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쿼드와 IPEF...국익과 동맹, 변화하는 국제질서

[와이파일] 쿼드와 IPEF...국익과 동맹, 변화하는 국제질서

2022.05.19. 오전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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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쿼드와 IPEF...국익과 동맹, 변화하는 국제질서
화면 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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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영국 총리를 지낸 헨리 존 템플은 총리보다 외무장관 시절의 어록으로 유명했다. 작위명인 파머스턴 경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848년 3월 하원 연설에서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파머스턴 경은 영국이 제국주의의 정점에 오른 시기에 대외 정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그의 발언도 제국주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강조한 ‘국익 추구’는 주권 국가의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문재인 정부와는 많이 다른 외교 행보에 나서고 있다. 그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미 트럼프 정부가 주도했던 ‘쿼드(쿼드 플러스)’ 참여에 회의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이번 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 바이든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협의체인 ‘IPEF’에 가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점이 주목된다.

미국과 인도, 호주와 일본이 참여하고 있는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는 명칭에서부터 ‘안보(Security)’ 개념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군사적 기구’임을 밝히며 중국 견제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에는 ‘안보’ 개념이 없다. IPEF는 ‘경제(Economic)기구’ 성격이 강한데, 그럼에도 쿼드 못지 않게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쿼드’나 ‘IPEF’는 동북아에서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국익이기도 하다. ‘트럼프 흔적 지우기’에 나섰던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정부의 ‘쿼드 정책’을 이어받고 있다. 이로 미뤄 ‘중국 변수’에 따라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가입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견제라는 두 기구의 가입 여부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가치는 국익의 크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미는 동맹국가라는 전제가 있다. ‘동맹’은 공통의 적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즉 안보를 위해 두 나라 이상이 힘을 합쳐 만들어진다. 한미동맹도 1953년 체결 당시(한미상호방위조약) 중국과 북한 등 한미 공통의 적과 이들의 위협에 맞서 만들어졌다. 이후 우리의 국가적 지위가 높아지고 적에 대한 인식과 위협이 변화하면서 한미동맹의 가치도 흔들려왔다. 그럼에도 국익적 관점에서 동맹의 ‘기본 개념’과 ‘의무’, ‘역할’은 오늘날에도 늘 강조된다.

동맹국가의 의무와 역할만을 놓고 보면 답은 하나다. 무엇이 됐든 동맹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고, 따라서 두 기구의 가입 여부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여기서 이탈하겠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면 된다. 대개 이 불이익이 의무와 역할보다 적을 경우 이탈하고, 클 경우 동맹을 따르게 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동맹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냉전체제 이후 국제사회는 다원화됐고, ‘안보’에만 머물던 동맹 가치가 ‘경제’와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변수가 만들어졌다. 세계 각국이 이념을 떠나 경제적 상호 의존이 확대되면서 개별 국가가 동맹을 위해 국익의 또 다른 한 축인 경제문제를 도외시하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한 가지 비슷한 예는 인도의 움직임이다. 미국 주도의 쿼드 가입 국가인 인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거나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 대신 인도 화폐와 러시아 루블화만으로 결제하는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와 달리, 그리고 대다수 전쟁을 반대하는 국제사회와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른 예로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을 신청하자 기존 회원국인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대한 것이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은 테러 조직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보도에 의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말한 ‘테러 조직’은 터키의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꼽히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자국의 경제와 안보이익을 더 앞세운 인도와 터키의 행보는 ‘이익만이 영원하다’는 파머스턴 경이 말한 국익을 쫓고 있는지 모른다.

윤석열 정부가 IPEF 가입을 천명한 것이 중국 견제를 넘어 최근 미중 패권다툼,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바람이 불고 있는 세계 경제의 블록화 추세에 편승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경제안보’라는 말이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동맹의 개념인 군사동맹이 경제동맹이나 협력체로 확대되거나 변화하는 추세에 있다고 보야야 할 수도 있다. 또 큰 틀에서 군사적 안보위협이 아닌 파머스턴 경이 말한 것처럼 '영원한 국가의 이익'에 관한 문제이자 국제질서의 변화 가운데 하나로도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IPEF 가입대상에 중국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밝혀 중국 견제는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는 입장도 보였다. 그렇다면 이를 기존 외교정책 가운데 하나인 ‘원교근공’의 개념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중국을 어떻게 이해시키느냐가 남은 과제가 된다.

김문경
통일외교안보부장

YTN 김문경 (mk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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