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감정노동 2위 직업' 네일리스트와 함께한 4시간

[반나절] '감정노동 2위 직업' 네일리스트와 함께한 4시간

2019.08.17.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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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감정노동 2위 직업' 네일리스트와 함께한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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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 순위에 '네일아티스트'가?

2015년 한국고용정보원이 730개 직업 종사자 2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직종은 텔레마케터, 네일아티스트·호텔관리자, 중독치료사 순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이란 '서비스나 상품을 팔기 위해 정해진 통제방식이나 규범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실제 느끼는 것과 달리 표현하거나 만들어내는 노동'으로 정의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여성 종사자가 많은 서비스 직종에 감정노동을 극도로 강요하는 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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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터가 겪는 고객 폭언과 이에 따른 스트레스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알려졌으나 네일아티스트가 겪는 감정노동 실태는 다른 직종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네일아티스트가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 2위를 차지한 이유는 무엇인지, 네일샵의 협조로 가게에서 반나절 동안 네일아티스트의 노동 행태를 관찰해봤다.

서울의 한 뷰티샵에서 일하는 이 모 씨(31)는 10년 차 네일리스트다. 근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회,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루어진다. 예약이 없는 시간에는 쉴 수 있지만 언제 손님이 방문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는 없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나 10여 년을 일하다 보니 허리와 눈 등 건강이 좋지 못해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에는 정신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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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나지 않은 첫 손님

"20분 지났는데 전화도 안 받고 안 오시네요"

휴가철이라 예약이 꽉 차 있었지만 1시에 예약한 손님은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네일아트는 1:1로 서비스가 이루어지며 시간당 4만 원~10만 원이라는 고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노쇼'는 특히나 치명적이다. "이런 일이 잦느냐"고 네일아티스트에게 물었더니 "가끔 있다. 우리 샵은 한 번 '노쇼'한 고객은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적은 편이지만 다른 곳은 더 많다고 들었다"고 답한다.

'노쇼'를 방지하기 위해 예약금을 받는 방법도 검토해 본 적이 있지만 오히려 예약금이 있는 샵은 예약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섣불리 도입하기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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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노동자로서의 '네일리스트'

한 시간이 흘러간 뒤 다음 예약 손님이 오자 네일리스트는 차를 내오고 디자인을 고른 뒤 익숙하게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한여름 무더위로 시작해 '손님의 휴가 계획'으로 이어지고, 손님의 남자친구 이야기, 취업 고민 등으로 흘러갔다. 손님이 나간 뒤 "얘기를 정말 잘 들어주신다"라고 말했더니 네일리스트는 "네일 10년 차면 상담도 10년 차"라며 웃었다.

곁에서 지켜보니 네일리스트는 기술과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임과 동시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응하는 서비스직 측면이 강했다. 네일리스트는 손님의 경험이 재구매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손님과의 대화나 기분을 맞추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다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세요. 처음 일할 때는 손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었는데, 10년 차가 되다보니 손님 이야기에 점점 '음, 오, 아, 예'이 네 글자로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별생각 없이 반응해서 친구들이 저한테 '너 왜 대답에 영혼이 없냐'고 화내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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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는 한 손님이 TV에 나온 연예인을 보면서 "아 저 연예인 너무 싫다"고 말했는데, 사실 저는 그 연예인 팬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쵸 저사람 저도 별로에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무조건 맞춰줘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감정노동자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던 네일리스트는 다음 손님이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머 고객님 오랜만이에요! 날씨가 덥죠? 이번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세요?"라며 조금 전 손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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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의 하대와 이해할 수 없는 컴플레인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진정으로 느끼는 감정을 박탈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스스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무리한 근무 형태(야간 근무 등)를 자진하거나 마사지, 미백 서비스 등 부가 서비스를 개발해 차별성을 창조하기도 한다.

간혹 서비스 과정에서 간혹 하대를 하거나 화를 내며 무조건적인 추가 서비스·환불을 요구하는 '진상 손님'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네일리스트는 지난 주 겪었던 손님과의 언쟁을 회상하며 "네일아트를 받은 지 일주일 지난 손님이 갑자기 마음에 안 든다며 무조건 환불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환불해줄 이유가 없었지만 그는 괜히 SNS 등에 악의적인 글을 올릴 수도 있다는 걱정에 결국 전액을 환불해줬다고 말했다. 손님과의 분쟁은 감정노동자가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제공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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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달라지는 사회...인간과 노동에 대한 존중 우선돼야

네일리스트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비스직은 긴 노동 시간과 감정 노동, 휴가 사용 제한 및 고용주의 갑질 등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서비스 노동에 대한 전반적 인식과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현황이 감정노동 해결을 더디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결국 인간 존중 및 노동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만이 해답이다.

그래도 최근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네일리스트는 "요즘엔 사회적으로 '노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정착돼 '노쇼'가 줄었다. 그리고 젊은 분들일수록 저희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대해 주신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를 하기보다 정말 네일아트만을 받고 싶어서 오는 손님들도 많아져서, 억지로 말 걸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네일샵에서는 네일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고객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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