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투사에서 실세 총리로...진보 진영 좌장 영면

민주 투사에서 실세 총리로...진보 진영 좌장 영면

2026.01.25. 오후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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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군사정권 시절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고 정치권에선 7선 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진보 진영의 좌장으로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고인의 삶을 홍민기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민청학련,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고문과 수감 생활에도 87년 '6월 항쟁'의 선봉장 역할을 피하지 않았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며 현실정치에 투신했습니다.

1988년 광주 민주화 운동 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계엄군의 살상 행위를 따져 묻던 고인의 모습은 국민 앞에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서울 관악을 의원으로 내리 5선을 하는 동안 고인은 소신 있는 전략가로 정치적 위상을 키웠습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주도하며 이른바 '이해찬 세대'라는 말을 낳았고,

[이해찬 / 당시 교육부 장관 (지난 1998년) : 사교육 교육비를 절감하고, 학생들의 입시 고통을 완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참여정부 출범 직후엔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끈 뒤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과 거친 설전을 마다치 않는 모습에 '버럭 총리', '실세 총리'란 수식어도 따라붙었습니다.

[이해찬 / 당시 국무총리 (2005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 : (야당) 의원님들이 좀 품위 있게 질의하고 사리에 맞게 질의하면 저도 사리에 맞게 답변을 드리고 정중하게 답변 드리겠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계 좌장으로 자리매김한 고인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도전을 돕는 과정에서 당 대표직 사퇴와 총선 컷오프 같은 아픔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수도의 상징인 세종에서 6선, 7선에 성공하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총선 압승을 이끌었습니다.

[이해찬 /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지난 2018년) : 10년 가지고는 정책이 뿌리를 못 내린다는 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최소한 20년 정도는 집권할 수 있는 계획을….]

고인은 2020년 여의도 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내 원로로서 이재명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원했습니다.

DJ부터 이재명 정부까지, 민주 진영을 앞장서 지켜온 고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해외에서 공직을 수행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YTN 홍민기입니다.

영상편집 : 이은경


YTN 홍민기 (nahi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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