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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19년 2월 11일 (화요일)
■ 대담 :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형의뉴스정면승부] 영화 ‘괴물’ 제작자 “축하한다” 문자에 봉준호 감독 보내온 답신
- 봉준호 축하문자 보냈더니 답신 “조용한 일상 되찾기 위해 애써보겠다”
- <괴물> 제안? “봉 감독이 하겠다고 하면 해내는 사람” 신뢰감 확신 있었다
- 같이 일하면서 “정말 대단하다” 실감 팍팍 느꼈던 기억 잊혀지지 않아
- 아카데미 생중계 봄녀서 수상 한 개 한 개 늘어나 흥분
- 이번 수상 결과로 세상 바뀌었다, 한국영화 온전한 평가 받게 돼
- 영화 <괴물> 반미 및 정부 무능 부각시켜 블랙리스트 올라
-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완전등급제 실현, 봉준호 감독 만들어
- 투자 배급 과점 회사들의 한국영화 생산 유통 장악, 신인 감독들 도전 기회 사라져
- 한국영화계 많은 분야 변화 가져올 것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기록하며 곳곳에서 많은 축하와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이제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질 거란 기대도 커지고 있죠. 또 동시에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기생충’ 신드롬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봉준호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죠. ‘포스트 봉준호’를 위해 우리 영화계에 남겨진 과제, 봉준호 감독과 함께 <괴물>을 제작했던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십니까?
◆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이하 최용배)>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네, 안녕하세요. 어제 시상식 보셨을 텐데 예측을 하셨어요? 어떻습니까?
◆ 최용배> 저도 4관왕이 되리라는 정도까지는 솔직히 예측을 못했고요. 저도 생중계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한 개, 한 개 늘어나는데 정말 흥분했습니다.
◇ 이동형> 특히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받을 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 최용배> 저는 이번의 결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막 있는 영화를 기피하는 북미 할리우드 거대 시장의 벽을 4관왕을 통해서 한 번에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외국어영화의 진출이 이전보다 이제 북미시장에 진출하는 게 쉬워질 거고, 수월해질 거고, 그렇다고 하면 영화라는 상품의 수출 이상의, 우리 영화가 소개되고, 우리 문화가 전달되고, 그런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 많이 달라진 그런 것들이 큰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한국영화가 늦었지만 온전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동형> 봉준호 감독도 ‘1인치의 장벽’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기생충> 한 편으로 그동안 콧대 세던, 자부심 부리던 할리우드가 외국 영화에 대해서 빗장을 많이 풀 수 있을까요?
◆ 최용배> 아마 제가 보기에 지금 <기생충>이 약 3300만 불 정도의 성적을 올리면서 상용을 하고 있는데요. 그게 대폭 늘어날 거라고 여겨지고요. 그것은 바로 자막 있는 영화라고 하는 것을 거의 안 보는 그런 분위기의 영화 관객들이 뭔가 새롭게 적응하는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주는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 이동형> 그런데 <기생충> 전에도 우리 영화, 한국영화를 사랑한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연히 이 <기생충>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에 더 많이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겠죠?
◆ 최용배> 네, 그렇겠죠.
◇ 이동형> 봉준호 감독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잖습니까? 교수님도 같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최용배> 네, 박근혜 정부 때도 그렇고, 그 이전에 이명박 정권 초기에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고 하는 청와대와 문체부가 합작으로 만들었다고 보이는 그런 문건들이 발견됐었죠. 그때 당시 좌파 문화인, 좌파 콘텐츠를 줄이고, 우파 콘텐츠를 양산해야 한다,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었는데요. 거기에 많은 문화인들의 명단도 있었지만, 문제의 영화로 세 편이 거론됐습니다. <효자동 이발사>라고 하는 영화는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공동 경비구역 JSA>는 북한을 동지로 묘사했다. 그리고 영화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이 영화들이 국민의식을 좌경화로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했고, CJ, KT 등 대기업 영화자본과 협력해서 투자 방향을 긍정적 우파로 선회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죠.
◇ 이동형> 21세기에 좌파 영화다, 이런 말이 버젓이 자료에 올라가 있다는 게 한심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런 것 때문에 CJ 이미경 부회장도 고초를 겪었고 한데요.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이후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트라우마다, 이런 말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요즘에 다시 회자되는 게 DJ 정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화에 대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 회자되고 있어요. 정부가 이렇게 지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좌파 영화라고 낙인 찍으면서, 이런 행동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용배> 사실은 거론된 김대중 대통령님의 국민의 정부시기에 한국영화가 커다란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그 시점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를 했던, 20년 전에 데뷔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검열제도가 철폐되고,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데, 검열제도가 있었던 그 이전까지는 사실은 블랙리스트가 은밀하게 존재했던 게 아니라 아예 공개적으로 존재했었죠. 그러니까 영화들이 만들어지면 이 영화는 북한을 미화하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권력을 비방하고 있다, 이러면서 영화를 삭제한다든지, 이런 일이 벌어졌잖아요? 그런 게 바야흐로 98년도에 국민의 정부 출범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완전등급제로 실현되고, 그리고 그때 국민의 정부가 영화진흥기구를 출범시키고, 영화를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증가하고요. 그래서 바로 재능 있는 영화인들과 중소 제작사와 배급사가 러시를 이루면서 새로운 한국영화의 붐이 일어나면서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하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도 그 당시 성공했던 영화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당시에 <쉬리>라든지, <접속>이라든지, <8월의 크리스마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여고괴담>, <주유소 습격사건>, 이런 영화들이 그때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자체는 사실은 일반적인 투자사와 제작사가 환영하기 어려운, 그런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결과도 그랬고요.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계의 분위기가 제작자의 강한 의지 같은 것이 존중되고 그래서 중소 투자 배급사들도 그런 영화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저는 그게 바로 아까도 소개된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밝혔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조적인 것이다,” 이런 취지가 바로 살았던 시기라고 보고요. 그래서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를 하고, 그 이후부터 자기의 가슴에 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그러면 2000년대 초반, 이때 한국영화가 가장 다양한 장르, 다양한 소재,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작가들, 감독들이 많이 나왔던 시대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 최용배> 네, 당시에 흥행 감독님들도 많았고, 봉준호 감독 이외에도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 홍상수 감독, 임상수 감독, 김지운 감독,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표작들이 다 이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지죠. 유럽의 3대 영화제에 가서 초청도 여러 차례 받고, 많은 영화들이 받고, 수상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 시기였던 것이죠.
◇ 이동형>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이 뒤를 잇는 신예 감독들이 나오고 있느냐, 이런 지적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용배> 안타깝게도 최근 10여 년 한국영화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심각한 변화가 생긴 게 산업구조의 변화가 생기는 게 극장 부분이 저희가 알다시피 CGV, 롯데, 메가박스, 3개 체인이 극장 매출의 98%를 차지하고요. 그다음에 영화 배급 부분은 극장 체인 3대 기업을 포함해서 5개 기업이 90%를 차지하고, 그래서 이런 상영 부분과 투자·배급 부분, 두 개를 과점하는 회사들이 한국영화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게 되죠. 이러다 보니 이들이 선호하는 종류의 영화들은 블록버스터입니다. 관객 흡입력이 절대적이니까. 그러다 보니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이 나오는 대작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런 대작 영화들에는 사실 신인 감독들이 선택될 확률이 낮고, 그리고 신인 감독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 이런 것들의 기회가 점점 사라져갔던 것이죠.
◇ 이동형> 그러면 일각에서 지적되는 CJ, 롯데 등 재벌자본에 한국영화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의 뒤를 잇는 신예들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 최용배>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소 투자·배급사, 또 중소 제작사, 그리고 영화인들이 바로 개인적인 창의성 같은 것들을 존중해서 위험하지만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산업구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런 구조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 것들은 제가 보기에 어쨌든 최근 10여 년 동안에 MB, 박근혜 정권 사이에 영화 지원 정책이라는 것들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새 정부에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새 정부도 아직은 영화 부분의 재생과 관련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온전하게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개선돼서, 지금 봉준호 감독의 소망 같은 것들을 따라서, 그런 창의성 같은 것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산업환경을 빨리 신속하게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동형> 네, 교수님 봉준호 감독이랑 수상 직후에 통화나 해보셨습니까?
◆ 최용배> 네, 제가 생중계를 보면서 사실은 각본상 받은 것도 참 되게 감동적이었는데, 제가 국제영화상은 분명히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상은 다 듣자마자 축하 문자를 막 썼어요. 그런데 시상식을 보면서 쓰다 보니까 조금 어리바리 늦어지다 보니 감독상 소식을 듣게 되고, 문자를 바꾸게 되었죠. 그래서 감독상 수상 상황 너무 감동적이었죠. 그 상황을 다 보고 문자를 써서 보냈는데, 바로 이어서 작품상까지 받아서 또 한 문자를 보내고, 이러다 보니까 아주 문자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사실상. 문자에 대해서 오늘 새벽에 답신이 왔는데, 이제 조용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애써보겠습니다, 이런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축제는 끝이 났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작업했던 많은 영화인들이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 극찬을 하던데, 사실은 감독들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들 연기자도 그렇고 칭찬을 하던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 최용배> 저도 저랑 영화 한 편을 하기로 했을 때 저한테 제시했던 게 <괴물>을 만들자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한국에서 괴수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게 국내 CG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거고, 또 국내에서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을 가진 스태프들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저는 어쨌든 봉준호 감독하고 준비하던 기간이 있어서, 또 젊었을 때의 모습도 보면서 봉 감독이 하겠다고 하면 해내는 사람이야, 라고 하는 신뢰감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저는 확신을 가졌는데요. <괴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봉 감독에 대해서 그런 잘 몰랐던 사람들, 그런 영화인들은 사실은 미친 짓이다, 저한테 와서도 그런 의심들을 많이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알게 됐죠. 곧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과정을 겪다 보니까 봉 감독은 몇 년 전부터 이미 CG 기술과 관련된 것들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공부를 했었고, 수년간 준비를 했고, 그래서 국내외 전문가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제가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 어떻게 감독을 하면서도 CG에 대해서 저렇게 많이 준비를 하고, 잘 알고 있을까, 라고 하는 실감을 제가 아주 팍팍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 이동형> <괴물> 이야기해주셨으니까. 과거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서 <괴물> 만들 때 예산 문제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 이런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 최용배> 요즘은 CG 기술들이 한국영화의 규모나 봤을 때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닌데, 당시에는 CG가 제작비의 30% 정도를 차지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봉 감독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이 변화가 생기고 그러면 예산이 늘어나는데, 그 늘어나는 게 전체 예산에서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다음에 CG를 하는 회사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 회사라고 하는 데들이 하는 제작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미국에서 정해진 스케줄대로 하는 거고, 그런 것을 정말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만 어긋나면 오버 차지를 매기고 하는, 그런 것 때문에 봉 감독이 정말 원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데에 예산이라고 하는 범위가 아주 압박을 많이 가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것 때문에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저보다 훨씬 더 봉 감독이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 이동형> 그래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영광이 있을 수도 있겠죠. 이번에 아카데미 시상하고 나서 전도연 씨가 축하인사를 하면서 이제 나도 아카데미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우리 영화가 당면한 과제, 또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도약하기 위한 것들은 어떤 게 필요하겠습니까?
◆ 최용배> 저는 아마 한국영화인들이 자신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래서 아마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되고요. 아까 제가 봉 감독 4관왕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많은 분야에서, 한국영화계의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줄 것 같고요. 그리고 아까 제가 언급을 조금 드렸지만, 이런 것을 계기로 해서 이제 다시 한 번 한국영화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게, 어떤 부분들에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지 정부가, 또 국회의원들이 세심하게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 최용배> 네.
◇ 이동형> 지금까지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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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형의뉴스정면승부] 영화 ‘괴물’ 제작자 “축하한다” 문자에 봉준호 감독 보내온 답신
- 봉준호 축하문자 보냈더니 답신 “조용한 일상 되찾기 위해 애써보겠다”
- <괴물> 제안? “봉 감독이 하겠다고 하면 해내는 사람” 신뢰감 확신 있었다
- 같이 일하면서 “정말 대단하다” 실감 팍팍 느꼈던 기억 잊혀지지 않아
- 아카데미 생중계 봄녀서 수상 한 개 한 개 늘어나 흥분
- 이번 수상 결과로 세상 바뀌었다, 한국영화 온전한 평가 받게 돼
- 영화 <괴물> 반미 및 정부 무능 부각시켜 블랙리스트 올라
-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완전등급제 실현, 봉준호 감독 만들어
- 투자 배급 과점 회사들의 한국영화 생산 유통 장악, 신인 감독들 도전 기회 사라져
- 한국영화계 많은 분야 변화 가져올 것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기록하며 곳곳에서 많은 축하와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이제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질 거란 기대도 커지고 있죠. 또 동시에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기생충’ 신드롬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봉준호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죠. ‘포스트 봉준호’를 위해 우리 영화계에 남겨진 과제, 봉준호 감독과 함께 <괴물>을 제작했던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십니까?
◆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이하 최용배)>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네, 안녕하세요. 어제 시상식 보셨을 텐데 예측을 하셨어요? 어떻습니까?
◆ 최용배> 저도 4관왕이 되리라는 정도까지는 솔직히 예측을 못했고요. 저도 생중계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한 개, 한 개 늘어나는데 정말 흥분했습니다.
◇ 이동형> 특히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받을 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 최용배> 저는 이번의 결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막 있는 영화를 기피하는 북미 할리우드 거대 시장의 벽을 4관왕을 통해서 한 번에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외국어영화의 진출이 이전보다 이제 북미시장에 진출하는 게 쉬워질 거고, 수월해질 거고, 그렇다고 하면 영화라는 상품의 수출 이상의, 우리 영화가 소개되고, 우리 문화가 전달되고, 그런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 많이 달라진 그런 것들이 큰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한국영화가 늦었지만 온전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동형> 봉준호 감독도 ‘1인치의 장벽’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기생충> 한 편으로 그동안 콧대 세던, 자부심 부리던 할리우드가 외국 영화에 대해서 빗장을 많이 풀 수 있을까요?
◆ 최용배> 아마 제가 보기에 지금 <기생충>이 약 3300만 불 정도의 성적을 올리면서 상용을 하고 있는데요. 그게 대폭 늘어날 거라고 여겨지고요. 그것은 바로 자막 있는 영화라고 하는 것을 거의 안 보는 그런 분위기의 영화 관객들이 뭔가 새롭게 적응하는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주는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 이동형> 그런데 <기생충> 전에도 우리 영화, 한국영화를 사랑한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연히 이 <기생충>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에 더 많이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겠죠?
◆ 최용배> 네, 그렇겠죠.
◇ 이동형> 봉준호 감독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잖습니까? 교수님도 같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최용배> 네, 박근혜 정부 때도 그렇고, 그 이전에 이명박 정권 초기에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고 하는 청와대와 문체부가 합작으로 만들었다고 보이는 그런 문건들이 발견됐었죠. 그때 당시 좌파 문화인, 좌파 콘텐츠를 줄이고, 우파 콘텐츠를 양산해야 한다,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었는데요. 거기에 많은 문화인들의 명단도 있었지만, 문제의 영화로 세 편이 거론됐습니다. <효자동 이발사>라고 하는 영화는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공동 경비구역 JSA>는 북한을 동지로 묘사했다. 그리고 영화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이 영화들이 국민의식을 좌경화로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했고, CJ, KT 등 대기업 영화자본과 협력해서 투자 방향을 긍정적 우파로 선회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죠.
◇ 이동형> 21세기에 좌파 영화다, 이런 말이 버젓이 자료에 올라가 있다는 게 한심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런 것 때문에 CJ 이미경 부회장도 고초를 겪었고 한데요.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이후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트라우마다, 이런 말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요즘에 다시 회자되는 게 DJ 정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화에 대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 회자되고 있어요. 정부가 이렇게 지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좌파 영화라고 낙인 찍으면서, 이런 행동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용배> 사실은 거론된 김대중 대통령님의 국민의 정부시기에 한국영화가 커다란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그 시점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를 했던, 20년 전에 데뷔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검열제도가 철폐되고,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데, 검열제도가 있었던 그 이전까지는 사실은 블랙리스트가 은밀하게 존재했던 게 아니라 아예 공개적으로 존재했었죠. 그러니까 영화들이 만들어지면 이 영화는 북한을 미화하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권력을 비방하고 있다, 이러면서 영화를 삭제한다든지, 이런 일이 벌어졌잖아요? 그런 게 바야흐로 98년도에 국민의 정부 출범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완전등급제로 실현되고, 그리고 그때 국민의 정부가 영화진흥기구를 출범시키고, 영화를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증가하고요. 그래서 바로 재능 있는 영화인들과 중소 제작사와 배급사가 러시를 이루면서 새로운 한국영화의 붐이 일어나면서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하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도 그 당시 성공했던 영화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당시에 <쉬리>라든지, <접속>이라든지, <8월의 크리스마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여고괴담>, <주유소 습격사건>, 이런 영화들이 그때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자체는 사실은 일반적인 투자사와 제작사가 환영하기 어려운, 그런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결과도 그랬고요.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계의 분위기가 제작자의 강한 의지 같은 것이 존중되고 그래서 중소 투자 배급사들도 그런 영화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저는 그게 바로 아까도 소개된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밝혔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조적인 것이다,” 이런 취지가 바로 살았던 시기라고 보고요. 그래서 바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를 하고, 그 이후부터 자기의 가슴에 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그러면 2000년대 초반, 이때 한국영화가 가장 다양한 장르, 다양한 소재,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작가들, 감독들이 많이 나왔던 시대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 최용배> 네, 당시에 흥행 감독님들도 많았고, 봉준호 감독 이외에도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 홍상수 감독, 임상수 감독, 김지운 감독,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표작들이 다 이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지죠. 유럽의 3대 영화제에 가서 초청도 여러 차례 받고, 많은 영화들이 받고, 수상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 시기였던 것이죠.
◇ 이동형>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이 뒤를 잇는 신예 감독들이 나오고 있느냐, 이런 지적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용배> 안타깝게도 최근 10여 년 한국영화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심각한 변화가 생긴 게 산업구조의 변화가 생기는 게 극장 부분이 저희가 알다시피 CGV, 롯데, 메가박스, 3개 체인이 극장 매출의 98%를 차지하고요. 그다음에 영화 배급 부분은 극장 체인 3대 기업을 포함해서 5개 기업이 90%를 차지하고, 그래서 이런 상영 부분과 투자·배급 부분, 두 개를 과점하는 회사들이 한국영화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게 되죠. 이러다 보니 이들이 선호하는 종류의 영화들은 블록버스터입니다. 관객 흡입력이 절대적이니까. 그러다 보니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이 나오는 대작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런 대작 영화들에는 사실 신인 감독들이 선택될 확률이 낮고, 그리고 신인 감독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 이런 것들의 기회가 점점 사라져갔던 것이죠.
◇ 이동형> 그러면 일각에서 지적되는 CJ, 롯데 등 재벌자본에 한국영화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의 뒤를 잇는 신예들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 최용배>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소 투자·배급사, 또 중소 제작사, 그리고 영화인들이 바로 개인적인 창의성 같은 것들을 존중해서 위험하지만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산업구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런 구조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 것들은 제가 보기에 어쨌든 최근 10여 년 동안에 MB, 박근혜 정권 사이에 영화 지원 정책이라는 것들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새 정부에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새 정부도 아직은 영화 부분의 재생과 관련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온전하게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개선돼서, 지금 봉준호 감독의 소망 같은 것들을 따라서, 그런 창의성 같은 것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산업환경을 빨리 신속하게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동형> 네, 교수님 봉준호 감독이랑 수상 직후에 통화나 해보셨습니까?
◆ 최용배> 네, 제가 생중계를 보면서 사실은 각본상 받은 것도 참 되게 감동적이었는데, 제가 국제영화상은 분명히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상은 다 듣자마자 축하 문자를 막 썼어요. 그런데 시상식을 보면서 쓰다 보니까 조금 어리바리 늦어지다 보니 감독상 소식을 듣게 되고, 문자를 바꾸게 되었죠. 그래서 감독상 수상 상황 너무 감동적이었죠. 그 상황을 다 보고 문자를 써서 보냈는데, 바로 이어서 작품상까지 받아서 또 한 문자를 보내고, 이러다 보니까 아주 문자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사실상. 문자에 대해서 오늘 새벽에 답신이 왔는데, 이제 조용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애써보겠습니다, 이런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축제는 끝이 났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작업했던 많은 영화인들이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 극찬을 하던데, 사실은 감독들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다들 연기자도 그렇고 칭찬을 하던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 최용배> 저도 저랑 영화 한 편을 하기로 했을 때 저한테 제시했던 게 <괴물>을 만들자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한국에서 괴수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게 국내 CG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거고, 또 국내에서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을 가진 스태프들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저는 어쨌든 봉준호 감독하고 준비하던 기간이 있어서, 또 젊었을 때의 모습도 보면서 봉 감독이 하겠다고 하면 해내는 사람이야, 라고 하는 신뢰감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저는 확신을 가졌는데요. <괴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봉 감독에 대해서 그런 잘 몰랐던 사람들, 그런 영화인들은 사실은 미친 짓이다, 저한테 와서도 그런 의심들을 많이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알게 됐죠. 곧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과정을 겪다 보니까 봉 감독은 몇 년 전부터 이미 CG 기술과 관련된 것들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공부를 했었고, 수년간 준비를 했고, 그래서 국내외 전문가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제가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 어떻게 감독을 하면서도 CG에 대해서 저렇게 많이 준비를 하고, 잘 알고 있을까, 라고 하는 실감을 제가 아주 팍팍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 이동형> <괴물> 이야기해주셨으니까. 과거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서 <괴물> 만들 때 예산 문제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 이런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 최용배> 요즘은 CG 기술들이 한국영화의 규모나 봤을 때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닌데, 당시에는 CG가 제작비의 30% 정도를 차지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봉 감독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이 변화가 생기고 그러면 예산이 늘어나는데, 그 늘어나는 게 전체 예산에서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다음에 CG를 하는 회사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 회사라고 하는 데들이 하는 제작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미국에서 정해진 스케줄대로 하는 거고, 그런 것을 정말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만 어긋나면 오버 차지를 매기고 하는, 그런 것 때문에 봉 감독이 정말 원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데에 예산이라고 하는 범위가 아주 압박을 많이 가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것 때문에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저보다 훨씬 더 봉 감독이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 이동형> 그래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영광이 있을 수도 있겠죠. 이번에 아카데미 시상하고 나서 전도연 씨가 축하인사를 하면서 이제 나도 아카데미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우리 영화가 당면한 과제, 또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도약하기 위한 것들은 어떤 게 필요하겠습니까?
◆ 최용배> 저는 아마 한국영화인들이 자신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래서 아마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되고요. 아까 제가 봉 감독 4관왕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많은 분야에서, 한국영화계의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줄 것 같고요. 그리고 아까 제가 언급을 조금 드렸지만, 이런 것을 계기로 해서 이제 다시 한 번 한국영화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게, 어떤 부분들에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지 정부가, 또 국회의원들이 세심하게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 최용배> 네.
◇ 이동형> 지금까지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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