윤봉길 의사가 불교하고 인연이 깊다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방송도 그렇지만 신문도 정확한 팩트가 있어야 그거를 전달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보니까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후에 그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종교를 묻는 질문에 본인이 불교다라고 그렇게 명확히 밝혔던 내용을 확인을 해서 저희가 보도를 했고요.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윤봉길 의사의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예산에는 수덕사라는 아주 큰 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나이 많으신 청취자분들은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도 아시긴 할 텐데 이 수덕사의 만공스님이라는 아주 큰 스님이 계셨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그 독립운동과 관련된 그런 활동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윤봉길 의사가 스님하고 수덕사에서 서로 교류했다는 그런 이야기들도 있어요. 윤봉길 의사가 우리 불교하고 관련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발굴도 했습니다.

■김영민: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갖고 있는 불교와 관련한 어떤 배경들 책을 보면 또 더 자세히 나오겠죠. 그 외에도 잘 알려졌든 잘 알려지지 않았든 다양한 스님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을 텐데 관련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이성수: 제가 관심을 독립운동 관련돼서 갖다 보니까 3.1운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3.1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으로 그 백용성 스님하고 만해 한용운 스님 두 분이 참여를 하거든요. 근데 백용성 스님은 연세가 많으셨던 스님이고 만해 스님은 그 당시에 젊으셨기 때문에 만해 스님을 중심으로 불교계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합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제가 책에 소개를 하고 있는데 하나만 예를 들면 3.1운동 전날 서울 지금 북촌, 그쪽에 유심사라는 스님이 운영했던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그 출판사로 지금의 동국대학교 학생들 그리고 중앙학교 인근에 있죠. 거기 있는 학생들을 한 20여 명 모아서 그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한 4천 장 정도로 제가 지금 기억을 하는데 그걸 학생들한테 나눠주고 그것을 다음 날 서울 시내에 뿌리게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그 학생들이 3.1운동 직후에는 전국 주요 사찰로 독립 선언서를 한 장씩 숨겨 가지고 다 내려갑니다. 그래서 부산의 범어사라든지 합천 해인사라든지 아까 말씀드린 공주 마곡사든지 쭉 전체 퍼져가지고 그 지역에 있는 스님과 마을 주민들하고 같이 독립운동을 만세 운동을 펼쳐요. 그래서 그때 구금되고 투옥된 분들도 많기는 한데 그런 이야기들도 정리를 했고요. 또 하나는 1918년에 제주도 법정사에서 한 400여 명의 주민과 스님들이 무장 항쟁을 일으키거든요. 그러니까 3.1 운동보다 앞서서 독립운동을 지금 전개한 겁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특별자치도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안인데 그런 부분들도 또 찾아서 원고를 정리하고 그랬습니다.

■김영민: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이 책이 두꺼운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근데 사실 불교에 관심이 저는 있거든요. 근데 불교라는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도 광복절을 맞아서 이 책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요?

□이성수: 책을 읽는 거는 독자들의 자유니까요. 근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거는 불교를 알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려웠던 암울한 시기에 우리의 선조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노력했던 어떤 한 부분에 대한 것들을 맞습니다. 소개한 것이기 때문에 꼭 굳이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보실 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합니다.

■김영민: 혹시 강조해 주고 싶은 재미있는 책의 대목이 있으세요?

□이성수: 여기에 보면 독립운동 이야기뿐만 아니라 문화와 관련된 파트에서는 야구하고 축구 이야기도 있고요. 그거는 1921년도에 한국 최초의 야구 시구가 있었다라는 걸 제가 찾았어요. 그래서 아마 지금은 다른 분들이 어떻게 또 정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걸 보도할 시점에는 그 당시 한국 최초의 야구 시구가 조계사에서 있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조계사 지금 현재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한국 최초 야구 시구가 있었는데 이거는 어디서 찾은 자료냐 하면 지금은 강남에 가 있지만 보성고등학교. 그게 되게 오래된 학교인데요. 강남에 가기 전에 대학로에 있었고 그 전에는 조계사 옆에 바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성고등학교에서 발간한 백년사 자료집에 야구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 시구하는 분이 제가 지금 기억나는 건 최린이라는 그 분이 그때 학교 교장이었기 때문에 시구를 했고 그게 바로 지금의 조계사 마당 거기에 해당하는 너무 신기한 거여서 그게 사진까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통도사나 범어사 이런 데에서 축구팀을 운영을 했고 맞아요. 제가 현재 취재 중인 거 하나는 경평 축구 대항전이 있었거든요. 일제 강점기 때. 그러니까 경성 서울하고 평양에 대표팀들이 축구 대회를 해서 아주 인기를 끌었는데 그때 경성 축구팀에 아주 주요 선수들이 사찰에서 있었던 분들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그런 것도 찾고 있습니다.

■김영민: 역사 속의 불교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쯤 관심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오늘은 해방 80년 돌아본 불교 꽁꽁 싸맨 보따리를 펴낸 불교 신문의 이성수 기자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자님에 대한 얘기 조금 해볼까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이런 거 아니고요. 조금 전문적인 얘기해보려고 해요. 지금 불교 신문에 계시잖아요. 어떤 신문이에요?

□이성수: 불교신문이 오래됐어요. 올해가 창간 65년이 됐어요.

■김영민: 엄청 오래됐군요.

□이성수: 올해로 65년이 됐는데 현재 매주 발행이 되고 있고요. 홈페이지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아마 청취자분들은 법정 스님은 웬만하면 다 아실 거예요. 법정 스님께서 처음 제가 알기로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저희 불교신문 그렇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종교적인 부분도 다루지만 우리의 전통 문화와 관련된 내용들도 잘 다루고 있고요. 또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한국 불교의 어떤 정통종단 해서 발행하기 때문에 그런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영민: 신문사에서 또 꽤 높은 직책을 맡고 계시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이성수: 편집국장을 하고 있는데 그건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올라간 것 같습니다.


■김영민: 그래도 여러 가지 일도 많으시고 책임감도 상당하실 것 같아요.

□이성수: 제가 과연 불교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지 늘 반성을 하고 있고요. 그거는 아마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하는데 늘 부끄럽죠.

■김영민: 그리고 궁금한 게 왜 불교신문에 계시게 되었을까 처음이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이성수: 그것도 인연인 것 같아요. 제가 사실은 할머니하고 어머니는 절에 다니신 지 오래 됐지만 저는 사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불교에 대해서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가서 우연한 기회에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고 또 군에 입대를 했는데요. 군대는 군종병이라는 게 있어요. 기독교 군정병, 가톨릭 군정병, 불교 군정병. 인연 때문에 또 불교 군종병으로 군 복무를 했고요. 하면서 불교와 가까이 지내게 됐고요. 또 학교를 졸업하면서 마침 또 그때 그쪽에서 사람을 뽑길래 응시를 했는데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뭐 한다고 또 합격이 돼서 그렇게 쭉 지금 현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민: 그래서 그렇게 시작된 불교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한 30여 년이 되신거네요.

□이성수: 세월이 너무 빠르네요.

■김영민: 불교계의 언론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오셨는데 그럼 정말 많은 아이템을 취재하셨을 것 같아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죠?

□이성수: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현장에 갔던 것 중에는 2005년인가 그때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데 그 당시 총무원장이 법장 스님이라는 큰스님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스님하고 같이 자이툰 부대 이라크 취재를 직접 갔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기억들이 아주 기억에 남고요. 제가 그때 또 찍었던 사진이 마침 중앙일간지에 톱 사진으로 나왔던 그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군 수송기를 쿠웨이트에서 타고 들어갔던 그런 것도 기억이 나고요. 또 하나는 이번 책에 실린 사진인데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해에서 우리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신 직후에 서울 대각사라는 곳을 방문하셨는데 그 사진을 찾아냈거든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런데 대각사에 백범 선생이 오신 것은 1919년 3.1운동 당시에 민족 대표 한 분이셨던 백용성 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저를 방문을 했어요. 근데 그 방문할 시기에는 백용성 스님은 벌써 돌아가시고 없는 상태였고 그런데 그 사진이 훼손이 많이 된 상태로 제 손에 우연히 그게 들어와 가지고 그것을 신문에 소개를 했는데요. 거기에 백범 선생, 이시영 선생, 조소앙 선생 등 임시정부 주요 요인들. 그리고 그 당시에 절에 있었던 회암 스님, 동암 스님 이런 스님들. 그래서 그 사진을 발굴 보도해서 저는 이번 생에 내가 일을 하나 하고 가는구나. 왜냐하면 그게 사라지고 없어질 거였는데 그러니까요. 그건 되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영민: 그 사진이 일부러 기자님의 손에 간 게 아닌가 싶어요.

□이성수: 그것도 인연이지 않나 싶기는 한데요. 그거는 지금 생각해도 막 가슴이 뛰어요.

■김영민: 앞으로도 계속 불교계에 몸 담으실 예정이신 거죠?

□이성수: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긴 한데요.

■김영민: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신가 해서요.

□이성수: 학위를 받고 이게 불교 가운데 근대 불교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거든요. 대한민국 역사가 특히 일제 강점기가 제대로 지금 조명이 안 되고 있어요. 친일과 반일 이런 식으로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제가 어떤 스님께 들었던 이야기 중에 그런 말씀 이게 기억이 지금 나는데요. 세상에 100%는 없다. 세상에 아주 잘한 사람만도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못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인생은 거기에 긍정과 부정 이런 게 섞여 있기 때문에 저는 역사적으로 어떤 걸 평가를 할 때 균형 있게 봐야 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불과 100년밖에 안 지난 시기이지만 근대 일제 강점기에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일, 또 제가 불교 쪽에 있으니까 근대 불교 관련된 자료들을 찾고 싶어요.

■김영민: 마지막 계획까지 잘 들어봤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꽁꽁 싸맨 보따리의 저자 불교신문 이성수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기자님 오늘 고맙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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