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끝에서 대한민국 역사가 피어난다"...국회 속기사의 하루

"내 손끝에서 대한민국 역사가 피어난다"...국회 속기사의 하루

2023.01.23. 오전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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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속기사, 회의서 진행되는 음성·분위기 기록
번문 작업: 회의서 속기한 내용을 문어체로 편집
5분 속기록 복원에 한 시간 걸려
1급 속기사, 1초에 4자 반 이상 타이핑 해야
임의로 수정 못 해…정정·취소 요청 발언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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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민국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헌법기관, 국회하면 의정 활동을 펼치는 국회의원을 가장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그 옆에는 입법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묵묵히 기록으로 남기는 속기사들이 있습니다.

현대판 사관이자 국회 숨은 일꾼, 속기사를 정유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열린 공청회.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그 날의 참담했던 상황을 전하는 가운데,

[김초롱 / 이태원 참사 생존자 :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뉴스 속보가 뜰 때마다 사망자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현장을 지켜보는 날카로운 눈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회의를 기록으로 남기는 국회 속기사들입니다.

현장 속기를 마친 뒤에는 바쁘게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김아라 / 국회 속기사 : 일단은 (현장 속기는) 끝났고,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서 번문 작업을 해서….]

헤드폰을 쓰고 조금 전 받아친 내용을 문어체 형태로 다듬는 '번문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단순히 발언뿐만 아니라, 웃음, 박수, 눈물까지 그 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깁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입양되고 있는 아이들의 비행기 전세기 사진입니다. (울음) 저도 이 사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 정무위원회 2022년도 국정감사 회의록 中

검토, 또 검토….

5분짜리 속기록을 복원하는데 보통 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김아라 / 국회 속기사 : 발언자가 겹쳐서 발언하거나 동시에 발언하실 때 그때 좀 힘든 거 같아요.]

속기사 전용 타자기는 글자 조합 방식이라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받아칠 수 있는데 1급 속기사는 1분에 320자, 1초에 적어도 4자 반 이상을 소화해 냅니다.

속기사는 들은 대로 기록할 뿐, 보태거나 빼지 않습니다.

정정이나 취소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그 발언까지 회의록에 적어둡니다.

임의로 지우거나 더하면, 역사에 대한 신뢰성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김수정 / 국회 속기사 : 이게 한번 작성이 되면 계속 남잖아요. 그리고 다른 국민분들이나 다른 분들이 그걸 참고해서 하시니까.]

예정된 회의 시간이 미뤄지면, 속기사들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갑니다.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 때는 192시간 동안 이어진 릴레이 발언을 받아치고 복기하느라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홍상현 / 국회 속기사 : 사투리 억양이 강하신 분들 또 만나게 되면 더 힘들더라고요. 새벽에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업무하는 게….]

업무 특성상, 손목, 귀, 허리 통증도 따라 다닙니다.

[김수정 / 국회 속기사 : 손 관절이나 이런 데가 아플 때가 있고 자세가 계속 바른 자세 유지하기 어려워서 거북 목….]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새기는 글자가 먼 훗날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된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홍상현 / 국회 속기사 : 회의록을 작성한다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매력적인 일인 것 같고요.]

싸움 마를 날 없는 정치권.

좋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소회도 있습니다.

[김수정 / 국회 속기사 : 법안에 대해서 잘 많이 아시고, 열의 많으신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더 그런 쪽으로 지향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YTN 정유진입니다.



YTN 정유진 (yjq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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