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올림픽대교 방향이 틀어진 이유 : 한성의 잔존

[人터view] 올림픽대교 방향이 틀어진 이유 : 한성의 잔존

2020.12.05. 오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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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교는 그 이름처럼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국내 최초의 콘크리트 사장교입니다.

그런데 애초 설계안과는 다르게 건설됐다고 하는데요.

거기엔 우리가 미처 관심 기울이지 못했던 한성백제의 역사적 가치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 공간, 시선을 전하는 인터뷰에서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영상리포트 내레이션]

[이형구 / 선문대 석좌교수 : 여기가 올림픽대교인데, (현재) 올림픽대교는 이렇게 돌아서 사선으로 내서 이쪽으로 지나가지만, 85년에 설계됐을 때는 이 풍납토성을 관통해서 60m 도로로 직선화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흔적이 없는 역사는 잊혀도 될까?

이번 이야기는 이 물음에서 시작됐다.

송파는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행정구다.

그래서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교육·의료·문화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1963년 서울에 편입돼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강남개발의 상징이 되었다.

대표 격인 올림픽공원엔 현대적 문화·스포츠시설이 가득하다.

그런 공원 한쪽에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정치영 / 한성백제박물관 발굴2팀장 : 이곳은 몽촌토성 발굴조사 현장입니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30여 년 전에 성 내부 전체가 발굴조사 된 바가 있었죠. 하지만 그 당시 발굴조사가 굉장히 짧은 시간에 진행되면서 왕성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서 왕성의 내부 구조를 알려주는 그런 많은 자료가 확보되고 있습니다.]

학계 정설에 따르면, 한성(위례성을 아우르는 이름)은 온조 집단이 남하해 지금의 송파 일대에 터를 잡은 백제의 첫 번째 수도다.

북성인 풍납토성과 남성인 몽촌토성이 짝을 이루는 양성체제로 운영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역사 678년 중 무려 493년이 한성기였고, 31명 국왕 중 21명이 이곳에서 재위했다.

영토확장과 대외교류를 통해,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구가했던 근초고왕이 이 시기 대표 군주다.

500년 가까이 이어졌고 백제 최고 왕이 속한 시대임에도, 한성의 외양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

475년, 고구려의 침공으로 왕이 참수되고 한성은 폐허가 되었다.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현재의 공주)으로 천도했다.

패권을 차지한 국가가 제일 먼저 하는 건, 점령지의 정체성을 끊어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철저히 파괴한다.

[정치영 / 한성백제박물관 발굴2팀장 : 한강 유역은 백제 건국의 터전이었습니다. 이후 고구려가 이곳을 점령하고, 잇따라 신라가 차지하게 되죠.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국가가 한반도의 패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 고구려나 신라가 더욱더 철저하게 (백제를) 파괴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됩니다.]

이러한 파괴행위에도 잔존한 흔적은 있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심 속에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이형구 / 선문대 석좌교수 :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은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찍은 유일한 석촌동 고분군 사진인데, 이거는 지금 말하는 석촌동 3호분이에요. '근초고왕릉'이라고도 하죠. 이렇게 큰 고분이 이 남쪽에 1981년에 도시개발을 하면서 도로가 났는데, 이렇게 3분의 1이 잘려 나갑니다. 이 지역에서 이렇게 옹관이 나오고 인골이 나오고. 정말로 이거는 인륜을 저버리는 일들이다 이거는.]

그는 이러한 세태에 반기를 들었다.

관련 세미나를 열고 당시 청와대에 건의서를 보내는 등, 집념 어린 그의 행동 덕에 고분을 둘로 가르던 도로는 지하로 옮겨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설왕설래하던 80년대에도 그는 풍납토성이 왕성임을 확신했다.

[이형구 / 선문대 석좌교수 : (올림픽대교) 이거는 도저히 안 된다. 나는 (풍납토성을) 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85년에 이 계획도가 알려지면서 저는 각계에 풍납토성을 파괴하는 이런 도로를 내선 안 된다. 낸다면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 다른 선으로. 그런 주장을 계속해왔죠.]

끈질긴 그의 노력으로 당시 문화재위원회와 서울시는 토성을 우회하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올림픽대교 방향이 틀어진 건 이 때문이다.

1997년엔 토성 내에 있는 공사장에서, 작업 중 나온 문화재를 몰래 훼손하고 있었단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수십 년 방치돼 온 풍납토성에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들어갔는데, 이곳이 왕성임을 보여주는 유구와 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된 지 37년 만에 성 내부가 추가됐다.

그런데 토성 안엔 이미 4만 명 넘는 주민이 살고 있었고, 개발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이형구 / 선문대 석좌교수 : 학계에서도 (역사를) 잊어버리고,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는 항시 되새겨야 해요. 어제의 일을 우리가 자꾸 기억하고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역사는 피안(현실 밖의 세계)에 있고 개발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개발하면서도 역사를 지키면서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영 / 한성백제박물관 발굴2팀장 :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식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결국은 그 존재를 다시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눈에 띄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면 우린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버트너/ 이상엽[sylee24@ytn.co.kr], 윤용준[yoonyj@ytn.co.kr], 홍성노[seong0426@ytn.co.kr], 류석규[skryu@ytn.co.kr], 홍성욱, 이원희

도움/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 한성백제박물관, 송파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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