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평화적 1인 시위, 미 대사관저 앞이라도 보장해야”

인권위 "평화적 1인 시위, 미 대사관저 앞이라도 보장해야”

2021.06.10. 오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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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미국 대사관저 앞 1인 시위를 시위자 동료가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불법집회로 보고 이를 제지한 경찰에 재발방지 교육을 권고했다.

지난 2019년 10월 25일, A 씨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고 A 씨와 동행한 동료들이 이를 촬영했다.

경찰은 A 씨 등이 대사관저 정문으로 향하자 주변에 동료가 있어 1인 시위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을 제지했다. 경찰은 대사관 정문 앞이 아닌 100m 인근 정동 분수대 인도 쪽에서 시위를 하라고 유도하며 A 씨 동행인들이 찍은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A 씨는 경찰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가 미 대사관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를 희망했으나 주변에 진정인 등 3명이 동행하고 있어 순수한 1인 시위로 보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 대사관저 월담사건이 있은 뒤 미 국무부 등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정부에 미 대사관에 대한 보호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찰의 단속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따라 범죄를 예방·제지하고,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2조의 2호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1인 시위는 본질적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서 규정하는 다수인이 참여하는 집회나 시위 개념에 들지 않지만, 릴레이 형식의 1인 시위 및 시위 모습을 사진 및 영상으로 촬영해 SNS에 활용하기 위해 협조자가 있는 경우 등을 1인 시위의 범위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해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1인 시위자 옆에 다수인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시위 현장에 머물렀더라도 그것이 시위자를 조력하는 것에 불과하고 다중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이는 것에는 미치지 않는다면 집시법상 집회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2인 이상이 동일 시간에 동일 장소에 있다는 이유로 집회로 간주하게 된다면 집시법 적용을 피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해온 시민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의 1인 시위가 사실상 집회에 해당한다면 정동분수대 근처에서의 1인 시위도 집시법을 적용해 무신고 집회로 단속이 가능했을 텐데 피진정인들이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의 단속이 오로지 미 대사관저 정문 앞의 1인 시위를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더불어 "설령 피해자들이 실제로는 집회의 개최 등 돌발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소수에 불과한 피해자들의 규모를 감안하면 1인 시위 자체를 처음부터 막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공동으로 시위에 가담하여 다중의 위력을 구체화하거나 공관 담장 쪽으로 적극적으로 이동해 물리적 위험 발생이 현저히 우려될 경우에 저지하는 것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따라 1인 시위를 제지했다는 피진정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1인 시위 피켓 내용은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줄 만한 부적절한 표현을 시위 내용으로 하지 않았으며 도로의 교통을 방해하거나 불편을 주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봤다.

인권위는 이어 "비엔나 협약은 공관 지역을 보호하고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개괄적이고 일반적인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관 지역에서의 1인 시위를 금지하는 등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이 시위 조력자의 카메라를 강제로 압수하려 하고 영상을 지우게 했다는 진정에 대해서는 지나가던 행인이 먼저 영상삭제를 요구해 경찰이 그 이후 영상삭제를 언급했고, 관련 영상자료에서 경찰이 카메라를 압수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기각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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