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폭행·출산' 말하지 않을 권리 인정?

대법, '성폭행·출산' 말하지 않을 권리 인정?

2016.02.23. 오전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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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방글, 변호사

[앵커]
민법은 이혼과는 별개로 결혼 전에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미 결혼을 했었는데 숨겼다든가 아이가 있는데 숨겼다든가. 그렇다면 어릴 적에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폭행을 당해서. 그런데 이 사실을 결혼 전에 알리지 않았다면 혼인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종원 기자의 보도 먼저 함께 보시겠습니다.

[기자]
22살이던 베트남 새댁 A 씨가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건 지난 2012년입니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은 지적장애 남편과 정을 쌓을 틈도 없이, 악몽에 시달리다 몇 달 만에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자신을 2차례나 성폭행했는데도 남편은 물론 시댁식구들이 자신보다는 시아버지를 감싸고 돌았기 때문입니다. 시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형이 확정됐지만재판과정에서 A 씨가 13살 때 성폭행을 당해 출산했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시련은 이어졌습니다.

결혼 전 이를 몰랐던 남편은 혼인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1·2심은 혼인을 취소하고 수백만 원의 위자료까지 지급하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A 씨가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혼인 결정의 중대한 사유인 출산 경험을 숨긴 것인 만큼, 민법이 혼인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사기에 의한 결혼'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출산이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였고, 또 출산 이후 가해 남성이 자녀를 데려가 8년 동안이나 교류가 없었던 점에 주목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범죄 피해였던 만큼,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고, 이를 결혼 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혼인을 취소할 수는 없다며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조병구 / 대법원 공보관 : 사기로 인한 혼인 취소는 혼인 당시 사회 일반의 인식과 가치관, 혼인의 풍속과 관습, 사회의 도덕관, 윤리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혼인 취소와는 별개로 A 씨와 남편은 각각 이혼과 함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사실상 대법원이 혼인 취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A 씨 부부는 남은 재판을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려 이혼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YTN 이종원입니다.

[앵커]
출산 경력 이건 변호사님. 일단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데 이걸 숨겼다 이건 일단 혼인 취소사유가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렇죠. 일반적으로 부인이 출산경력이 있거나 다른 남자와 사실혼 경력이 있거나 아니면 진짜 결혼한 경력이 있거나 이런 게 있다면 상대 배우자에게 혼인 전에 알려야 될 그런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칙적으로 출산을 한 경험이 있는데 알리지 않았다라고 하면 혼인취소 사유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도 1심, 2심에서 모두 혼인취소가 인정이 됐었습니다. 2심에서는 특히 성폭행으로 인해서 이 사람이 출산한 것까지는 인정이 됐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출산의 고지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 라면서 위자료 300만원을 인정했는데요. 대법원에서 뒤바뀌었죠. 우선 이 여성이 13살 때 소수민족한테 납치돼서 강간을 당한 사건이었거든요.

[앵커]
베트남 여성이죠?

[인터뷰]
그렇죠. 베트남 여성이죠. 아동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입니다. 아동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임신하고 출산한 이 내용은 굉장히 사생활 비밀이나 개인의 명예의 아주 본질적인 내용인데 이것까지 굳이 혼인 전에 알려야 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가 없다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고요.

또 실제 사안으로 들어가 봐도 이 여성은 아이와 거의 교류가 없습니다. 이 여성이 납치된 다음에 친정으로 도망치거든요. 그래서 계속 아이와의 교류도 없고 이런 상황으로 본다면 굳이 고지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고지할 의무가 없으니 속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단을 한 것이죠.

[앵커]
이 케이스는 베트남 여성이고그래서 베트남에 아이가 있고 지금은 아이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게 얘기가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게. 예를 들어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있는 것 자체를 숨기고 결혼을 해도 성폭행 당해서 낳은 아이면 그건 아닌 거죠?

[인터뷰]
전부 다 그렇게 판단을 할 수는 없고요. 그러니까 사안 하나하나마다 다를 겁니다. 이 사안은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면 굉장히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고 바로 본인은 나와서 아이와의 교류도 전혀 없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린 나이에 성폭력을 당한 범죄의 피해자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결혼을 할 때 나 사실 어렸을 때 이렇게 성폭력을 당했었고 임신을 해서 출산을 했고 굳이 이 얘기까지 강요할 수 있느냐. 거기까지는 아니다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분이 성폭행 피해자거든요. 성폭행 피해자를 대법원에서라도 이렇게 보호를 해주기로 했다는 것. 이건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다 이런 평가가 나올 것 같아요.

[인터뷰]
맞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성폭력으로 피해입은 여성을 보호하는 차원의 그런 취지의 판단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고요. 문제는 다음 얘기입니다. 파기환송이 됐는데요.

앞서 기자 리포트에서도 나왔지만 양쪽 다 이혼을 청구한 상태예요. 아마 이혼은 성립이 될 것이고요. 둘이 혼인이 거의 파탄난 상태이기 때문에 과연 둘 중에 누구에게 더 잘못이 있느냐. 지금 대법원에서는 굳이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아내의 잘못보다는 남편측의 잘못이 훨씬 더 크게 인정이 될 거고요.

왜냐하면 남편측은 아내가 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당신이 유혹하지 않았냐 이런 식의 얘기가 오갔었거든요. 그러니까 남편 잘못으로 이혼할 가능성이 크고요. 이 여성은 체류 자격증을 잃지 않게 됩니다. 설사 이혼을 하게 될지라도.

[앵커]
더 말씀드리면 이 사건이 복잡한 사건이라서요. 이 여성은 참 불쌍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해서 아이를 낳고 또 한국으로 시집을 왔는데 의붓 시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인터뷰]
그 성폭행 당한 이유에 대해서도 남편은 오히려 자신에게 당신이 유혹한 것 아니냐며 혼인 무효소송, 혼인 취소소송까지 낸 상태니까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는 좀 안타까운 인생이죠.

[앵커]
같은 여자 입장이 아니라 저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임방글 변호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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