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고문, 국가의 존재를 묻다

[人터view] 고문, 국가의 존재를 묻다

2019.05.11. 오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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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인터뷰, 人터view]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국가배상청구 소멸시효 6개월'이라는 논리로 수십 년간 고통받아온 고문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대한민국은 이른바 '공포국가'였습니다. 민주화 운동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수사기관에 끌려가 폭행을 당했던 시절. 고문은 대공 담당 수사관들에게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우리 군인들 성과 올리고, 훈장 타고 진급되고 이런 기회도 생기지 않느냐 이거야!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1984년 1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간첩대책중앙회의 석상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가 한 말입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곧 법이 되던 서슬 퍼런 시절, 각급 수사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간첩을 생산해냈던 이유입니다. 정권이 내놓은 달콤한 조건도 고문과 간첩 조작에 한몫했습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했던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이 연봉을 훨씬 웃도는 큰 금액의 포상금과 훈, 포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행한 고문으로 간첩이 된 사람들은 억울한 옥살이와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민주화 이후 과거사진상조사가 이뤄졌고, 피해자들은 천신만고 끝에 재심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3년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첫 번째 무죄 판결이 나온 후, 많은 피해자가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이 국가배상과 명예회복을 기대하던 2013년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법원이 국가배상청구 기한을 줄여, 피해자들의 배상을 막은 것입니다. 국가배상청구 소멸시효가 6개월인데, 피해자들이 이 기한을 넘겨 국가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판결은 2018년 헌법소원을 통해 결국 위헌 결정이 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다시 열린 국가배상 소송은 피해자들의 승리로 끝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가 딴지를 걸고 나왔습니다. 고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나 희망을 꿈꾸었던 피해자들은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고문으로 인한 간첩 조작 사건은 단순히 경제적 보상을 위해 다투는 사건이 아닙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국가 기관이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이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공동 성명을 내고 “한편에서는 사법농단 책임자를 처벌하면서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한사코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힘없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또 다른 적폐를 쌓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법무부의 상고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법무법인 지평의 김영수 변호사는“민주적 법치 국가라면 법무부가 먼저 나서서 원고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원고들에게 사과하고 위로해야 마땅하다. 이번 법무부의 상고 결정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며, 법무부가 상고를 취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고문을 자행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당시 수사 관행을 운운하며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문으로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하고 유죄를 판결했던 검사와 판사들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사이 고문과 간첩조작 피해자들은 고통의 긴 터널 속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 피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전에 국가가 먼저 나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때입니다.

김태형 [thkim@ytn.co.kr]

시철우 [shichulwoo@ytn.co.kr]

이자은 [leejaeun90@ytn.co.kr]

(그래픽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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