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사고'...되돌아본 '그날'

'최악의 사고'...되돌아본 '그날'

2015.06.27. 오전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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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삼풍 참사 20년을 맞아 그날을 되돌아보고 경각심을 새롭게 하자는 취지에서 준비한 YTN 연속 기획.

오늘은 삼풍백화점 참사가 어떤 사고였는지 사고 직후의 모습은 어땠는지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의 증언을 토대로 되돌아봤습니다.

정유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굉음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이상순, YTN 취재기자(삼풍 최초 보도)]
"가정법원에서 가사판결문을 놓고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법원장실 바깥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건물 하나가 없더라고요. 무너져서. 삼풍백화점 반이, 반쪽이 날아갔습니다. 라고 전화를 해서 1보를 날렸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과 종업원 등 천 5백여 명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갑작스러운 사고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강태욱, YTN 취재기자(당시 사고 취재)]
"A동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거기에서 먼지가 계속 나고 있었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피를 흘린 채 뛰어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최영욱, YTN촬영기자(당시 사고 취재)]
"그 때 제가 많은 분들을 봤었고. 그 과정에서 참혹한. (촬영한 그림을) 20년 동안 한 번도 본 순간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이 너무나 가슴에 많이 응어리 진 게 있어서."

일찍부터 이상 징후를 눈치챈 경영진은 이미 대피한 상태였습니다.

아파트 근린상가로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기둥을 없애고 무리한 증축을 하며 백화점으로 용도 변경됐습니다.

구청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비상식적인 인허가를 눈 감아 줬습니다.

당시 이준 삼풍회장은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도 손해를 봤다는 뜻'이라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훗날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처벌이라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한 달 넘게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실종자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쥐고 현장에 머물렀습니다.

[김정회, YTN 취재기자(당시 사고 취재)]
"인적사항 또는 사진이 담겨있는 것들을 A4용지 같은 것들, 아니면 도화지 같은 것들을 색칠을 해서 벽이나 교대 쪽에 도로 발판이 있는 쪽에도 다 붙이면서."

사고 10여 일 만에 기적적으로 생존자들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모두 502명이 숨지고 9백여 명이 다치는 등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대한민국 최악의 인재 사고로 기록됐습니다.

YTN 정유진[yjq07@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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