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큐] '현대사의 비극' 쓴 전두환, 결국 사과 없이 사망

[뉴스큐] '현대사의 비극' 쓴 전두환, 결국 사과 없이 사망

2021.11.23. 오후 5:07.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진행 : 김영수 앵커, 강려원 앵커
■ 출연 : 최 진 /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전두환 씨는 이처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 현대사에 큰 비극을 남겼지만 아무런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두환씨 사망으로 본 5.18 민주화 운동과 아직도 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보겠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과 자세히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진]
안녕하십니까?

[앵커]
전두환 씨가 오늘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전직 대통령을 지냈지만 우리 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우리 역사에 어떻게 평가될 것으로 보십니까?

[최진]
전두환 이름 석자 하면 텔레비전에 계속 나오는 게 군인, 탱크, 최루탄, 재판받는 모습. 네 장의 사진이 항상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태우 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책을 써서 출판하려고 제목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빛과 리더십이라고 한다면 만약에 제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책을 쓴다면 전두환 리더십의 검은 그림자 그러니까 빛은 거의 잘 보이지 않는.

그대로 그런 만큼 현대 사회에서 어두운 그림자, 폭압적 그림자가 많고요. 다만 인간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화끈하고 호탕한 사나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인간적으로. 그러나 정치인, 대통령 전두환으로서는 정말 아주 나쁜 안 좋은 평가가 다수죠.
[앵커]
빛은 없고 검은 그림자라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 우리나라 역사상으로 봐도 과오가 가장 많았던 대통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최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과오가 많은 대통령은 첫째로 집권과정이 불법성이 있었느냐. 그다음에 재임 중에 불법성이 있었느냐 두 가지인데. 아시다시피 집권하면 12.12쿠데타하고 5.18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희생자들이.

이건 역대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5.16 쿠데타를 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임 권력 중에 8년 집권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단임 7년을 한 줄 아는데 11대, 12대 대통령 두 번 했습니다. 8년을 했습니다. 8년 동안에 정말 대학생들 많이 고생을 했죠. 민주화운동 해서 잡혀가면 고문을 당하고 가면 거의 반불구가 돼서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집권할 때 그리고 집권하는 동안에 그 엄청난 많은 불법,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마지막 순간에 한마디 반성, 성찰, 사과 발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부분이 참 아쉽습니다.

[앵커]
전두환 씨, 오늘이 33년 전 백담사로 떠난 날이기도 하다고 하네요. 기억하십니까?

[최진]
백담사를 떠날 때 바로 제가 그 옆에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의 모습을 지켜봤는데요, 그때 기자 신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앞에 차들이 쏵 빠져나가더라고요, 전두환 전 대통령 타고 가는 차들.

그러니까 기자들이 모여 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이 우르르 따라갔습니다, 차를 타고. 쭉 한참 갔는데 알고 보니까 전두환 대통령이 다른 차로, 앞에 경호원들이 가고 다른 차로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러니까 백담사 가는 데도 군사작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했는데 백담사에서 한국 역사상 보기 드문 유폐, 유배생활을 한 거죠. 현대판 유배생활을 2년 가까이 한 겁니다, 백담사에서.

[앵커]
그렇습니다. 전두환 씨 백담사에서뿐만 아니라 사실 그간 국민을 공분케 하는 그런 발언들을 많이 했습니다. 전 씨가 그동안 생전에 했었던 발언들 듣고 오겠습니다.

[앵커]
5.18단체 회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또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과도 없이 사망을 했기 때문인데 진실이 묻힐 수 없다, 그가 사망했어도.

다 이런 생각입니다. 그런데 5.18 진실규명, 아직도 발포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고요. 왜 이렇게 진실규명이 어려운 상황입니까?

[최진]
가해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제일 첫 번째가 발포명령을 누가 했느냐입니다. 그런데 그때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공수부대였습니다, 특전사. 그런데 특전사 사령관은 따로 있었습니다, 정호영.

그래서 전두환은 나는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나중에 책임지고 정호영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에 옷 벗었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진압하는 방법,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군인들이 곤봉을 갖고 총 메고 갔는데 실제로는 탱크도 갔고 헬리콥터에서 사격도 한 게 아니냐는 게 논란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누군가 가해자가 증언을 하지 않는 한 밝히기 힘든 거죠. 마지막에 사망자 숫자입니다.

몇 명이 실제로는 죽은 사람들이 암매장되지 않았느냐고 했는데 제가 김영삼 후보 시절에 경기도에 있는 용미리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거기서 묘를 파헤쳤는데 마치 5.18의 행불자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한 것 같다, 그 유해 같다고 해서 저랑 국회의원 5명이 갔거든요. 그러니까 수백 개의 묘기를 파헤쳤는데 그때 5월 봄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없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5.18 때 광주에서의 희생자들을 멀리 공수해서 서울인 경기도에 있는 용미리에 암매장한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이 많이 제기됐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도 밝혀지지 않고 그냥 미궁으로 빠져버린 거죠. 이런 세 가지 중요한 단서가 아직 당시의 공수부대라든지 모든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마 자칫하면 영원히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죠.

[앵커]
앞서서 가해자의 증언이 있지 않으면 밝혀지기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전두환 씨의 최측근, 특히 오늘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도 발포명령자가 아니다.

발포명령을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축하고 있기는 하거든요. 역시 진실을 밝혀내는 데 어려운 지점이라고 봐야 되겠죠?

[최진]
그냥 공식적인 발언을 되풀이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계엄 하에 있지 않았습니까? 5월 17일날 전국에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계엄을 선포할 때는 최고 대장군이나 계엄사령관입니다.

당시에 이희성 육군대장이 계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고 발포명령을 했다고 주장하는 게 전두환 씨의 입장이죠.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이 그 당시 별 2개, 육군소장 보안사령관이었지만 세상이 다 아는 권력 실세였지 않았습니까? 실세, 실권자의 허락을 안 받고 누가 발포명령을 하겠습니까?

그게 누구나 다 강력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역사적으로 미궁으로 빙빙 돌고 있는 거죠.

[앵커]
전두환 씨, 일단 국가장 안 치러지고요. 그리고 국립묘지 안장도 불가한 상황인 거죠?

[최진]
국가장을 굳이 하겠다고 한다면 법적인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원래 내란수괴죄로 해서 무기징역까지 최종 대법원에서 받은 데다가 또 국민 정서가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또 본인 가족들이 가족장으로 하게 된 이상 가족장으로 그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앵커]
청와대도 앞서 저희가 박경미 대변인의 얘기를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청와대 차원에서의 조화, 조문 계획 없다. 이런 입장을 밝혔거든요.

[최진]
그러니까 전두환 대통령도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8년 했는데 왜 회한이 없고 나름대로 또 국민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아마 본인이 6.25 참전을 하고 월남 용사기 때문에 애국심 발휘 차원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내 유골을 저기 북녘 하늘이 보이는 전방에 뿌려달라, 묻어달라고 유언을 한 것 같습니다.

당분간 유골을 화장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장지가 아직 결정이 안 됐습니다. 그때 가서 추후에 이동한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가족장으로 전반적으로 조용하게 그렇게 치러질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5.18 진실규명,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5.18 진실규명을 위해서 매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