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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입니다.
열사가 잠들어 있는 남양주 모란공원에선 추도식이 거행되는 중인데요.
전태일 열사의 유족과 노동단체는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노동 현실 개선을 거듭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손효정 기자!
조금 전부터 추도식이 시작 됐을텐데 지금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
네, 조금 전 11시부터 추도식이 시작됐습니다.
제 뒤로 보이다시피 묘역 앞에는 노동시민단체와 유족들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는데요.
일터에서 스러져간 노동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노동·시민단체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오늘로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한 줌의 재가 된 지 50년이 됐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유족들도 오늘 추도식에 참석했는데요.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씨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추도식인데 오늘 참석하시 소감이 어떻게 되실까요?
[전순옥]
오늘 50주년 추도식 참석하는 생각은 여러 많은 것이 오버랩되는 그런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가 죽어가고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갔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과로사로 죽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비대면 시대에 지금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굉장히 심각한 그런 상태라서요. 지금도 보시다시피 많은 노동자들이 그러한 울부짖음의 몸짓을 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50주년을 맞이해서 여러 가지가 상당히 마음이 착잡합니다.
[기자]
선생님이 기억하시기에 전태일 열사는 어떤 분이셨나요?
[전순옥]
제 큰오빠 전태일은 사랑이 많은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도 본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타인을 자기처럼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인간 존중, 인간생명의 존중과 존엄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그런 오빠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그러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순옥]
전태일 오빠가 50년 전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그 이후로 공장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이름 없이 죽어가고 하루에 16시간 노동 착취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깨어나는 그러한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고 그리고 우리나라 군부독재 하에서 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종교인들, 많은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군부독재 타도 그리고 반군부독재 투쟁에 나섰고 또 그러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나마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전태일 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17살의 나이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는데요.
어린 여공들이 창문도 없는 좁은 공장에서 하루에 14시간 넘게 일하고도 고작 일당 70원을 받고 일하고 있었던 겁니다.
열사가 22살, 꽃다운 나이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투쟁을 결심한 이유입니다.
열사의 죽음은 197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과 1979년 YH무역 사건, 그리고 80년대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지며 노동운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추도식에선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앞장선 인물에게 제28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여하는데요.
단체 부문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개인 부문에선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 씨가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앵커]
열사의 죽음 이후 50년이 지났는데, 지금의 노동 현실은 어떤가요?
[기자]
안타깝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열사의 죽음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있는데요.
구의역 김 군과 고 김용균 씨,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수치로도 확인되는데, 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가 대표적입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여론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같이 근로기준법 일부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곳도 있는데요.
민주노총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360여만 명, 전체 노동자 5명 가운데 1명 수준에 달합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전태일재단과 각종 노동단체는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과 함께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의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코로나19로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들의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YTN 손효정[sonhj0715@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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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입니다.
열사가 잠들어 있는 남양주 모란공원에선 추도식이 거행되는 중인데요.
전태일 열사의 유족과 노동단체는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노동 현실 개선을 거듭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손효정 기자!
조금 전부터 추도식이 시작 됐을텐데 지금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
네, 조금 전 11시부터 추도식이 시작됐습니다.
제 뒤로 보이다시피 묘역 앞에는 노동시민단체와 유족들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는데요.
일터에서 스러져간 노동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노동·시민단체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오늘로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한 줌의 재가 된 지 50년이 됐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유족들도 오늘 추도식에 참석했는데요.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씨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추도식인데 오늘 참석하시 소감이 어떻게 되실까요?
[전순옥]
오늘 50주년 추도식 참석하는 생각은 여러 많은 것이 오버랩되는 그런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가 죽어가고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갔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과로사로 죽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비대면 시대에 지금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굉장히 심각한 그런 상태라서요. 지금도 보시다시피 많은 노동자들이 그러한 울부짖음의 몸짓을 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50주년을 맞이해서 여러 가지가 상당히 마음이 착잡합니다.
[기자]
선생님이 기억하시기에 전태일 열사는 어떤 분이셨나요?
[전순옥]
제 큰오빠 전태일은 사랑이 많은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도 본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타인을 자기처럼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인간 존중, 인간생명의 존중과 존엄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그런 오빠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그러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순옥]
전태일 오빠가 50년 전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그 이후로 공장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이름 없이 죽어가고 하루에 16시간 노동 착취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깨어나는 그러한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고 그리고 우리나라 군부독재 하에서 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종교인들, 많은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군부독재 타도 그리고 반군부독재 투쟁에 나섰고 또 그러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나마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전태일 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17살의 나이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는데요.
어린 여공들이 창문도 없는 좁은 공장에서 하루에 14시간 넘게 일하고도 고작 일당 70원을 받고 일하고 있었던 겁니다.
열사가 22살, 꽃다운 나이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투쟁을 결심한 이유입니다.
열사의 죽음은 197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과 1979년 YH무역 사건, 그리고 80년대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지며 노동운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추도식에선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앞장선 인물에게 제28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여하는데요.
단체 부문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개인 부문에선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 씨가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앵커]
열사의 죽음 이후 50년이 지났는데, 지금의 노동 현실은 어떤가요?
[기자]
안타깝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열사의 죽음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있는데요.
구의역 김 군과 고 김용균 씨,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수치로도 확인되는데, 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가 대표적입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여론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같이 근로기준법 일부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곳도 있는데요.
민주노총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360여만 명, 전체 노동자 5명 가운데 1명 수준에 달합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전태일재단과 각종 노동단체는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과 함께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의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코로나19로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들의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YTN 손효정[sonhj0715@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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