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침묵의 흔적 - 잊혀진 대형화재, 그 '블랙박스'를 꺼내 보다

③ 침묵의 흔적 - 잊혀진 대형화재, 그 '블랙박스'를 꺼내 보다

2018.11.25. 오후 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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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침묵의 흔적 - 잊혀진 대형화재, 그 '블랙박스'를 꺼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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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취재: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기자 註)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조사체계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헤쳐온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관련 내용을 담은 인터랙티브 사이트를 제작해 공개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기사와는 별도로 관련 내용을 더 자세히 사진, 데이터와 지도, 차트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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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기사에서 '바로 가기'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http://dev.heartcount.io/YTN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됩니다. 이 사이트는 크롬과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현장엔 불이 꺼진 뒤에도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소방대가 쏟아부은 물이 천장에서 줄줄이 흘러내리고, 질퍽질퍽해진 바닥, 실내는 암흑 속에 연기가 자욱했습니다.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화재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하던 기자의 오래전 경험, 그 아득한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생경함이 섞인 그 무엇입니다.

몇 시간 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공간, 비극의 현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습니다. 온 가족이 삽시간에 스러져간 비닐하우스 화재부터 수십 명의 학생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학원 화재까지, 참사가 남기고 간 공간의 그 무거운 침묵을 기억합니다.

잿더미가 된 공간이 품고 있었을 그날의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규명해 나갔을까? 언론은 화재 직후에는 소방대원의 말을 좇아, 시간이 좀 지나면 경찰의 발표를 따라,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기사에 담습니다. 수사 발표 결과는 기정 사실이 되고, 기억은 봉인됩니다. 화재 현장의 사고 당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료는 폐기되고 관련인의 진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을 때, 우리가 꺼내 볼 수 있는 '블랙박스'가 있습니다.조사관이 화재 현장을 관찰하고 분석해 기록해 놓은 문헌과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언론이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자료입니다. 방화 의심 사건을 비롯해 '수상한 화재'를 취재해온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과거 대형화재들의 국과수 감정서와 소방 화재 현장 조사서 등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1999년 화성 - 씨랜드 화재를 돌아보다



지금부터 19년 전인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 수련원 씨랜드에서 불이 났습니다.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등 23명이 숨진 대형 화재였습니다. 불이 난 컨테이너 임시 건물 '씨랜드'는 화성 공무원들의 인허가 비리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리까지 맞물려 "총체적인 부실 덩어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국가적 관리 시스템의 미비가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십 수년 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닮은 점은 또 있습니다. 씨랜드 화재는 아직도 사고가 난 정확한 원인을 모릅니다. 화재 원인 조사의 한계와 그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죠. 씨랜드 화재의 국과수 화재 감정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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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스치고 지나간 직후의 화재 현장 사진을 보면, 대형 임시 건물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습니다. 내부 사진을 보아도 처참하게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입니다. 화재 원인을 놓고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수사 당국은 사고 초기에는 누전 가능성을 따져 보다가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수련원 301호실에 피워놓았던 모기향불이 종이나 의류 등에 옮겨붙으면서 화재가 난 것"으로 결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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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과수 감정서를 보면 "301호 내부에서 모기향을 포함한 미상의 화종에 의해서 연소가 출화 연소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 적었습니다. "모기향을 포함한 미상의 화종" 이라함은 모기향이 화재 원인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죠. 모호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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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서를 보면 301호에서 "수영복 등 의류 일부와 철제 모기향 받침대 잔해가 발견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수사 당국은 결국 누전에 의한 화재인지 분명하지가 않고, 다른 특별한 진술도 없으니, 모기향을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감정서에는 28장의 현장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고, 현장에서 수거된 물건들이 촬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 문제의 모기향 받침대를 따로 찍은 사진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미 부여를 한 증거품이라면 별도로 촬영했을 텐데 말이죠. 조사관 본인도 모기향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유족들은 당시 MBC PD 수첩 측과 함께 모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에서는 초속 4m 이상의 선풍기 바람이 불을 때만 모기향에서 불이 붙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험을 참관한 전문가도 "모기향을 화재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화재 당시 평균 풍속은 초속 0.7~1.7m였습니다. 유족들은 이후 씨랜드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에서 "어떻게 모기향이 화재 원인이냐"며 검찰 측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누전이냐 모기향 화재냐의 논쟁만 있었던 씨랜드 화재에 대해 기자는 복수의 화재 전문가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익명의 화재 조사 전문가는 기자에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씨랜드 화재도 방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화재였다고 본다. 하지만 현장이 사라진 현재 검증할 길은 없어졌다" 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 조사관은 "특이점이 있지만, 이제 와서 당시 사진을 보고 얘기하는 것은 별 소득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기자가 씨랜드 화재라는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낸 이유는 막연한 음모론을 제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토록 엄청난 재난의 정확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역사를 상기하자는 것입니다. 그같은 화재 조사의 한계와 결함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 화재가 범죄 의혹과 연결되면 문제점은 더 커집니다. 씨랜드 화재가 사실상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단계에 머물렀다면, 9년 뒤 일어난 용인 고시원 화재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를 남겼습니다.


2008년 용인 - 고시원 화재의 기억(記憶)



2008년 7월 25일 새벽 경기도 용인의 한 고시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7명이 숨졌습니다. '현대판 쪽방촌'으로 불리는 고시원, 그 폐쇄적인 공간에 대한 부실한 관리 실태와 위험성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최근 일어난 종로 고시원 화재에서 우리는 10년 동안 거의 변한 게 없는 화재 관리의 현주소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용인 고시원 화재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소방과 경찰이 합동 감식을 벌였지만 180도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입수한 용인 고시원 화재의 소방화재 현장 조사서와 국과수 감정서를 통해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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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각각 당시 불이 난 용인의 고시원 6호실과 8호실의 광경입니다. 불이 일어난 방으로 추정되는 6호실이 가장 많이 탔습니다. 그런데 인근의 방, 8호실 침대 매트리스에도 불에 탄 자국이 있었습니다. 2곳 이상의 독립된 지점에서 따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탄화 흔적으로, 이른바 '다중 발화 지점'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방화의 정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불을 지르지 않았으면 좀처럼 남기 힘든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방화범이 한 곳에서 불을 질렀다가 잘 안 붙어 다른 위치에서 다시 불을 지르고 달아나면 이런 형태가 남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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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당국은 불이 처음 난 것으로 추정되는 고시원 6호실 바닥에 특이한 연소 형태가 나타난 점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소방 당국은 이를 포어 패턴(pour pattern), 즉 기름 같은 인화성 액체가 쏟아져 불에 탄 자국으로 해석했습니다. 방화의 정황입니다.

이런 패턴은 화재 직후에는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을 끌 때 뿌린 소방수와 불에 탄 잔류 물질에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화재 조사관이 바닥을 쓸고 닦아내는 노력을 한 후에야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세척 전과 세척 후를 비교한 소방 화재 현장 조사서의 사진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방 당국은 다중 발화 지점과 포어 패턴이 발견된 점을 고려해 방화를 의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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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경찰은 국과수의 감식 감정 결과에 근거해 방화가 아닌 전기 화재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6호실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난 다음에 천장의 에어컨 송풍구를 타고 불탄 잔해가 이동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불씨가 천장의 통로를 통해 옆 방인 7호실을 건너 뛰어 8호실 송풍구를 통해 침대 매트리스 위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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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전문가 중에는 용인 고시원 화재 조사 결과에 대해 아직도 이견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8호실 송풍구 사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불씨와 재가 송풍구를 통과해 떨어져 매트리스가 탔다면, 송풍구도 역시 더 훼손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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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전기 화재로 본 근거 중 하나는 6호실에서 발견된 단락흔, 즉 전선이 녹아 끊어진 흔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전기 화재 판정에 단락흔 외의 부대 상황도 종합적으로 판단했느냐입니다. 당시 감정서는 전선 배선의 감식 결과와 송풍구의 탄화 흔적 등도 거론했는데, 6호실에서 합선으로 불이 나 8호실로 불똥이 떨어졌다는 당시의 화재 시나리오를 둘러싸고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단락흔' - 그 진실과 오해의 경계



단락흔은 합선 등 전기적 요인의 화재에서도 물론 발생합니다. 그러나 외부 화염에 의해 합선이 일어나거나 전선 피복이 녹기도 합니다. 단락흔이 화재의 원인인지 결과물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차 단락흔, 2차 단락흔 등의 용어로 구별합니다. 문제는 단락흔이 나왔다고, 즉 전선이 끊어진 흔적만 보고 합선 화재로 단정하는 경우입니다. 화재 조사에 있어 단락흔 오용의 문제점은 알만한 사람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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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감정을 통해 단락흔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느냐는 YTN 질의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현재의 기술로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전기 화재 조사에 오랜 경험을 가진 전주대학교 최충석 교수도 단락흔을 맹신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전원이 어느 방향으로 연결되며, 화염의 공격이 어디서 왔는지 입체적으로 판단해야지, 단락흔 하나만 보고 얘기하면 과학적으로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민사 재판에서는 단락흔이 화재 원인을 밝혀주는 독립적인 증거 자료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국이 화재조사를 할 때는 단락흔 감식과 감정 결과에 기대어, 자의적으로 전기화재 여부를 판정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이런 사례는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수집한 '수상한 화재' 목록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방화 등 다른 요인으로 일어났을 화재가 전기 화재로 둔갑해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2017년 강릉, 석란정 화재 - 엇갈린 판단




앞서 본 것처럼 방화 현장에는 범죄를 암시하는 특별한 흔적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인화성 액체를 붓고 불을 질렀을 때 남는 독특한 탄화 흔적도 그중 하나입니다. 화재 조사관들이 이런 연소 패턴을 제대로 읽어낼 경우, 불이 처음 일어난 지점을 역추적해내고 화재 원인에 대한 의미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패턴은 정황일 뿐, 지문처럼 범죄 사실을 곧바로 알려주는 증거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조사관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기도 하는데 2017년 9월 17일에 일어난 강원도 목조문화재인 석란정 화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석란정 화재도 많은 이를 안타깝게 한 참사였습니다. 잔불 정리과정에서 건물이 무너져 불을 끄던 소방관 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시 소방과 경찰이 합동 조사를 했지만, 두 기관은 극명하게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소방 당국은 방화가 의심되는 사건으로, 경찰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본 것입니다. 기자는 소방화재현장조사서와 경찰의 내사 결과 보고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 등을 입수해 자세히 검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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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과 같이 석란정은 온돌방 하나에 우측으로 돌출된 2개의 마루 형태의 방이 붙어 있습니다.
소방화재 조사서에는 이 3개의 공간의 곳곳에서 이른바 퍼붓기 패턴(포어 패턴 Pour pattern)과 틈새 연소 패턴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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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는 소방서 측이 화재현장 조사서에서 석란정의 마루방에서 발견된 포어 패턴 모습이라고 밝힌 사진입니다. 포어 패턴은 바닥이 불에 탄 형상이 액체가 바닥에 부어진 모양을 띠는 것을 말하는데, 인화성 물질을 사용해 불을 붙여 태웠음을 암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방화의 단서로 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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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연소 패턴은 목재 마룻바닥의 하부 틈새가 주변보다 더 까맣게 탄 흔적을 말하며, 역시 역시 인화성 물질이 바닥 안까지 스며들어 연소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역시 방화 가능성을 암시하는 단서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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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은 화재 감식 결과 온돌방과 2개의 마루방에서 모두 포어패턴과 틈새 연소 패턴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인화성 물질이 어디서 왔는가입니다. 석란정 관리인은 YTN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평면도 위에 펜으로 표시를 하면서 마루방 한쪽에 도색 작업을 하다가 남은 시너와 페인트를 용기에 담아 보관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세 곳의 방에 모두 인화성 물질이 검출됐다면 설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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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루방의 문틀을 비롯한 여러 지점에서 흰 페인트가 검출됐는데, 이는 인화성 액체를 누군가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시너 성분은 불의 열기에 대부분 휘발되기도 하지만, 페인트 성분은 화재 현장에 잔류량이 더 많은 편입니다. 소방 화재조사관은 "만약 누군가 방화를 저질렀다면 두 가지 물질을 섞어서 뿌린 뒤 불을 질렀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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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혀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국과수는 화재 감정서에서 불이 난 원인을 직접 판단할 수 있는 특이한 연소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소방당국이 지적한 포어 패턴이나 틈새 연소 패턴 등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국과수 조사관은 소방 당국이 주장하는 부분이 포어 패턴이라면, "어마어마한 양의 시너가 뿌려져야 한다" 면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인화성 성분이 현장에서 검출됐다는 소방과학 연구실의 분석 결과와 달리 국과수 감정에서는 그런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현장을 관찰하고, 같은 공간에서 시료를 수집해 분석했지만, 전혀 배치되는 판단이 나온 셈입니다.

경찰은 관계인에 대한 탐문 조사 과정에서 끝내 방화의 단서를 찾지 못하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내사단계서 마무리했습니다. 경찰은 1개월간에 걸친 탐문 조사를 했으며, 일부 관련자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검사도 했지만 용의점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화재 현장 부근에서는 모 업체 측에서 불을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경찰은 관련자들을 내사했지만 특이점이 없었다면서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을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이 소방 당국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면서 화재 원인 규명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석란정 화재는 경찰 기록에서 방화 미제 사건이 아닌, 범죄 혐의점이 없는 일반 화재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데이터 분석과 문헌 추적을 통해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묻힌 화재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강호순 방화나 광주 3남매 사망 화재처럼 방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도 있었지만, 석연치 않은 의문점만 그대로 남은 사례도 많았습니다. 그 점은 동네 화재나 대형 화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해법은 없을까?YTN은 다음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대안을 생각해보겠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사라진 방화' 사이트 : '바로 가기 링크'

관련 디지털 기사

① 사라진 방화…화재 조사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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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수상한 화재 보고서'…강호순 방화에서 '우리 동네 화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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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사라진 방화' 진단과 해법 - 전문가 5인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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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데이터저널리즘팀 관련 방송 리포트

① 사라진 방화 : 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





② 방화수사 오리무중, 검거율은 90%...화재 수사의 이면





③"화재 원인 판정 불가"...단락흔의 함정





④소방은 '방화' 경찰은 '그냥 불'...헛도는 공조





'석란정 화재' 원인 미궁...여전한 '방화' 의혹





엇갈린 감정 결과..."국과수 결론 이해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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