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내년까지 법 개정"

66년 만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내년까지 법 개정"

2019.04.11. 오후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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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 판단이란 평가입니다.

이에 따른 대체법 마련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오전부터 헌재에 나가 취재하고 있는 현장기자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강희경 기자!

오전부터 고생이 많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 예상했던 내용인가요?

[기자]
그동안 여러 차례 보도한 대로 법조계에서는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로 나올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자기 낙태죄와 동의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로 위헌 판단을 내렸습니다.

'자기 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낙태한 여성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백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입니다.

형법 270조 '동의 낙태죄' 조항에 따라 수술한 의사도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받도록 규정돼 왔습니다.

이 두 가지 법 조항이 모두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 건데요.

다만 규정을 즉시 폐지해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만큼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법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그 법을 유지하는 결정을 말합니다.

법 조항을 한시적으로 유지하되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요.

오늘 선고에서는 재판관 4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3명이 단순위헌 의견을, 2명이 합헌 의견을 냈습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이런 결정이 나온 겁니까?

[기자]
헌법재판소는 자기 낙태죄 조항이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기결정권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 갈등 상황을 겪는 경우에도 임신의 유지와 출산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건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7년 전 합헌 결정 당시 헌법재판소는 임부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 생명권을 더 무겁게 봐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이번에는 이런 이유 등을 근거로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절대적 우위를 부여하는 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앵커]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시기에 대한 언급도 했죠? 22주는 어떤 의미입니까?

[기자]
헌법재판소는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22주 내외'라고 봤습니다.

또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판단했는데요.

이 시점 안에서는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다만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사 시간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결정가능기간을 언제까지로 볼 것인지, 어느 시점까지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등은 입법자가 결정하도록 문을 열어뒀습니다.

[앵커]
지난번에는 4대4로 의견이 팽팽했는데요.

이번에는 합헌 의견을 냈 2명의 재판관이 소수 의견이 됐네요.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재판관 9명 가운데 2명은 지난 7년 전과 마찬가지로 낙태죄 처벌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헌재 내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이 모두 합헌 의견을 냈습니다.

판단 이유도 7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태아 역시 인간의 생명으로 국가가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낙태죄 처벌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진 않는다고 봤습니다.

또 7년 전 합헌으로 이미 판단했는데, 그 사이에 사정 변경이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앵커]
반대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도 있었죠?

[기자]
위헌 의견을 낸 7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은 '단순 위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 허용 사유를 규정하는 건,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단순하게 태아 생명 보호만 우선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단순 위헌은 헌법불합치와 달리 법 개정 기간을 둘 필요 없이 곧바로 낙태죄를 폐지해도 된다는 건데요.

이 재판관들은 낙태죄 처벌 규정이 곧바로 없어지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결국 7년 전과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온 건데요.

어떤 점이 영향을 미쳤을까요?

[기자]
먼저 사회적 인식이 7년 사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때문에 결과가 7년 전과 분명히 다를 거란 전망이 우세했는데요.

최근 정부 조사에서 여성 75%가 낙태 처벌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낙태죄가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며 폐지 의견을 냈습니다.

여기에 헌법재판관들도 인사청문회 발언 등을 통해 낙태죄에 대해 전향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결국, 7년 만에 결과가 바뀌었는데요.

국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어떤 식으로 대체법을 마련할지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YTN 강희경[kanghk@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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