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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대문운동장 터 출토 유물, 보존처리 결과 '19세기 총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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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대문운동장 터 출토 유물, 보존처리 결과 '19세기 총검'

2021년 06월 23일 14시 05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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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동대문운동장 유적 발굴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칼이 보존처리 결과 19세기 말 근대식 소총에 사용된 총검으로 밝혀졌다.

23일, 서울역사박물관은 출토된 19세기 말 근대식 소총에 사용한 총검을 보존처리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에 위치한 동대문역사관에 공개한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 DDP 건설을 위해 이루어진 동대문운동장 발굴조사 과정에서 하도감 관련 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됐다. 유물은 보존처리 결과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 국내에 들여온 근대식 소총에 사용된 총검으로 밝혀졌다. 총검이란 대검이라고도 하며, 소총에 장착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검을 뜻한다.

보존처리는 지난해 완료됐으나 총검이 사용된 19세기 근대식 소총을 특정하기 위해 최근까지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총검은 보존처리 전까지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과 관련된 일본제 칼로만 추정됐다.

DDP 인근은 조선 시대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이 있었던 자리로 1881년에 설치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훈련한 장소이다. 또한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난 현장이며, 군란의 원인으로 지목된 별기군이 해체된 이후에는 군란을 진압한 청군이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기 전까지 주둔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밀 측정 결과에서 칼은 조선 후기인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개발된 소총용 총검인 것으로 확인됐다. 19세기 말 국내에 들어온 근대식 소총에 실제로 사용된 총검이 출토된 사례는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고승호’에서 인양된 청나라 군대가 사용한 총검 외에 처음이다.

이 총검은 전장 71.6cm, 도신 57.5cm, 자루 13.5cm의 크기로 손잡이는 동물성 가죽을 사용하여 제작됐다. 보존처리 전 총검은 손잡이 부위를 제외하고는 금속 부식 화합물로 인해 세부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며, 특히 검집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남아있는 검집 금속 장식의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못이라는 수분이 많고 공기가 차단된 환경에 매장되어 금속에 비해 재질적으로 취약한 동물성 가죽 손잡이가 잘 남아 있었다.

보존처리 결과 유물을 덮고 있었던 금속부식 생성물이 대부분 제거되어 총검이 지니고 있었던 형태적 특징이 복원됐으며 검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검집 일부분인 금속장식은 음각된 문양과 세부 형태 그리고 금 도금된 표면이 드러났다.

하도감터 출토 총검은 중국 또는 일본을 통해 19세기 말 국내로 유입되어 조선군이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서양식 총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역사박물관 보존과학과는 "아직 사용 주체를 명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향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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