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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용, 산부인과 전문의
[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의 영상에서 보신 바로 그 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한국 시험관 아기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신용 박사 자리 함께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에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태어나던 그 순간의 영상을 잠깐 보여드렸는데, 영상 보시니까 기분이 어떠신가요?
[인터뷰]
30년 전에는 시험관 아기 성공이라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좋은 결실을 맺어서 난임부부들한테 희망과 행복을 드리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시청자 여러분께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조금 전에 영상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의사분이 선생님이신 거죠?
[인터뷰]
네. 그때 시험관 아기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관여를 하셨지만, 저를 포함해서 많은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앵커]
시험관 아기 30년이라고 하면 관심이 없는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인공수정 하고 시험관 아기라고 하면 두 개의 차이점이 어떤 건가요?
[인터뷰]
시험관 아기는 여성의 난자를 정자와 수정시켜서 시험관에서 2일, 3일, 혹은 5일만 배양을 하는 겁니다. 잘못 생각하시면 아기가 시험관에서 10달 동안 다 크는 걸로 생각을 하시지만 5일 후에 엄마의 자궁 안으로 저희가 이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에는 시험관 아기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공확률이 높지않다고 하셨는데 쌍둥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의료진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기쁨이라고 할까요, 그 분위기도 전해 주시죠.
[인터뷰]
신생아가 태어날 때는 산모가 저희들한테 항상 말씀을 하시는 게 아기한테 무슨 이상이 없냐. 두 번째는 건강하냐. 저희도 그 두 가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기한테 특별한 기형이라든지 이상증상이 없고 아기가 건강한 데 저희는 만족했습니다.
[앵커]
첫 시험관 아기의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번의시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여러 번의 시도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앵커]
그때 한 번에 성공을 했던 것인가요?
[인터뷰]
두 분의 성격이 굉장히 차분하시고 당시에는 시험관 아기라는 것을 환자도 모르고 의사도 잘 이해를 못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 저희가 처음 시험관 아기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응해 주셔서 저희는 오히려 대단히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 당시에는 그런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분들도 분명히 많았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네, 많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당시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초음파기계가 한 대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각 진료실마다 있는 초음파기계도 드물었고 저희가 열심히 준비했습니다마는 저희의 경험도 부족해서 성공이 잘 안 됐습니다마는 이분들 중에는 나중에 성공하신 분들도 있고 물론 안 되신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응해 주셨던 분들에 대해서 저는 지금도 많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첫 시험관 아기의 탄생 순간을 함께 하셨고 그 아기를 안고 있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포착이 되셨는데. 그때 성공하셨던 큰 성공의 요인이라고 할까요, 어떤 부분이 있었을까요?
[인터뷰]
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험관 아기는 의사 한 사람의 역할만 중요한 게 아니라 또 생물학을 전공하신 박사의 역할도 중요한데. 저희 팀안에는 오선경 박사라고 아주 유능한 생물학 박사가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앵커]
그러면 그 성공에 그치지 않고 35살에 바로 또 미국으로 가셨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그 전에 갔습니다. 제가 국내에서...
[앵커]
몇 년도에 가신 건가요?
[인터뷰]
1983년도에 갔습니다. 1983년도에 거의 무작정 갔죠. 국내에서 과학문헌을 보고 연구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 미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앵커]
가셔서 어떤 공부를 하시게 된건가요?
[인터뷰]
처음에 갔더니 하워드 존스를 찾아갔는데 그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로마에서 시험관 아기에 대한 윤리논쟁이 있어서 가셨고 2주 후에 돌아오신다고 해서 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후에 기간이 있어서 유전학 실험실에 가서 정말 열심히 유전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때 박사님 별명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고 불렸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그때는 한국에도 문헌도 있었습니다마는 미국에서 교수님들이 어떤 문헌을 찾아달라고 말씀을 하시면 다음 날 꼭 준비해서 아침에 출근하시기 전에 책상 위에 준비해 놨고. 이분들은 또 논문을 찾아오라고 하면 그냥 계시는 게 아니고 꼭 질문을 하십니다. 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 밤잠을 거의 안 자고 공부했습니다.
[앵커]
그렇게 배운 의술이 지금 우리나라 시험관 아기 역사를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우리나라 사회 추세를 보면 결혼을 늦게해서 그런지 난임부부들 수가 상당히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현황부터 저희가 들여다 보고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되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의 고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난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병원에서 실제로 많이 느끼시죠?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난임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난임이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앵커]
그러면 어떤 건가요?
[인터뷰]
결혼 연령이 늦어져서 그 결과로 인해서 난임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은 18세에 결혼하면 난임이 없습니다. 여성의 노화, 난소의 노화는 30세부터 시작이 됩니다.
[앵커]
난소의 노화가 30세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까?
[인터뷰]
30세 이전부터 시작이 되는데 의학적으로는 30세에 시작하는 걸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요즘 사회 분위기가 여성들도 공부도 많이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다 보니까 예전보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그런 사회현상이 되어 가고 있는 그런 분위기인데요. 아무래도 난임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이렇게 되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현재 난임하는 기술도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가 있을 텐데, 3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가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 주변 국가에서 난임 치료를 위해서 국내에 많은 환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소련이라든가 몽골,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일본에서도 일부 환자가 오고 있고 또 미국에서도 환자가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기술은 많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시험관 아기 해 보고 하지만 또 실패하는 분들, 안타까운 사연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실패는 꼭 따르기 마련이겠죠. 일정한 성공에 이르는 난임 부부들이 있습니다마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난자의 질이 저하가 되는 것입니다.
난소의 기능이 떨어지면 난자의 질도 동시에 저하되기 때문에 저희들이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가임연령에 아기를 가져서 정상적인 분만을 하시는 것이 난임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가장 바람직한 부분은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령 임신이 많다 보니까 요즘에 냉동 난자, 이런 것도 상당히 많이 고려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이 임신하고 그러는 데 냉동 난자가 혹시 태아에 안 좋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어떻게 봐야 될까요?
[인터뷰]
태아에 안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난자는 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개의 난자를 냉동해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될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앵커]
냉동 난자 부분이 앞으로 좀더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건가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지금 발전하고 있습니다. 냉동난자는 우리가 암 치료를 받는 여성을 위해서 개발한 치료법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자꾸 사회활동이 증가하다 보니까 결혼이 늦어지니까 난자를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시험관 아기의 대부이시다 보니까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고민 상담도 많이 하시고 많이 찾아오실 텐데요.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분들, 아무래도 본인의 의지도 많이 중요할 테고 그럴 텐데 끝으로 그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해 주시죠.
[인터뷰]
난임은 질병이 아닙니다. 난임은 시간에 관계가 있는 병입니다. 이러한 병입니다. 그러니까 아기를 꼭 시간 안에, 가임연령 안에 가지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30세 이후에 결혼을 하셨다면 결혼 6개월 후에 아기가 없으면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또 35세 이후에 결혼을 하셨는데 피임을 하고 그러지 마시고 3, 4개월 경과했는데도 아기가 안 생기면 빨리 의사와 상담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앵커] 30년 전에 시험관 아기가 첫 탄생을 했고요. 그 아기를 안았던 아기의 대부 문신용 박사와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아무래도 결혼하고 나서 아기 계획을 세울 때 너무 늦추지는 말라, 이렇게 당부를 끝으로 하셨습니다. 문신용 박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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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의 영상에서 보신 바로 그 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한국 시험관 아기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신용 박사 자리 함께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에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태어나던 그 순간의 영상을 잠깐 보여드렸는데, 영상 보시니까 기분이 어떠신가요?
[인터뷰]
30년 전에는 시험관 아기 성공이라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좋은 결실을 맺어서 난임부부들한테 희망과 행복을 드리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시청자 여러분께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조금 전에 영상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의사분이 선생님이신 거죠?
[인터뷰]
네. 그때 시험관 아기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관여를 하셨지만, 저를 포함해서 많은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앵커]
시험관 아기 30년이라고 하면 관심이 없는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인공수정 하고 시험관 아기라고 하면 두 개의 차이점이 어떤 건가요?
[인터뷰]
시험관 아기는 여성의 난자를 정자와 수정시켜서 시험관에서 2일, 3일, 혹은 5일만 배양을 하는 겁니다. 잘못 생각하시면 아기가 시험관에서 10달 동안 다 크는 걸로 생각을 하시지만 5일 후에 엄마의 자궁 안으로 저희가 이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 30년 전에는 시험관 아기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공확률이 높지않다고 하셨는데 쌍둥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의료진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기쁨이라고 할까요, 그 분위기도 전해 주시죠.
[인터뷰]
신생아가 태어날 때는 산모가 저희들한테 항상 말씀을 하시는 게 아기한테 무슨 이상이 없냐. 두 번째는 건강하냐. 저희도 그 두 가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기한테 특별한 기형이라든지 이상증상이 없고 아기가 건강한 데 저희는 만족했습니다.
[앵커]
첫 시험관 아기의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번의시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여러 번의 시도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앵커]
그때 한 번에 성공을 했던 것인가요?
[인터뷰]
두 분의 성격이 굉장히 차분하시고 당시에는 시험관 아기라는 것을 환자도 모르고 의사도 잘 이해를 못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 저희가 처음 시험관 아기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응해 주셔서 저희는 오히려 대단히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 당시에는 그런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분들도 분명히 많았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네, 많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당시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초음파기계가 한 대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각 진료실마다 있는 초음파기계도 드물었고 저희가 열심히 준비했습니다마는 저희의 경험도 부족해서 성공이 잘 안 됐습니다마는 이분들 중에는 나중에 성공하신 분들도 있고 물론 안 되신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응해 주셨던 분들에 대해서 저는 지금도 많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첫 시험관 아기의 탄생 순간을 함께 하셨고 그 아기를 안고 있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포착이 되셨는데. 그때 성공하셨던 큰 성공의 요인이라고 할까요, 어떤 부분이 있었을까요?
[인터뷰]
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험관 아기는 의사 한 사람의 역할만 중요한 게 아니라 또 생물학을 전공하신 박사의 역할도 중요한데. 저희 팀안에는 오선경 박사라고 아주 유능한 생물학 박사가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앵커]
그러면 그 성공에 그치지 않고 35살에 바로 또 미국으로 가셨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그 전에 갔습니다. 제가 국내에서...
[앵커]
몇 년도에 가신 건가요?
[인터뷰]
1983년도에 갔습니다. 1983년도에 거의 무작정 갔죠. 국내에서 과학문헌을 보고 연구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 미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앵커]
가셔서 어떤 공부를 하시게 된건가요?
[인터뷰]
처음에 갔더니 하워드 존스를 찾아갔는데 그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로마에서 시험관 아기에 대한 윤리논쟁이 있어서 가셨고 2주 후에 돌아오신다고 해서 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후에 기간이 있어서 유전학 실험실에 가서 정말 열심히 유전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때 박사님 별명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고 불렸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그때는 한국에도 문헌도 있었습니다마는 미국에서 교수님들이 어떤 문헌을 찾아달라고 말씀을 하시면 다음 날 꼭 준비해서 아침에 출근하시기 전에 책상 위에 준비해 놨고. 이분들은 또 논문을 찾아오라고 하면 그냥 계시는 게 아니고 꼭 질문을 하십니다. 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 밤잠을 거의 안 자고 공부했습니다.
[앵커]
그렇게 배운 의술이 지금 우리나라 시험관 아기 역사를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우리나라 사회 추세를 보면 결혼을 늦게해서 그런지 난임부부들 수가 상당히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현황부터 저희가 들여다 보고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되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의 고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난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병원에서 실제로 많이 느끼시죠?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난임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난임이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앵커]
그러면 어떤 건가요?
[인터뷰]
결혼 연령이 늦어져서 그 결과로 인해서 난임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은 18세에 결혼하면 난임이 없습니다. 여성의 노화, 난소의 노화는 30세부터 시작이 됩니다.
[앵커]
난소의 노화가 30세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까?
[인터뷰]
30세 이전부터 시작이 되는데 의학적으로는 30세에 시작하는 걸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요즘 사회 분위기가 여성들도 공부도 많이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다 보니까 예전보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그런 사회현상이 되어 가고 있는 그런 분위기인데요. 아무래도 난임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이렇게 되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현재 난임하는 기술도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가 있을 텐데, 3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가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 주변 국가에서 난임 치료를 위해서 국내에 많은 환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소련이라든가 몽골,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일본에서도 일부 환자가 오고 있고 또 미국에서도 환자가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기술은 많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시험관 아기 해 보고 하지만 또 실패하는 분들, 안타까운 사연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실패는 꼭 따르기 마련이겠죠. 일정한 성공에 이르는 난임 부부들이 있습니다마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난자의 질이 저하가 되는 것입니다.
난소의 기능이 떨어지면 난자의 질도 동시에 저하되기 때문에 저희들이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가임연령에 아기를 가져서 정상적인 분만을 하시는 것이 난임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가장 바람직한 부분은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령 임신이 많다 보니까 요즘에 냉동 난자, 이런 것도 상당히 많이 고려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이 임신하고 그러는 데 냉동 난자가 혹시 태아에 안 좋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어떻게 봐야 될까요?
[인터뷰]
태아에 안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난자는 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개의 난자를 냉동해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될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앵커]
냉동 난자 부분이 앞으로 좀더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건가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지금 발전하고 있습니다. 냉동난자는 우리가 암 치료를 받는 여성을 위해서 개발한 치료법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자꾸 사회활동이 증가하다 보니까 결혼이 늦어지니까 난자를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시험관 아기의 대부이시다 보니까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고민 상담도 많이 하시고 많이 찾아오실 텐데요.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분들, 아무래도 본인의 의지도 많이 중요할 테고 그럴 텐데 끝으로 그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해 주시죠.
[인터뷰]
난임은 질병이 아닙니다. 난임은 시간에 관계가 있는 병입니다. 이러한 병입니다. 그러니까 아기를 꼭 시간 안에, 가임연령 안에 가지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30세 이후에 결혼을 하셨다면 결혼 6개월 후에 아기가 없으면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또 35세 이후에 결혼을 하셨는데 피임을 하고 그러지 마시고 3, 4개월 경과했는데도 아기가 안 생기면 빨리 의사와 상담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앵커] 30년 전에 시험관 아기가 첫 탄생을 했고요. 그 아기를 안았던 아기의 대부 문신용 박사와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아무래도 결혼하고 나서 아기 계획을 세울 때 너무 늦추지는 말라, 이렇게 당부를 끝으로 하셨습니다. 문신용 박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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