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혈액 부족'은 재난...헌혈의 집에서 반나절

[반나절] '혈액 부족'은 재난...헌혈의 집에서 반나절

2020.05.30.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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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혈액 부족'은 재난...헌혈의 집에서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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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PLUS가 기획한 '반나절' 시리즈는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획 기사입니다. 이번 반나절 시리즈는 혈액보유량 부족으로 '재난 문자'를 발송한 이후 헌혈의 집을 방문해 봤습니다.

과학 발전으로 인공 심장 등 인공 장기 개발과 장기 이식까지 가능해졌지만, 지금까지 '인공 혈액'은 개발되지 않았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누군가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혈액 부족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헌혈의 집'도 직격탄을 맞았다. 적정혈액보유량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이지만 코로나19로 단체 헌혈이 어려워지고 개인 헌혈도 급감했다. 혈액 보유량은 한때 최저 2.6일분을 기록하며 '주의'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나절] '혈액 부족'은 재난...헌혈의 집에서 반나절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코로나19로 헌혈자가 감소해 혈액보유량이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는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해 국민 헌혈 독려에 나섰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지금, 헌혈자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노원 노해로센터 헌혈의 집에서 반나절 동안 머무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오후 1시쯤, 헌혈의 집은 한산했다. 헌혈을 위해 센터를 찾은 인원보다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 수가 더 많았다. 번호표를 뽑아보니 대기 번호는 1번. 기자는 그날의 14번째 헌혈 희망자였다.

이날 오후 4시 반까지 헌혈을 한 사람의 수는 약 20명이었다. 코로나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지역감염으로 불안감을 큰 중에도 헌혈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헌혈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문희성(20)씨는 "이전부터 안내 문자가 올 때마다 꾸준히 헌혈을 해 왔다"며 "특별히 혈액 부족 문자를 받고 오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2달이 지나면 다시 헌혈이 가능하다는 안내 문자가 발송됐는데, 문자를 받으면 '때가 됐구나' 하고 센터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이지연(18) 씨는 "원래 헌혈 경험이 없었는데 코로나19로 혈액이 부족하다고 해서 방문했다.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익명을 요구한 10대 학생은 "헌혈자가 줄었다는 뉴스를 보고 방문했다. 좋은 일 하고 선물도 받고, 봉사활동 시간도 챙겨 주니까 좋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를 진행한 12명 가운데 절반인 6명은 "원래부터 꾸준히 헌혈해 왔다"고 말했으며 나머지 절반은 "재난 문자나 뉴스를 보고 혈액이 부족하다고 해서 방문했다"고 답했다. 지자체와 언론의 헌혈 독려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날 대화를 나눈 12명 가운데 10명은 10대 학생이었다. 통계를 보면, 한국은 10대와 20대의 헌혈률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특정 나이대에 편중이 심한 편이다. 국내 헌혈자는 20대, 10대, 30대 순으로 많은데 20대 헌혈자 상당수는 군인의 단체 헌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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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2020년 1~5월 개인 헌혈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만 3천여 건, 단체 헌혈은 6만 8천여 건이나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헌혈자 수는 매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였다.

노해로센터 간호사는 "재난문자가 발송된 주 주말에는 평소 3배가 넘는 150명 이상이 방문했다"며 "힘들었지만 문자를 받고 이렇게 다들 적극적으로 달려와 주셔서 놀랐다. 하지만 지금은 방문자가 다시 줄어든 상태"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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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은 껐지만, 꾸준한 참여가 중요하다. 재난문자 발송 덕에 헌혈자가 일시적으로 늘어 혈액보유량이 5일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단체헌혈이 불가능한 탓에 6월부터 또다시 혈액 보유량 위기가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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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헌혈의 집 방문을 꺼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헌혈지원팀 정성윤 담당은 "간호 선생님 뿐 아니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시설은 코로나19 이후 수시로 방역을 하게 돼 있다"며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헌혈을 꺼릴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혹 헌혈하면 바늘로 병이 옮을 수 있다고 생각해 헌혈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바늘은 재사용하지 않는다. 또 장비를 통해 헌혈자의 피를 예민하게 검사하기 때문에 수혈로 인한 감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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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헌혈을 했다. 해외여행이나 약 복용 등 결격 사유가 없는지 확인한 뒤 혈압을 재고, 채혈로 헤모글로빈 수치를 검사한다. 여성의 경우 빈혈이나 저체중 때문에 헌혈 부적합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다행히 해당 사항이 없어 별문제 없이 헌혈이 가능했다.

헌혈이 끝나고 나면 선물은 고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선물을 받는 대신 그만큼의 액수를 기부하면 '헌혈 기부권'을 받고 기부금 처리도 할 수 있다.

센터 한쪽 벽면에는 100회 이상 헌혈을 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시민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헌혈을 한 번 하면 2달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 오른 분들은 그야말로 평생 동안 헌혈을 해온 분들이다. 헌혈을 꾸준히 하는 분들 가운데 일부는 본인, 혹은 가족이 크게 다쳐 수술이 필요했을 때 헌혈자들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10대, 20대가 지나면 헌혈이 끝나고 받는 영화 상품권이나 외식 상품권이 크게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헌혈의 집을 방문해 보면 어떨까.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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